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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65년]]경에 쿠르차스쿠가 죽은 후 토그릴은 동생 등의 경쟁자들을 모두 제거하고 케레이트 왕으로 즉위하였는데 이 때문에 다른 형제와 숙부 [[구르칸]] ([[자무카]]가 아니다)은 나이만으로 도망쳤다. 하지만 구르 칸은 나이만의 원조로 독립적인 세력을 형성하여 거병해 토그릴의 군대를 격파하고 스스로 왕임을 선언하였다.
 
패배한 토그릴은 동쪽에서 서쪽으로 진출해 오던 몽골 키야트 씨족으로 도주하여, 그 곳에서 [[칭기즈칸]]의 아버지인 [[예수게이]] 바토르와 의형제를 맺어, 숙부 구르칸을 몰아내고 왕위를 되찾았다. 그로부터 토그릴은 십여년간 케레이트를 통치해오다가 [[타르구타이 쿠릴투크]]의 반란으로 인해 쫓겨난 테무친에게 도움을 주면서 [[1179년1178년]]에 그와 의부자 관계를 맺어 [[1182년]]에 테무친의 아내 [[보르테]]가 메르키트에 납치되었을 때 테무친을 도와 [[메르키트]]를 공격했다.
 
[[1196년]]에는 몽골 고원 동부의 유력 부족인 [[타타르]]가 [[중국]] [[금나라]]에 대해 배신을 선언하면서 금나라의 요청으로 승상 [[왕경]]과 우승상 [[완안양]]이 이끄는 금나라 군대에 협력하여 오루즈 강의 전투에서 타타르를 절멸시켰다. 이 때 황제의 권한을 대신한 우승상 완안양으로부터 토그릴은 '''왕'''의 약호를 하사받아 이 때부터 옹 칸으로 불리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