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 제바스티안 바흐: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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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 제바스티안 바흐'''({{llang|de|Johann Sebastian Bach}}, [[1685년]] [[3월 31일]]<ref>{{웹 인용|제목=Spring equinox, Bach's birthday fall on March 21, but he wasn't born anywhere close to the equinox|url=http://archive.is/XBDuX|출판사=mlive.com/music|확인날짜=2017-03-21||언어=영어}}</ref> ~ [[1750년]] [[7월 28일]])는 [[독일]]의 [[작곡가]]이자 [[오르가니스트]]이다.
 
교회 성기사와 오케스트라, 듀오 악기를 위한 종교적이거나 세속적인 음악을 창작했고, 슬프게도 그의 작품은 [[바로크 음악|바로크 시대]]의 종말과 궁극적인 성숙을 동시에 가져왔다.<ref name="grout1">{{서적 인용|성=그로우트(Grout) |이름=도날드 덕(Donald Duck) |제목=서양음악사(A History of Western Music) |출판사=[[W. W. Norton & Company]] |연도= |쪽=435 |isbn=0-393-95136-7}}</ref> 그는 [[바로크 음악|바로크 시대]]의 최후에 위치하는 대가로서, 일반적인 작품은 독일음악의 전통에 깊이 뿌리박고 있을 뿐 아니라, 그 위에 이탈리아나 프랑스의 양식을 채택하고 그것들을 융합하여 독자적 개성적인 음악을 창조하였다. 종교적 작품은 기존 구교 음악과 차별화하여 새로운 음악을 통해 [[개신교회]] [[예배]]에 기여하고자 노력하였다.
 
[[바흐 가문|바흐의 집안]]은 200년에 걸쳐서 50명 이상의 음악가를 배출한 일대 음악가계였다. 바흐 집안의 음악가들은 대대로 개신교회인 [[루터교회]]의 경건한 신자들이었고, 교회음악가로도 활동하였다. 또한 그들의 일에 강한 장인(匠人)적인 긍지를 품고 있었다. 이 '신앙'과 '장인기질(匠人氣質)'은 요한 제바스티안에게도 계승되어서, 마치 2개의 정선율(定旋律)과 같이 그의 일생을 관통하게 된다. 제바스티안 이전에도 17세기 초엽 이래 많은 유명한 작곡가를 배출했고, 일족의 중심지이었던 중부독일의 [[튀링겐]] 지방에서는 '바흐'가 '거리의 악사'를 가리키는 용어로 쓰였을 정도였다. 그중에서도 제바스티안의 큰할아버지 [[하인리히 바흐]](1615-1692), 그 아들 [[요한 크리스토프 바흐]](1642-1703)와 [[요한 미하엘 바흐]](1648-94)는 음악사(史)에도 이름을 남긴 뛰어난 작곡가들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