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병화 (법조인):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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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생애 ==
1914년 [[평안북도]] [[룡천군]]에서 태어나 1937년 3월 경성제국대 법학과를 졸업하고 1942년 8월 조선변호사시험에 합격해 법조인이 되었다. 해방 이후 변호사를 하다가 1945년 11월 [[서울지방검찰청]] 검사에 임용되어 1948년 [[서울지방검찰청]] 부장검사, 1960년 [[서울고등검찰청]] 차장검사를 거쳐 1961년 [[대구지방검찰청]]과 [[서울지방검찰청]], 1963년 [[광주고등검찰청]], 1964년 [[서울고등검찰청]]에서 검사장, 1964년 [[대한민국의 대검찰청|대검찰청]] 차장검사를 하면서 [[6.3 사태]] 등을 처리하여 1968년 5월 24일에 제16대 [[대한민국의 법무부 차관]]에 임명되어 1969년 7월 27일까지 지냈다. 경성제대 동기, 동창인 [[민복기]]
[[서울지방검찰청]] 북부지청에서 검사로 있을 때 고리대금업을 하면서 교묘한 수법으로 담보물과 가옥을 가로쳔 변호사 강권석을 구속하는 등<ref>경향신문 1948년 8월 26일자</ref> 불의에 굽히지 않는 곧은 성격의 소유자로 "참나무 같이 곧고 야무지다"<ref>매일경제 1966년 9월 20일자</ref>는 평가를 받은 김병화는 1952년 분쟁 중이던 국영기업체인 조선방직 전무와 그 이후 주택영단 이사장을 맡은 3년을 제외하고 18년을 검찰에 있을 때인<ref>경향신문 1966년 9월 20일자</ref> [[대한민국의 대검찰청 차장검사|대검찰청 차장검사]]로 재직하던 1966년 9월 19일에 [[박정희]] 대통령이 "
== 경력 ==
* 1945년 11월 [[서울지방검찰청]] 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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