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산 김씨: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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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조 '''김추'''(金錘)는 [[경순왕]]의 8자로, [[경순왕]]과 [[고려 태조]]의 맏딸인 [[낙랑공주 (고려)|낙랑공주]] 소생으로 상서령을 지내고 일선군(一善君)에 봉해졌다고 한다. 혹칭 '''들성 김씨'''(坪城 金氏)라 한다.
 
이후 세계가 실전되어 [[고려]]말 화의군(和義君) '''김기'''(金起)를 1세조(世祖)로 하여 세계를 이어오고 있다. 그는 중서령 '김성원'(金成元)의 아들로 [[고려]]말 출사하여 광주목사(廣州牧使)를 역임하고 '''화의군'''(和義君)에 봉해졌다. 기울어져 가는 [[고려]]의 사직을 개탄하여 관직을 버리고 불사이군(不事二君) 정신으로 낙향하여 [[선산군]] [[옥성면]] 포상동(浦上洞) 하송산(下松山) 아래에 터를 잡고 살다 여생을 마쳤다고 한다. 화의(和義)는 [[선산군|선산]](善山)의 별호인 관계로 후손들이 본관을 [[선산]]으로 하였다.
 
후손들이 번성하면서 비좁은 골짜기를 벗어나 청룡산과 당산 줄기가 사방 20리나 병풍처럼 둘러싸인 남쪽 들판으로 옮겨 '들성'(坪城)이라 명하고 정착하여 500여년 세거지로 명성을 드높였다. '들성'(坪城)은 오늘날의 [[경북]] [[선산군]] 고아면 원호동(元湖洞)이다. 이후 혹칭 '''들성(평성) 김씨'''(坪城 金氏) 라고도 한다.<ref>선산김씨 김추(金錘)계[[http://www.shinjongwoo.co.kr/html/search.html]]</ref>