오로촌족: 두 판 사이의 차이

내용 삭제됨 내용 추가됨
태그: m 모바일 앱 안드로이드 앱 편집
태그: m 모바일 앱 안드로이드 앱 편집
7번째 줄:
혹자는 생활습속에 근거하여 오로촌족의 의식주, 혼례와 상례, 생산 등 여러 습속이 발실위(鉢室韋)와 매우 유사한 점을 들어 발실위인의 후예라 볼 수 있다고 한다. 혹자는 초기 언어를 근거로 오로촌어와 고대 [[숙신]]인의 언어가 유사하기 때문에 마땅히 숙신의 후예로 보아야 한다고 한다. 실위는 본래 광범위한 여러 종족에 대한 칭호로 대부분의 실위는 [[동호]]계통에 속하고 언어오 [[몽골어족]]에 속한다. 그러나 《[[당회요]]》에서 "실위어는 말갈어와 통한다"라고 하였으며, 《[[당서]]》 실위전에서는 "실위는 말갈어를 사용한다"라고 하였다. [[말갈]]은 숙신계통으로 [[여진족]]의 조상이며 언어는 [[퉁구스어족]]에 속한다. 따라서 실위어는 몽골과 퉁구스 두 개의 언어를 포괄한다고 볼 수 있다. 이렇게 볼 때 오로촌족의 기원은 여진설과 실위설이 통합되어 가고 있음을 알 수 있다.<ref>{{서적 인용|author1=한여우평|author2=우야즈|author3=관샤오윈|authorlink=|title=최후의 수렵민 어룬춘족|series=중국 동북지역 민족문화연구|publisher=[[동북아역사재단]]|isbn=9788936810979|page=30}}</ref> 그러나 《[[수서]]》 실위전을 일부 글의 순서를 조정하고 내용을 삭제하거나 몇몇 조목을 고쳐쓴 《[[통전]]》은 "술 빚기와 음식 풍속이 말갈과 같다"라는 구절을, "술 빚기, 음식과 언어가 말갈과 같다"라고 고쳤다. 《당회요》부터 《[[신당서]]》에 이르기까지의 후대의 사서들은 이 기록을 답습했고 이러한 기록은 일종의 오기로서 실위가 숙신족이나 퉁구스족 계총에 속한다는 견해는 충분한 증거가 없다는 지적이 있다.<ref>{{서적 인용|author1=장지우허|authorlink=|title=몽골인 그들은 어디서 왔나?|series=|publisher=소나무|isbn=9788971395561|page=35~36, 80}}</ref>
 
내몽골자치구 [[오로촌 자치기]] 경내 기정부 소재디인 아리하진에서 서북으로 9km 떨어진 곳이 남북 길이가 92m, 동서 넓이가 27.8m, 높이가 20여 미처인 천연 동굴이 있는데 오로촌인은 이 동굴을 [[가셴동]]이라고 한다. 1980년 7월 30일 [[후룬베이얼]]맹 문물참 미원핑 등은 이 동굴의 서쪽 벽에서 석각된 문자를 발견했는데, [[북위]] 태평진군 4년(443년) 태무황제 [[탁발도]]가 대신 이창을 파견하여 조상을 제사할 때 새긴 축문임을 확인하였다. 넓은 동굴과 측문의 내용이 고대 역사 문헌인 《[[위서]]》의 기록과 기본적으로 부합하는 것으로 보아 이 동굴이 [[선비족]]의 고대 석실터임이 증명됐다.<ref>{{서적 인용|author1=한여우평|author2=우야즈|author3=관샤오윈|authorlink=|title=최후의 수렵민 어룬춘족|series=중국 동북지역 민족문화연구|publisher=[[동북아역사재단]]|isbn=9788936810979|page=31}}</ref> 그러나 현재의 오로촌족이나 어웡키족이 그와 연관을 갖고 있다고 보기는 어렵다는 설이 지배적이다. 그러나 오로촌족,오로촌족, [[다우르족]], 어웡키족 사람들은 가셴동 석굴을 자신들의 조상이 거주한 곳으로 간주하기를 원한다. 오로촌족 출신 연구자들의 경우 역사 시기 수차례에 걸쳐 일어났을 종족의 이동을 고려하지 않고 현재의 거주지역에서 자신들의 종족적 계보를 파악하고자 하는 성향이 강하다는 점이다강하다. 이러한 점은인식은 일반 오로촌인들에게서도 나타나는 데 그들은 가셴동석굴이 자신들의 조상의 기원지라고 말하는 것을 매우 자랑스럽게 생각하고, 그렇지 않다고 말하면 매우 낙심하는 표정들을 지었다.<ref>이강원, 《중국 변강에서 민족과 공간의 사회적 구성 : 어룬춘족 사회의 다민족화와 정체성의 정치》, 서울大學校 社會科學大學 地理學科, 2000,</ref>
 
== 문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