즈엉녓레: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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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트남의 역사서 대월사기전서(大越史記全書)에 따르면 아버지는 즈엉크엉(Dương Khương)이라고 기록되어 있다. 즈엉녓레의 어머니가 임신했을 때 황제 명종의 장남 공숙왕 쩐죽(Trần Dục)에게 눈이 맞아, 쩐죽하였다. 진욱은 즈엉녓레를 자신의 아들로 키웠다.
 
양아버지 진욱은 황제로 즉위를 할 일순위가 될뻔 했지만, 무능한 군주인 아버지 명종에 의해서 폐서인이 되었고, 진욱의 동생 헌종이 즉위하고, 뒤를 이어서 유종이 제위에 올랐다. 다이찌(Đại Trị) 12년(1369년)에는 자녀가 없었던 유종이 승하를 하자, 후계자 문제가 불거지자 유종의 어머니 헌자태후히엔뜨태후(憲慈太后Hiến từ Thái hậu)의 지원을 받아 즈엉녓레가 황제로 즉위하게 됐다.
 
즉위 후 자신을 황제로 즉위하게 헌자태후를히엔뜨태후를 비롯한 여러 왕족을 차례로 처형을 하였다. 또 국정을 보지 않고, 주색에 빠지고, 사치를 많이 하는 등 무례한 행동을 많이 하였다. 또 자신의 성씨를 진씨에서 본래의 성씨인 양씨로 환원을 하였다. 그의 행동이 역성혁명을 시도하는 것으로 보고는 그의 지지하는 신하와 진씨 왕족들은 대정 2년(1370년) 쿠데타를 결행하였다. 9월에는 유종의 형인 태재 공정왕 [[쩐응우옌짝]](Trần Nguyên Trác) 일당들이 일으킨 첫번째 쿠데타는 진압했지만, 11월 진원탁의쩐응우옌짝의 형인 우상국 공정왕 진부쩐푸(右相國恭定王陳暊Trần Phủ)가 일으킨 두번째 쿠데타는 많은 배반자가 나왔고, 즈엉녓레는 반란군에게 붙잡혔다가 아들인 즈엉리에우(Dương Liễu)와 함께 처형됐다.
 
사후에는 쩐씨가 아니고 즈엉씨였고, 황제로 즉위하는것이 명분이 없었다고 하여, 시호를 받지 못하고, 즉위전 작위인 혼득꽁 (Hôn Đức công)으로 불려 졌다. 성을 원래 성씨인 즈엉씨로 역사에 기록하게 되었다. 즈엉녓레의 불과 일년 동안의 치세에서 벌어진 대학살이 쩐 왕조 멸망의 원인을 제공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