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벤스라움: 두 판 사이의 차이

내용 삭제됨 내용 추가됨
잔글 큐앤앤큐(토론)의 편집을 TedBot의 마지막 판으로 되돌림
22번째 줄:
 
=== 인종주의 사상 ===
<nowiki>[[바이마르 공화국]]</nowiki>의공화국의 국내 정치에서, 레벤스라움의 지정학적, 특히 제1차 세계 대전에서의 군사적 패배를 복수하고, 독일을 지리적, 경제적, 군사적으로 독일에 손해를 입힌 [[베르사유 조약]]의 명령을 뒤집기 위한 극단적 민족주의에의 사용은 카를 하우스호퍼와 뮌헨에 있던 그의 지정학 연구소 덕분으로 여겨진다. 정치인 아돌프 히틀러는 [[민족사회주의]]에서의 "불가피한 팽창"의 지정학은 인구 과잉을 뒤집고, 천연 자원을 공급하며, 독일 민족의 명예를 드높일 것이라고 주장했다. ''[[나의 투쟁]]''에서, 히틀러는 동유럽 — 특히 [[소련]]의 우크라이나 — 을 식민지화하고 인구 과잉의 문제를 해결하고, 유럽 국가들이 그의 지정학적 요구에 따르게 될 운명을 지닌 그의 대게르만 제국의 철학적 기반으로서의 레벤스라움에 대한 구상을 밝혔다.
 
민족사회주의에서 레벤스라움의 ([[선전 (사회학)|선전]], 정치, 공식 석상에서의)사용은 분명 인종주의적이었고, 이는 "인종적으로 우월한" [[게르만족]](''Herrenvolk'')이 폴란드, 러시아, 우크라이나의 슬라브족, 그리고 "[[동유럽|동방]]"의 비 게르만 인구 등의 "인종적으로 열등한" 인류(''Untermenschen'')의 희생을 통한 문화적 운명을 충족시키기 위한 [[신비주의]]적 권리를 정당화하기 위해서였다.<ref>''The Penguin Dictionary of International Relations'', Graham Evans & Jeffrey Newnham, Editors. (1998) p. 301.</ref> 프리드리히 라첼의 인문지리학 용어에 대한 요한 루돌프 쉘렌의 지정학적 인식에 기반해, [[제2차 세계 대전]] 개전 당시의 [[나치 독일]]은 동유럽 사회의 희생을 통한 [[대게르만 제국]]의 실현을 위해 레벤스라움을 대외 정책의 인종주의적 근거로 정의했다.<ref name="Encyclopædia Britannica p. 9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