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자개: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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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자개'''(阿慈介, [[840년]]?~[[918년]]?)는 [[후백제]](後百濟) 군주 [[견훤]](甄萱)의 아버지이다. [[사벌주|상주]](尙州) [[함창군|고령군]](古寧郡) 가선현(嘉善縣, 지금의 문경시 가은읍) 출신이다. 아자개의 이름이 사서에 따라 한자가 다르게 기록되어 있는데, 아자개(阿慈介) 아자개(阿慈个) 아자개(阿字蓋) 등 여러가지 한자로 표기되었다. 또 다른 이름이 전해지는데, [[이제가기]](李磾家記)에서는 이름이 원선(元善)이라고 기록되어 있기도 한다.
 
[[견훤]]의 후손이 지었다는 《이비가기》에 따르면, 아자개는 [[진흥왕]]의 후손이라고 한다. [[진흥왕]]의 3남 김구륜이 왕교파리를 아내로 맞아 김원선을 낳았는데, 김원선의 아들이김원선이 아자개라는 것이다. 《[[삼국유사]]》는 이러한 내용을 그대로 인용하였다. 아자개는 원래 농민 출신이었으나, 나중에 지금의 [[상주]]에 웅거하면서 세력을 키워 장군이 되었다. [[천수 (고려)|천수]](天授) 원년([[918년]])에 [[고려]]로 망명했다.
 
[[충청남도]] [[논산시]]에는 현재 아자개(阿慈介)의 무덤으로 알려져 있는 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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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계 ==
아자개의 부인은 상원부인(上院夫人)과 남원부인(南院夫人)이며, 자식은 5남 1녀(혹은 아들 4형제)가 있었으니, 장남이 바로 [[견훤]]이라고 한다. [[삼국사기]] 권50 견훤전에서도 [[견훤]]의 아버지가 아자개로 되어 있다. [[견훤]]이 [[892년]] [[무진주]]를 점거하고 [[900년]] ([[효공왕]] 4년) [[완산주]]를 근거로 [[후백제]]를 세운 경우와 같이 아자개가 [[견훤]]과는 독자적인 움직임을 보이고 있는 바 이 때문에 [[견훤]]은 아자개의 아들이 아니며, 두 사람은 출신 지방만 같을 뿐 전혀 별개의 지방세력이라는 견해도 있다.
* 증조부 : 진흥왕
* 아버지 : 각간 김작진(角干 金酌珍)
*증조모 : 사도부인
* 어머니 : [[왕교파리]](王咬巴里)
*할아버지 : 김구륜
* 어머니할머니 : [[왕교파리]](王咬巴里)
* 아버지 : 각간 김작진(角干 金酌珍) = 선품공
** 제1부인 : [[상원]][[부인]](上院夫人)
*** 아들 : [[견훤]](甄萱, 867~936 재위:892/900~93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