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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투의 전개과정 ==
=== 전투 초반 ===
첩보원으로부터 왜병이일본군들이 도착한다는 전갈을 받은 [[이범석 (1900년)|이범석]]은 산꼭대기에 올라 [[망원경]]으로 [[일본군]] 동지대(東支隊)의 이동을 지켜봤다. 정탐군을 보내 보병, 포병, 기병, 공병을 합친 병력이 1만 명으로 일본 파병군의 선발대라고 하였다. [[이범석 (1900년)|이범석]]은 근처 한인 교포와 사냥꾼을 모은 뒤 마을의 부녀자와 노인들에게는 독립군은 수가 얼마 되지 않고 총을 가진 병사 수가 적어서 몇안되고 굶주려 지쳤다 고 증언하도록 사전에 지시했다. 소총, 중기관총, [[수류탄]] 80만발의 탄환을 집결한 뒤 [[10월 20일]] 새벽, [[김좌진]] [[이범석 (1900년)|이범석]] 등은 우진 이민화(李敏華), 좌진 한근량(韓根凉) 중우 진의 김동(金動), 중좌진의 이교성(李驕成)에게 각각 2백발의 탄환을 직접 분배하였다. [[10월 20일]] 9시경부터 청산리 백운평에서 일군과 교전이 시작되어 그날 저물도록 격전을 전개하고 [[일본군]] 선발대의 선봉부대를 기습공격하여 섬멸시켰다.
 
백운평에 당도한 [[김좌진]]은 지형조건을 이용하기로 하고, 비전투원으로 구성된 제1제대는 후방에, [[이범석 (1900년)|이범석]]이 지휘하는 제2제대는 최전선에 배치하고 일본군 추격대가 매복지에 들어오기만을 기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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