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경: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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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경'''(侯景, ? ~ [[552년]])은 [[북위 (북조)|북위]](北魏) · [[동위 (북조)|동위]](東魏) · [[양 (남조)|양나라]](梁)의 장군이며, [[자 (이름)|자]]는 '''만경'''(萬景)이다. 그는 본래 [[갈족]]이다(羯族) 출신이며, 삭방군(朔方郡) 또는 안문군(雁門郡) 태생이다. 아버지는 자신이 추존한 원황제(元皇帝) 후표(侯標)이고이며, 할아버지는 후을우주(侯乙羽周)이다. 아들은 모두 5명인데 맏아들은 후화(侯和)이다.
 
== 생애 ==
524년 [[육진의 난]]이 발생하자 [[북위 (북조)|북위]](北魏)의 [[이주영]](爾朱榮)을 따라 활약했으며, 북위가 [[동위]](東魏)와 [[서위]](西魏)로 분열된 이후에는 동위의 [[고환 (북위)|고환]](高歡) 휘하에서 하남대행대(河南大行臺)가 되어 하남(河南) 방면의 군사를 지휘하였다. 이후 고환이 사망하자 아들인 [[고징]](高澄)이 후경을 살해하려 하였고, 이에 후경은 반란을 일으켰으나 [[한궤]](韓軌)에 의해 토벌되어 [[양 (남조)|양]](梁)의 [[양 무제|무제]](武帝)에게로 귀순하였다.
 
동위에서 양나라로 항복해 온 이후 반란을 일으켜 양나라의 수도 [[난징 시|건강]]을 함락시키고 [[양 무제|무제]]를 사로잡았다. 이후 [[양 간문제|간문제]]를 옹립하였다가 [[551년]] 간문제를 살해하고 예장왕 [[소동]]을 제위에 올린 뒤 선양을 받아 황제에 올라 즉위하여 한(漢)의 국호로 나라를 세웠다. 하지만 형주자사인 상동왕 [[양 원제|소역]]이 보낸 왕승변에게 대패하였고 전투 중 부하에게 살해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