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비에트 민정청: 두 판 사이의 차이
내용 삭제됨 내용 추가됨
Sangjinhwa (토론 | 기여) 편집 요약 없음 |
잔글 정리. |
||
1번째 줄:
{{옛 나라 정보
|존속기간_시작= 1945년 10월 3일
줄 38 ⟶ 37:
}}
{{한국사}}
'''소비에트 민정청'''(소비에트 民政廳, {{llang|ru|Советская гражданская администрация}})은 [[태평양 전쟁]]에서 승리한 [[소비에트 연방]]이 한국의 38선 북쪽 지역에 설치한 통치기구다. 이름만 민정청이지 사실상 군정이었다. 소련은 미국의 [[재조선미육군사령부군정청]]과 달리 북쪽에는 직접 통치는 그리 오래하지 않았다. 1946년 2월 9일에 북조선임시인민위원회를 출범시켜 표면적으로 북한 임시정부 구실을 하게하면서, 소련군이 철수할 때까지 민정청이 이를 지휘감독하였다.
49번째 줄:
[[소련]]이 [[만주 전략공세작전]]을 통해 [[경흥군]] 웅기(雄基)를 거쳐 [[청진시]]를 공격하였다. 그 이후에도 계속해서 남하하여 38선 북쪽을 완전히 점령하였다. [[소련]]은 [[조만식]]과 손을 내밀었지만 꼭두각시였던 [[김일성]]을 위원장으로 맞이하여 6개월간 소련군정을 실시했다. 1946년 2월 16일부터는 [[북조선인민위원회]]가 설립되어 1948년 9월 9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이 수립될 때까지 계속되었다.
그러나 민의와 무관하게 소련군의 도움으로 인민위원장이 된 [[김일성]]은 해방 직전 5년간 소련군에서 교육과 훈련을 받은 소련의 대리인에 불과하였고, 중요한 사안에 대한 결정은 계속 소련군이 내렸다.<ref name="lws">[http://www.dailynk.com/korean/read.php?cataId=nk01410&num=104336 (이휘성 어제와 오늘) 1940년대 말 북한 관리했던 소련 간부를 통해 본 北역사왜곡]
당시의 북한 통치 업무는 "[[스탈린]]을 수반으로하는 소련최고사령부 → [[우수리스크|보로실로프]]의 연해주군관구 사령부 → 평양의 제25군 → 소련 민정청 → [[김일성]]을 수반으로하는 북조선(임시)인민위원회"의 명령 계통으로 진행되었다.<ref name="lws"/> [[김일성]]이 1946년 2월 8일 임시인민위원장이 된 직후인 1946년 3월 5일 단행된 북한의 토지개혁<ref>[http://www.dailynk.com/korean/read.php?num=81467&cataId=nk00500 1946년 北 토지개혁령은 '협동농장'으로 변질됐다] 데일리NK 2010-03-04</ref> 등 중요한 사안은 소련 민정청에서 결정, 실행하였다.<ref name="lws"/><ref name="jang"/>
55번째 줄:
==각주==
<references />
== 같이 보기 ==
줄 69 ⟶ 68:
{{소련의 점령지}}
[[분류:한국의 군정기]]
[[분류:소련-한국 관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