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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봉보통학교를 졸업한 그는 서울로 상경하여 휘문고등보통학교를 다녔지만, 할아버지 계창전에 의해 강제로 고향으로 끌려갔다. 성인이 된 뒤 그는 청년기에는 가난과 질병으로 고통받았다. 뒤늦게 [[일본]]으로 유학, [[도요 대학교]] 철학과를 다니기도 했다.
 
1920년 《새소리》이라는 소년 잡지에 《글방이 깨어져》라는 습작 소설을 발표하여 [[소설|소설가]]로 첫 등단하였고 1925년 《생장》이라는 잡지에 《부처님 검님 봄이 왔네》라는 시를 발표하여 [[시 (문학)|시인]]으로 등단하였으며 1927년 《상환》을 《[[조선문단]]》에 발표하여 본격본격적으로 소설가 등단하였다. 《최서방》, 《인두지주》 등 현실적이고 경향적인 작품을 발표하였으나 이후 약 10여년 가까이 절필하였다. 한때 그는 [[조선일보사]]에 입사하여 기자로 활동하기도 했다. 1935년 인간의 애욕과 물욕을 그린 《[[백치 아다다]]》를 발표하면서부터 순수문학을 지향하였고 [[1942년]] [[수필|수필가]]로도소설가로 등단하였다.
 
《최서방》, 《인두지주》 등 현실적이고 경향적인 작품을 발표하였으나 이후 약 10여년 가까이 절필하였다. 한때 그는 [[조선일보사]]에 입사하여 기자로 활동하기도 했다. 1935년 인간의 애욕과 물욕을 그린 《[[백치 아다다]]》를 발표하면서부터 순수문학을 지향하였고 [[1942년]] [[수필|수필가]]로도 등단하였다. 비교적 작품을 많이 발표하지는 않았지만, 묘사가 정교하여 단편 소설에서는 압축된 정교미를 잘 보여주었다. 대표작으로 《병풍 속에 그린 닭》, 《상아탑》 등이 있다.
 
=== 사망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