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래 정씨: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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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구 (1350년)|정구]](鄭矩, 1350년 ~ 1418년): 정양생의 아들. 1377년(우왕 3) 문과에 급제해 전교부령(典校副令)을 지냈고, 1392년 조선이 개국되자 한성부우윤을 지냈으며, 정종 때 도승지·대사헌, 태종 때 예문관학사를 거쳐 중군총제(中軍摠制)·참지의정부사(參知議政府事)·공조판서·호조 판서·판한성부사·계림부윤·개성부유후 등을 역임하였다.
* [[정태화]](鄭太和): 20세손. 1628(인조 6)년 별시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여 승문원정자로 벼슬살이를 시작하여 여러 관직을 두루 거쳤다. 1673(현종 14)년 심한 중풍 증세로 사직이 허락되기까지 20여 년 동안 5차례나 영의정을 지내면서 효종과 현종을 보필하였다. 관직에서 물러난 지 6개월 후 나이 72세로 죽으니, 현종은 3년 동안 늠록(廩祿)과 제수를 내리도록 특명하였고, 그 뒤 현종의 묘정에 배향되었다. 저서로는 시문을 모아 엮은 "양파유고(陽坡遺稿)"와, 1656(효종7)년까지의 일기인 "양파연기"가 있으며, 시조 1수가 전한다.
*정현진(鄭鉉鎭): 21세손. 대전중학교를 졸업했음. 2016년 계룡공고에 입학을 해서 기능부에 들어감. 2017년 계룡디지텍고등학교로 고교명이 바뀌었다. 2018년 전국기능대회 it네트워크부문 장려상을 수상했음. 아주대학교에 1차합격을 했음
 
== 분파 ==
동래 정씨(東萊 鄭氏)의 분파(分派)는 크게 3개파로 나뉘었다. 이 중 2개파는 3세 좌복야 휘 목(穆)의 후손인데 6세 교서랑공 보파와 6세 첨사공 필파이며, 정문도(鄭文道)의 둘째 아들로 동래(東萊)에 남아 호장(戶長)을 지낸 3세 휘 선조(先祚)의 후손들은 호장공파(戶長公派)로 분파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