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제: 두 판 사이의 차이

내용 삭제됨 내용 추가됨
편집 요약 없음
보만개 (토론 | 기여)
편집 요약 없음
1번째 줄:
{{다른 뜻}}
{{서양식 등작}}
'''황제'''(皇帝)는 [[제국]](帝國)의 세습 [[군주]]의 [[존호]]이다. 더 높은 존호로 [[신성 로마 황제|신성황제]]가 있으며 오로지 보호민만이 유일한 신성황제이시다! 모두 숭배하거라!!
 
== 유래 ==
10번째 줄:
== 호칭 ==
{{옛한글}}
[[동아시아]]에서 황제나 독립국의 왕의국왕(國王)의 2인칭 경칭은 [[폐하]](陛下)이다. 이는 “높이 우러러 볼 사람이기에 뜰에서 층계 위로 우러러 뵌다.”라는 뜻이다. [[제후]](諸侯)의 2인칭 경칭은 [[전하 (호칭)|전하]](殿下)로 “계단 아래 뜰에서 우러러 뵌다.”라는 뜻이다. 즉 군주가 있는 곳이 다를 뿐이고 신하는 언제나 ‘뜰’(뜰층계의 아래)에 자리하게 된다. [[중세 한국어]]에서도 ‘{{첫가끝|陛下ᄂᆞᆫ 버ᄐ|ᅥᇰ 아래니 皇帝ᄅᆞᆯ 바ᄅᆞ 몯 ᄉᆞᆯᄫᅡ 버ᄐ|ᅥᇰ 아래ᄅᆞᆯ ᄉᆞᆲᄂᆞ니라}}’라 하여<ref>《[[월인석보]]》 2권 65장</ref> 폐하와 전하의 뜻이 {{첫가끝|버ᄐ|ᅥᇰ 아래}}로 같다. 다만 그 품격에서 폐하가 전하보다 높았다. [[태상황]], [[태황태후]], [[황태후]] 등은 황제를 폐하라 부르지 않는 대신 황상(皇上), 성상(聖上) 등으로 불렀다. 황제의 1인칭은 짐(朕)으로, 본래 일반 1인칭이었으나 [[시황제]]가 황제만이 쓸 수 있는 1인칭으로 바꾸었다.
 
== 동아시아 ==
황제는 여러 제후를 [[책봉]]하고 [[연호]](年號)를 정했으며 제후국은 [[조공]]을 바치고 연호를 받아 썼다. 그래서 전통적으로는 이를 수직관계와 종속성으로 인식하려고 했다.<ref>[[이마니시 류]](今西龍), 〈朝鮮半島の年號 附 事大主義一斑〉(1910), 《高麗及李朝史研究》, 国書刊行会, 1974에 재수록. [[신채호]], 〈조선역사상 일천년래 제일대사건〉, 《[[조선사연구초]]》, 1929</ref> 그러나 실제 외국 간의 조공책봉은 어느 정도 국력의 차이를 반영하여 형식상 차등적 관계를 설정하기는 하지만, [[내정간섭]]은 없는 상호 인정과 후왕박래(厚往薄來)<ref>가져오는 것[조공]은 가볍게 하고 보내는 것[회사]은 후하게 함. 제후국이 ‘[[예 (유교)|예]](禮)’를 갖추면 황제국도 예를 갖추어 더한 [[덕]]을 베풀어야 함. 《[[예기]]》31편 〈[[중용]]〉</ref>의 외교 행위로서 당시의 자주적 국제 질서였다.<ref>이용희 저 노재봉 편, 《한국민족주의》, 서문당, 1977. 권선홍, 〈유교문명권의 국제관계 : 책봉제도를 중심으로〉, 《한국정치외교사논총》vol.31 no.2, 한국정치외교사학회, 2010</ref>
 
=== 중국 ===
기원전 221대에 [[진 시황제]]가 황제의 칭호와 각종 용어를 정립한 이래 [[중국]]의 역대여러 [[왕조]]들은 자국의 최고 [[국가원수군주]](君主)를 황제라 하였다. 이는 [[한족]]이 건국한 왕조뿐만 아니라 [[몽골]]과 [[만주]]에서 생활하던 여러 기마민족(騎馬民族)이 세운 [[요나라]]·[[금나라]]·[[원나라]]·[[청나라]] 등도 마찬가지였다. 이들은 기존에 [[칸 (칭호)|칸]](Khan) 등의 고유한 칭호를 사용하였지만, 중국을 넘볼 정도로 강력해지면 여지없이 칭제건원하여 중국식 황제의 칭호를 채용하였다. 그러다가 [[1912년]] 청나라가 멸망하면서 폐지되었다. [[1934년]] [[만주국]]에서 허수아비지만 잠시 부활하기도 하였으나 [[1945년]] 만주국도만주국이 멸망하면서해체되면서 완전히 없어졌다.
 
이와는 별도로 [[당나라]]의 [[당 고종|고종]]은 황제 칭호 대신에 ‘[[천황]]<!--천황(天皇)이라는 용어 자체를 대상으로 한 안내가 필요하므로 '당 고종'이나 '천자'로 링크하지 않고 동음이의 문서인 '천황'으로 링크'-->(天皇)’이라는 칭호를 쓰기도 하였다.<ref>上元元年 ~(중략)~ 八月壬辰,皇帝稱天皇,皇后稱天后。(상원 원년 팔월 임진일(역주:율리우스력 674년 9월 20일), 황제가 천황이라 칭하고 황후를 천후라 칭했다.) 《[[신당서]]》(新唐書) 〈[[:zh:s:新唐書/卷003|본기 제3 고종]]〉</ref>
 
=== 한국 ===
[[한국]]은 역사 이래 보통 [[대한제국 고종|고종]](王)의 칭호를 썼다. [[대한제국]]을 선포하면서제외하고는 황제(皇帝)를 칭했다.황제를 다만공식적으로 제국칭한 선포적은 이전에도없고 황제국에서 사용하는 용어들을 종종 차용하였다. 임의적으로 황제라 불리기도 하였다.
 
