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공 (식후):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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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애==
[[적미군]]이 식현을 지나갈 때 동생 유무·[[유분자]]와 함께 납치되었다. 어려서 《[[서경 (책)|상서]]》를 익혀 나름 학식이 있었기 때문에, 적미군의 대장 [[번숭]]이 [[경시제]]에게 항복했을 때 경시제에게 시중(侍中)으로 임용되고 다시 식후에 봉해져 [[장안]]에 남았고, 유무와 유분자는 군중에 남아 목동이 되었다. 얼마 안 가 번숭이 유분자를 떠나 다시 관중으로 갔고, [[경조윤|정현]](鄭縣)에서 유분자를 [[황제]]로 추대하니, 소식을 들은 유공은 스스로 옥에 들어갔다. 이후 적미군이 장안을 함락하였을 때 빠져나와, 고릉(高陵)으로 달아난 경시제를 걸어서 찾아갔다. 경시제는 유공을 사자로 보내 적미군에게 항복하였다. 이때 경시제는 [[장사군|장사]][[왕작|왕]]에 봉해지기로 되어있었으나, 적미군은 약속을 어기고 경시제를 죽이려 하였다. 유공은 스스로 목숨을 끊으려 하였고, 번숭 등은 결국을 약속을 이행하기로 하였다. 그러나 결국 경시제는 옛 부하 [[장앙 (후한)|장앙]]의 사주를 받은 [[사록]]에게 목이 졸려 죽었고, 유공은 밤중에 경시제의 시신을 수습하였다.
 
유공은 적미군이 장차 패망하고 그 화가 자기 형제들에게 미칠 것이라고 생각하여, 제위를 내놓는 절차를 유분자에게 알려주고 대사를 연습시켰다. [[건무 (후한)|건무]] 2년(26년) 새해 첫날에 열린 연회에서 유분자를 폐할 것을 상주하였으나, 번숭이 완고히 반대하니 자리에서 물러났다. 유분자는 유공이 알려준 대로 자리에서 내려와 인수를 풀고는 머리를 바닥에 찧으며 제위를 포기하겠다는 대사를 읊었고, 사람들은 모두 유분자를 가련히 여겨 사죄하고 다시 인수를 채워 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