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스토페르 2세"의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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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20년]] 1월에는 실권을 쥐고 있던 귀족들에 의해 덴마크의 국왕으로 추대되었다. 그렇지만 왕권을 크게 제한하는 내용을 담은 헌장에 서명할 수 밖에 없을 정도로 존재감이 없는 국왕으로 남았으며 왕권을 회복하기 위해 노력했지만 번번히 실패하고 만다.
 
[[1326년]]에는 귀족들이 일으킨 반란으로 인해 퇴위당하면서 망명 생활을 했다. [[홀슈타인]]의 게르하르트 3세(Gerhard III) 백작은 당시 12세였던 남윌란의 발데마르 공작을 덴마크의 [[발데마르 5세 애 슐레스비 공작|발데마르 3세]](Valdemar III) 국왕으로 즉위시켰다. 또한 게르하르트 3세 백작은 발데마르 3세 국왕의 [[섭정]] 역할을 수행했고 [[윌란 반도]] 남부를 덴마크의 통치 범위에서 분리시켰다.
 
[[1329년]]에는 자신의 이복형이자 게르하르트 3세 백작의 사촌인 홀슈타인[[플뢴]](Holstein-Plön)의 요한(Johan) 백작의 지원을 통해 덴마크의 국왕으로 복위했지만 존재감이 없는 국왕 신세를 피하지 못했다. [[1331년]] 게르하르트 3세 백작과 요한 백작 간의 분쟁에 연루된 책임을 물어 퇴위당했고 [[롤란 섬]](Lolland)의 올홀름(Aalholm) 성에 감금되고 만다. [[1332년]]에 사망했으며 그의 시신은 [[소뢰]](Sorø) 수도원에 안치되었다.
|임기=[[1320년]] ~ [[1326년]]
|전임자=[[에리크 6세 (덴마크)|에리크 6세]]
|후임자=[[발데마르 5세 애 슐레스비 공작|발데마르 3세]]
}}
{{전임후임
|직책=[[덴마크의 군주|덴마크의 국왕]]
|임기=[[1330년]] ~ [[1332년]]
|전임자=[[발데마르 5세 애 슐레스비 공작|발데마르 3세]]
|후임자=[[발데마르 4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