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산 김씨: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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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산 김씨'''(商山 金氏)는 [[경상북도]] [[상주시]]를 [[본관|관향]]으로 하는 [[한국의 성씨 목록|한국의]] [[한국의 성씨와 이름|성씨]]이다. 일운혹칭(一云或稱) 상주(商州) · 상주김씨(尙州金氏) 한다. 사벌시조 김씨'''김수'''(沙伐 ) 한다고려 보윤(甫尹)을 지냈다.
 
하나는 고려 보윤(甫尹) '''김수'''(金需)를 시조로 하는 계통이고, 다른 하나는 고려 호장(戶長) '''김조'''(金祚)를 시조로 하는 계통이다.
 
== 역사 ==
상산 김씨는 계통이 서로 다른 2개의 성씨가 있는데, 하나는 고려 보윤(甫尹) '''김수'''(金需)를 시조로 하는 계통이고, 또 다른 하나는 고려 호장(戶長) '''김조'''(金祚)를 시조로 하는 계통이다. 이들은 이조(異祖) 동성동본(同姓同本)이다.
 
≪고려사≫에 의하면 상주의 향리(鄕吏)인 '''김조'''(金祚)의 딸 김만궁(金萬宮)이 장성하여, 상주의 향리(鄕吏)인 김일(金鎰)에게 시집가서 '김록'(金祿)을 낳았다고 기록하고 있다. 김일(金鎰)은 '''김수'''(金需)의 9세손이라 한다. 따라서 '''김수'''(金需)와 '''김조'''(金祚)는 본관은 같지만 다른 일족이라 할 것이다. 그리하여 후손들은 '''김수'''(金需)와 '''김조'''(金祚)를 별도 시조로 삼고 [[상주시|상산]](商山)을 본관으로 하여 세계를 이어오고 있다고 한다.
 
호장(戶長) '''김조'''(金祚)에 대해 《김씨 분관록》·《증보문헌비고》등의 문헌에는 언급이 없고, 다만 《조선씨족통보》에는 '''김수'''(金需)의 후예라 한다.
 
=== 시조에 대해 ===
《김씨 분관록》·《증보문헌비고》·《조선씨족통보》에는등의 문헌에는 상산 김씨 시조가 [[경순왕]] 후손 보윤(甫尹) '''김수'''(金需)라 하면서도,한다. 다만 《조선씨족통보》에 일운(一云) [[경순왕]] 후예인 판전의시사(判典醫寺事) '''김록'''(金綠)이라의 후손이라 한다. 또 '''김수'''(金需)의 후예들인 판종부시어사(判宗簿侍御史) '''김련'''(金璉)의 후예후손, 호장(戶長) '''김조'''(金祚)의 후예라후손이라 한다.
 
=== 이조 동성 동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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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수 계통 ==
시조 '''김수'''(金需)는 [[고려]]초에 보윤(甫尹)을 지내고, 누대(累代)에 상산(商山. 상주(尙州)의 고호)에서 살았다고 한다. 그의 선계는 신라국(新羅國)의 김성(金姓)에서 분파되었다고 하며, 문헌이 없어 중간 계대를상계를 정확히 고증 할 수 없다없다고 한다. 다만 후대에 소급(溯及)하여 그 시대적 배경을 통해 역사 사실을 참조하여 증험(證驗)할 뿐이다.<ref>시조 김수(金需)에 대해 ‘경순왕 후손 설’, ‘순웅(順雄) 장군 후손 설’, 상주 ‘재지토호(在地土豪) 설’ 등이 있으나, 경순왕 또는 순웅 장군 후손 설은 김수와 연대가 맞지 않아 연결성이 결여되고 있다는 점에서 설득력을 잃고 있다. 또한 관련 문헌 등도 없어 어느 계통(系統) 인지 자세히 상고할 수 없다.</ref>
 
현손 김비궁(金匪躬)은 정평공(靖平公) 김희일(金希逸)의 아들로 벼슬이 찬성(贊成)이었다. 9세손 김일(金鎰)은 대호군(大護軍)을 지냈으며, 10세손 김록(金祿)은 판전의시사(判典醫寺事)를 역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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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조 계통 ==
시조 '''김조'''(金祚)는 [[고려]] 때 상주(尙州)의 향리(鄕吏)로 호장(戶長)을 지냈다고 한다지냈다. 그의 선계는 상고할 자료가 없어 계대를 정확히 고증 할상고할 수 없다. 《김씨 분관록》·《증보문헌비고》등의 문헌에도 언급이 없고, 다만 《조선씨족통보》에 '''김수'''(金需)의 후예라 한다.
 
=== 인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