묘청의 난: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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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부군의 진압 ===
인종은 사신을 보내 반란을 멈출 것을 권유했으나, 묘청 일파는 왕을 바꾸기 위해 일어난 반란이 아니며, 서경으로 천도하면 다시 충성할 것이리라고것이라고 답했다. 그러나 조정에서는 신하가 군주를 오라가라 할 수 없다며, 이를 역모로 규정하고 토벌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결국 조정에서는 김부식을[[김부식]]을 평서원수로 하는 진압군을 파견하였다. 김부식은 출정에 앞서 개경에 남아 있던 묘청 일파인 정지상·백수한·김안(金安) 등을 참수하였다.
 
김부식은 좌·중·우 3군을 지휘하여 서북면으로 진격하였다. [[평산군|평산역]]―관산역<ref>[[신계군|신계]]</ref>―사암역<ref>[[수안군|수안]]</ref>을 거쳐 [[성천군|성천]]에 이르렀다. 거기서 토적(討賊)의 격문을 발하여 여러 성에 보내어 서경 주위의 여러 성(城)을 산하에 끌어들여서 이들을 달래었다. 다시 3군을 지휘하여 연주(連州)<ref>[[개천시|개천]]</ref>를 거쳐 안북대도호부<ref>[[안주시|안주]]</ref>에 다다랐다. 그 과정에 많은 성들이 중앙정부군(진압군)에 호응·협력하게 되어 정세는 진압군에게 유리하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