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타인잔: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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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3년 대남 뜨득제는 비준에 앞서 불평등한 조약에 불만을 품고 동부 3성 반환 교섭 사절을 양국에 보내지만 실패하였다.
그해 그는 프랑스의 초청을 받고, 그해 11월 베트남 사절단
프랑스 체류 중 그는 사신단과 함께 프랑스를 두루 시찰하던 판타인잔은 산업 혁명과 그 결과물인 증기기관차와 증기선, 프랑스 유럽의 신기술 등을 처음 목격했다. 새로운 문물의 존재를 목격한 그는 크게 충격을 받았다. 베트남으로 귀국한 후 그는 뜨득제에게 프랑스의 말할 수 있는 범위를 넘어선 강력한 신기술과 새로운 문물을 설명한다. 그러나 뜨득제는 그렇지 않다며, 시를 지어 인의와 도덕과 윤리의 힘으로 우리가 프랑스군 침략자들을 격퇴할 수 있을 것이라며 오히려 판타인잔을 책망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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