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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호 =
|서명 =
|연호 = [[남부여]]
}}
'''성왕'''(聖王, 490? ~ [[554년]], <small>재위:</small> [[523년]] ~ [[554년]] [[음력 12월]])은 [[백제]]의 제26대 [[군주|국왕]]이며, 성은 부여(扶餘), [[피휘|이름]]은 명농(明禯)이고, [[삼국유사]]에는 명농(明穠), 중국 측 기록인 [[양서]](梁書)에는 이름이 명(明)으로 기록되었다.<ref>[http://issue.media.daum.net/culture/history/view.html?issueid=2611&newsid=20070502094412232&cp=segye Daum 미디어다음 - 뉴스<!-- 봇이 붙인 제목 -->]</ref> [[무령왕]]의 아들로 결단성이 있고 지혜와 식견이 빼어났다. 무령왕이 죽자 왕위를 이은 명농을 백성들은 '''성명왕'''이라 하였다.<ref>{{서적 인용 |제목= [[삼국사기]] | 저자= [[김부식]] |연도= 1145 |장= [[:s:삼국사기/권26/성왕|본기 권26 성왕]] |인용문= <!--聖王 諱明禯 武寧王之子也 智識英邁 能斷事 武寧薨 繼位 國人稱爲聖王 (성왕(聖王)은 이름이 명농(明禯)이고 무령왕의 아들이다. 지혜와 식견이 빼어나고 일을 잘 결단하였다. 무령이 죽자 왕위를 이었는데 나라 사람들이 일컬어 성왕이라 하였다. )-->}}</ref> 《[[일본서기]]》에는 성명왕(聖明王) 또는 명왕(明王)이라고 기록되어 있다. 성왕은 생존 시에도 성명왕 혹은 성왕이라는 존호로 사용한 것으로 보이는데 '성왕'은 '전륜성왕'을 줄인 이름으로, 성왕은 불가의 전륜성왕(轉輪聖王)을 자처하여 왕실과 국왕의 권위를 높이는데 사상적으로 [[불교]]를 적극 활용한 것으로 여겨진다.<ref>{{서적 인용 |제목= 고대로부터의 통신 | 저자= 한국역사연구회 고대사 분과 |연도= 2004 |출판사=푸른역사 |쪽=256 |id={{ISBN|8987787796}} |인용문= <!--이 기록에서 백제 성왕聖王은 살아 있을 때에도 성왕으로 불리었음을 알 수 있다. 성왕은 전륜성왕을 줄인 말이다. 나라 사람들이 왕을 성왕으로 부른 것은, 왕 자신이 전륜성왕을 자처했기 때문일 것이다. 이는 성왕이 사상적으로 불교를 왕실과 국왕의 권위를 수식하는 데 적극 활용하였다는 의미다.--> }}</ref> 성왕은 왜(倭)에 불상과 불경을 전해주었고<ref>{{서적 인용 |제목= [[일본서기]] | 저자= |연도= 720 |장= [[:s:zh:日本書紀/卷第十九|卷第十九 欽明天皇]] |인용문=<!--十三年...冬十月、百濟聖明王、更名聖王。遣西部姬氏達率怒唎斯致契等、獻釋迦佛金銅像一軀・幡蓋若干・經論若干卷。 (13년(552년) 겨울 10월, 백제의 성명왕(혹은 성왕이라고도 한다)이, 서부 달솔 희씨 노리사치계를 보내어 석가불금동상 1구와 깃발 약간, 경전 여러 권을 보냈다.--> }}</ref>, 또 [[겸익]]이 [[인도]]에서 [[불경]] 등을 가지고 돌아오자 이를 크게 환영하는 한편, 그 불경을 번역하게 하는 등 <ref>{{서적 인용 |제목=[[:s:미륵불광사 사적|미륵불광사 사적(彌勒佛光寺事蹟)]]|인용문=<!--聖王四年丙午 沙門謙益 ... 與梵僧倍達多三藏 齎梵本 阿毘曇藏 五部律文 歸國 百濟王以羽葆鼓吹 郊迎 安于興輪寺 召國內名釋二十八人 與謙益法師 譯律部七十二卷 . (백제 성왕(聖王: 재위 523~554) 4년인 526년(병오년)에 승려 겸익(謙益)이 ... 인도의 승려인 배달다 삼장(倍達多三藏)과 함께 산스크리트어 《아비담장(阿毘曇藏)》과 《오부율(五部律)》 문헌을 가지고 귀국하였다. 백제에 도착했을 때, 새 깃으로 만든 의장(羽葆)를 갖추고 북을 치고 피리를 부는 환영 행사와 함께, 백제 성왕(百濟王)이 직접 성문 밖에 나와서 겸익법사(謙益法師)와 배달다 삼장(倍達多三藏)을 맞이하였다. 성왕은 이들을 흥륜사(興輪寺)에 거주하게 하였고 국내의 이름난 승려(名釋) 28인을 불러 겸익법사와 함께 율부(律部) 72권을 번역하게 하였다. )-->}}</ref> [[불교]] 번성과 교단 정비에 노력하였다. 또한, 공장(工匠)과 화사(畵師) 등을 초빙하여 사찰을 건립하고 불상을 제작하게 하였다.<ref>{{서적 인용 |제목= 고대로부터의 통신 | 저자= 한국역사연구회 고대사 분과 |연도= 2004 |출판사=푸른역사 |쪽=264|id={{ISBN|8987787796}} |인용문= <!--... 불교를 번성케 하고 교단을 정비하려고 노력한 것으로 미루어볼 때, 공장과 화사 등을 초빙한 것은 사찰과 장엄한 불상을 세우기 위해서였다고 본다.--> }}</re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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