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랄산맥: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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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원 ==
16세기 [[크란스카]]의 남작 [[지기스문트 폰 헤르베르스타인]]이 러시아의 지리에 대해 저술할 때 까지 우랄산맥은 "바위 띠"를 뜻하는 여러 이름으로 불렸다. 현대 러시아어에서 우랄(Урал)이라는 이름이 처음 등장하는 것은 16세기에서 17세기 사이 [[러시아의 시베리아 정복]]이 이루어질 때이다. 우랄은 처음에는 산맥의 남쪽 지대만을 가리키는 용어로 쓰이다가 18세기에 들어 지금처럼 산맥 전체를 가리키는 말이 되었다. "바위 띠"는 분명 [[투르크어]]에서 차용된 것으로 보인다.<ref>{{
== 역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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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세 이슬람 상인들은 우랄산맥 서쪽 기슭에 있던 [[페름 지방]]의 옛 국가 [[대 페름]]과 거래를 하였다. [[중세 이슬람의 지리학과 지도학|중세 이슬람의 지리학자들]]은 최소 10세기 무렵 우랄산맥이 [[아랄해]]에서 [[북극해]]까지 길게 이어져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ref>Travis Zadeh, [https://books.google.co.kr/books?id=2df3DQAAQBAJ&pg=PT232&lpg=PT232&dq=medieval+Islamic+geography+%22Ural+mountains%22&source=bl&ots=jf_oRDT4mt&sig=yJBt0ORna_WaQBXTky4QwIsN8Vk&hl=ko&sa=X&ved=2ahUKEwjJ0erc54_fAhXDA4gKHSM4DroQ6AEwDnoECAMQAQ#v=onepage&q=medieval%20Islamic%20geography%20%22Ural%20mountains%22&f=false Mapping Frontiers across Medieval Islam: Geography, Translation and the Abbasid Empire], Mar 14 2017</ref> 러시아에서는 [[키예프 루스]]의 《[[원초 연대기]]》에서 우랄 산맥을 언급하고 있는데 [[노브고로드 공화국]]이 1096년 그들의 영토가 [[페초라강]]에 이르렀으며 우랄산맥에서 철광을 채굴하였다고 한다.<ref>Marjorie Mandelstam Balzer, [https://books.google.co.kr/books?id=jZedV50h5-kC&pg=PA31&dq=Primary+Chronicle+"Ural+Mountains"&hl=ko&sa=X&ved=0ahUKEwi94-CE6Y_fAhUHZt4KHUpmAyUQ6AEIJzAA#v=onepage&q=Primary Chronicle "Ural Mountains"&f=false The Tenacity of Ethnicity: A Siberian Saga in Global Perspective], Nov 21, 1999</ref>
그럼에도 불구하고 16세기 초 폴란드 지리학자 [[마치예즈 미에호비타]](Maciej Miechowita)가 저술한 《두 [[사르마티아인]]에 대한 논고》(''Tractatus de duabus Sarmatiis'', 1517)에는 유럽 동부의 산맥에 대한 언급이 전혀 없다. 유럽 동부의 지리에 대해 다시 알려지기 시작한 것은 지기스문트 폰 헤르베르스타인이 《[[모스코바 대공국|모스코비]]의 강역에 대한 기록》(''Rerum Moscoviticarum Commentarii'', 1549)을 저술한 이후이다.
1550년대에 이르러 [[러시아 차르국]]의 [[이반 4세]]가 [[카잔 칸국]]을 멸망시킨 후 러시아는 우랄산맥 남부를 자신의 영토로 삼게 되었다.<ref>비비안 그린, 채은진 역, 《권력과 광기》, 말글빛냄, 2005년, {{isbn|978-89-9559-883-2}}</ref> 1574년 이반 4세는 [[우파 (도시)|우파]]에 요새를 세웠다.<ref>[http://www.russia-ic.com/regions/2895/2896/history/ History of Ufa]</ref> 이후 러시아는 1598년에 [[시비리 칸국]]을 멸망시키고, 1648년에는 [[쿤구르]]에 요새를 건설하는 등 우랄산맥에 대한 지배력을 강화하였다.
17세기에 들어 우랄산맥에는 철, 구리, 운모, 보석 원광 등을 채굴하는 광산이 들어서기 시작하였다. [[러시아 제국]]을 선포한 [[표트르 1세]]의 산업화 정책에 따라 우랄산맥은 러시아의 산업 발전에 필요한 원자재를 공급하는 대표적인 광산 지역이 되었다.<ref>김경묵, 《이야기 러시아사》, 청아출판사, 2004년, ISBN 978-89-36-80361-8, 172쪽</ref> 19세기는 전세계에서 사람들이 황금을 찾아 몰려가는 "[[골드 러시|황금광 시대]]"였고 러시아에도 황금 열풍이 불었다. [[알렉산드르 1세]]가 금광을 개발한 이래 1823년에 2톤이 채 되지 않던 우랄산맥의 금생산량은 1830년 5톤, 1842년 11톤으로 크게 증가하였으며 1847년 무렵에는 전세계 금 생산의 60%를 차지하게 되었다. 우랄산맥 금광의 대대적인 성공은 이후 러시아가 시베리아를 거쳐 극동에 이르기까지 영토를 확장하는 큰 동기 가운데 하나였다.<ref>피터 L. 번스타인, 김승욱 역, 《황금의 지배》, 경영정신, 2001년, {{isbn|89-7288-151-1}}, 338쪽</ref>
18세기 표트르 1세의 명에 따라 [[바실리 타시셰프]]가 우랄산맥에 대한 최초의 지리 조사를 하였고, 1770년에서 1771년 사이 러시아의 지리학자 [[알렉산드르 카르핀스키]], 식물학자 [[포르피리 크릴로프]], 동물학자 [[레오니드 파블로비치 사바네예프]], 영국의 [[로더릭 머치슨]], 프랑스의 [[에두아르 드 베르누이]]로 구성된 국제 조사단이 과학적 탐사 결과를 발표하였다.<ref name=brit>[https://www.britannica.com/place/Ural-Mountains Ural Mountains], Briannica</ref><ref name="London1894">{{
1878년 우랄 철도가 건설되었다. 우랄 철도는 이미 러시아의 대표적인 산업단지였던 우랄 지역 내의 산업 단지 사이를 연결한 것으로 [[페름]]에서 [[몰로도프]], [[예카테린부르크]], [[스베르돌로프스크]] 등을 연결한 것이다.<ref>한양대학교 아태지역연구센터, 《시베리아 근대성과 소수민족 담론: 시베리아 이야기 2》, 민속원, 2017년, {{isbn|978-89-285-1048-1}}, 29-30쪽</ref> 이후 우랄 철도의 [[첼랴빈스크]]는 [[시베리아 횡단 철도]]의 기점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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