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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문세족'''(權門勢族) 또는 '''권문세가'''(權門勢家)는 [[고려]]시대의 문벌 귀족 가문무인, 무신 정권기가 몰락하고 중앙 정부의 통제가 약해졌을때문인 세력을 늘린 신진부르는 세력이다단어이다.
 
13세기 고려 원 내정간섭기에원간섭기에 성장한 고려인 지배층으로, 고려 무인 정권이 사라지고 몽골 침략에 협력하였거나나서 왕이고려왕이 원나라에 있을 때 함께 있었던따라갔던 고려인 측근 세력이나 이전부터 권세를 누려왔던 고려의고려인의 문무 관리들을 가르키며 고려 후기의 지배 세력을 지칭한다.
 
크게대부분이 고려 전기부터 있던 문벌귀족 일부와 고려 무인 정권때 성장한 가문이며고려인 무인 정권이 약해짐에 따라 중앙 정부의 통제가 약해져 수많은가문들 농장을그리고 늘리게고려왕의 측근들의 세력들을세력을 일컫는다
 
고려 후기의 지배세력으로서 권문세족의 성립 시기는 대원(對元) 관계가 안정되는 충렬왕대(재위 1274~1308)로 보는 것이 일반적이며, 구체적으로는 1308년에 충선왕이 복위하여 발표한 교서에서 ‘재상지종(宰相之宗)’이라 하여 왕실과 혼인할 수 있는 가문을 나열한 데서 그 존재가 확인된다. 왕실과 혼인할 수 있는 가문이란 당시 고려의 최고 가문을 뜻하므로 그것은 곧 당시 지배세력의 구성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재상지종’으로 언급된 가문은 경주 김씨(慶州金氏), 언양 김씨(彦陽金氏), 정안 임씨(定安任氏)[<nowiki/>[[장흥 임씨|장흥 임씨(長興任氏)]]], 경원 이씨(慶源李氏), 안산 김씨(安山金氏), 철원 최씨(鐵原崔氏), 해주 최씨(海州崔氏), 공암 허씨(孔巖許氏), 평강 채씨(平康蔡氏), 청주 이씨(淸州李氏), 당성 홍씨(唐城洪氏), 황려 민씨(黃驪閔氏), 횡천 조씨(橫川趙氏), 파평 윤씨(坡平尹氏), 평양 조씨(平壤趙氏) 등 고려인 가문 15개이다.
 
또한 권문세족의 하위층에는 고려인 환관들도 있는데 원나라에 파견된 고려인 환관이 원나라의 신뢰를 받고 다시 고려로 파견되어 고려왕실의 세력에 간섭하며 나라를 어지럽히기도 하였다.
[[최영]]으로 대표되는 권문세족은 [[고려 창왕]] 때부터 세력이 약화되기 시작하였으며, [[고려 공양왕]] 때는 [[신진 사대부]]에게 주도권을 빼앗겼고, [[조선 태조]] 때 완전히 몰락하였다.
 
 
 
[[최영]]으로 대표되는 권문세족은 [[고려 창왕]] 때부터 세력이 약화되기 시작하였으며, [[고려 공양왕]] 때는 반원 성격인 [[신진 사대부]]에게 주도권을 빼앗겼고, [[조선 태조]] 때 완전히 몰락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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