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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산군은 [[무오사화]]와 [[갑자사화]]를 일으켜 많은 선비들을 제거하였다.또한 경연(經筵) 폐지·신언패(愼言牌) 실시·[[성균관]](成均館)의 연락(宴樂) 장소화·도성 밖 30리 내의 민가 철거·언문 도서의 폐기 등 폭정을 일삼았다. 그리고 [[원각사지|원각사]]를 폐하여 연방원(聯芳院)으로 고치고, 흥청(興淸)들과 기거를 함께하며, 채청사(採靑使)를 각 지방에 보내 미녀를 끌어들이고, 유희와 안락으로 세월을 보내며 국정을 도외시하자, 이에 훈구 세력을 중심으로 반정의 움직임이 싹트기 시작하였다.
 
== 경과결과 ==
전 이조참판(吏曹參判) [[성희안]]은 지중추부사(知中樞府事) [[박원종]], 이조판서(吏曹判書) [[유순정]], 군자감부정(軍資監副正) [[신윤무]] 등과 함께 왕이 장단(長湍) 석벽(石壁)을 유람하는 날을 기하여 거사할 계획을 세웠다. 그런데 왕의 행차가 취소되면서 거사에 차질이 생겼고, 이때 호남 지역에서의 연산군 폐위 거사 격문이 서울에 나돌게 되면서 결국 당초 계획을 강행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