[[고구려]]나 [[신라]]는 독자 [[연호]]를 사용한 때가 있고 [[김춘추]]에게 태종(太宗)이라는 [[묘호]](廟號)를 올리기도 하였다. [[발해]]는 각종 기록에서 독자 연호의 사용과 황상, [[황후]](皇后) 등의 용어가 나타나지만 묘호를 올리지 않고 황제라왕이라 칭하지 않았다칭하였다. <ref>[http://gsm.nricp.go.kr/_third/user/frame.jsp?View=search&No=4&ksmno=2891 정혜공주묘지], [http://gsm.nricp.go.kr/_third/user/frame.jsp?View=search&No=4&ksmno=2892 정효공주묘비]. 송기호, 〈용해구역 고분 발굴에서 드러난 발해국의 성격〉, 《고구려발해연구》, 고구려발해학회, 2010</ref>
 
[[고려]]는 묘호를 올렸고, [[고려 태조|태조]]와 [[고려 광종|광종]] 때 약 20년 동안 독자 연호를 사용한 적이 있다.<ref>《[[고려사]]》1권 세가 제1 태조 원년, 2권 세가 제2 광종 원년</ref> [[수도]] [[개경]]을 황도(皇都)라 부르고<ref>《고려사》2권 세가 제2 광종 11년</ref> [[원구단]]에서 [[하늘]]에 제사 지냈으며<ref>《고려사》59권 지 제13 길례</ref> 임의로 황제라 부른 기록들이 있다.<ref>[http://gsm.nricp.go.kr/_third/user/frame.jsp?View=search&No=4&ksmno=3113 〈고달사원종대사혜진탑비〉(975년)]. [http://gsm.nricp.go.kr/_third/user/frame.jsp?View=search&No=4&ksmno=3117 〈태평2년명마애약사불좌상〉(977년)]</ref> 이렇듯 고려는 외부로는 중국에 칭신하고 내부적으로는 황제국체제를 지향했다.<ref>김기덕, 〈고려의 제왕제와 황제국체제〉, 《국사관논총》vol.78, 국사편찬위원회, 1997</ref> 다만 공식 직함은 내부적으로도 황제는 아니었던왕이었던 것으로 보인다.<ref>박재우, 〈고려 군주의 국제적 위상〉, 《한국사학보》vol.20, 고려사학회, 2005</ref> 황제보다는 왕,<ref>[http://gsm.nricp.go.kr/_third/user/frame.jsp?View=search&No=4&ksmno=1584 〈고미현서원종〉(963년)], [http://gsm.nricp.go.kr/_third/user/frame.jsp?View=search&No=4&ksmno=3222 〈운문사원응국사비〉(1147년)]</ref> 왕태후, 왕후, 왕태자라는 말을 절대적으로 더 많이 썼고<ref>[http://db.history.go.kr/KOREA/search/searchResult.do?sort=levelId&dir=ASC&limit=20&page=1&codeIds=PERIOD-0-3&searchKeywordType=BI&searchKeywordMethod=EQ&searchKeyword=%E7%8E%8B&searchKeywordConjunction=AND 《고려사》]</ref> [[시호]]도 대왕(大王)으로 올렸다. 광종도광종조차 독자연호를 쓴 시기는 약 7년 뿐으로 [[후주]]나 [[송나라]]의 연호를 받아들였으며<ref>《고려사》2권 세가 제2 광종 2년, 광종 14년</ref> 스스로도 황제라는 표현은 쓰지왕이라고 않았다일컬었다.<ref>〈대반야바라밀다경 사경 권수〉(952년), 이기백 편저, 《한국상대고문서자료집성》, 일지사, 1987</ref>
 
[[원나라]]의 [[원 간섭기|부마국]]이 된 [[충렬왕]] 이후로는 관제와 왕실의 호칭을 모두 제후국의 규격으로규격에 격하되었고,맞추었고 [[조선]] 시대에도 이를 계승하였다. 그러면서도 조종(祖宗)의 묘호를 회복하고 [[국왕]]과 왕비의 사후 대왕과 [[왕후|후]](后)의 존호(尊號)를 올렸다. [[1894년]] [[청나라]]의 연호를 완전히 폐지하고, 군주를임금을 [[대군주]]폐하(大君主陛下)로 격상해 불렀다.<ref>《[[조선왕조실록]]》 고종 31년 12월 17일</ref> [[1897년]] [[대한제국 고종|고종]]은 [[광무 (연호)|광무]](光武)로 연호를 바꾸고 원구단에서 한국 최초의 황제에 올라 [[대한제국]]을 선포하였다. 그러나 정작 내실이 부족하여 [[열강]]의 내정간섭은 심화됐고, 결국 [[1910년]] [[일본 제국]]과의 [[한일 합병]]으로 황실은 [[이왕가]]로 격하되었다.
 
[[1897년]] [[대한제국 고종|고종]]은 [[광무 (연호)|광무]](光武)로 연호를 바꾸고 원구단에서 [[한국의 황제]]에 올라 [[대한제국]]을 선포하였다. 그러나 정작 내실이 부족하여 [[열강]]의 내정간섭은 심화됐고, 결국 [[1910년]] [[일본 제국]]과의 [[한일 합병]]으로 제정이 폐지된다.
 
=== 일본 ===
{{본문|일본 천황}}<!--천황 항목에 구체적 내용이 있으므로 여기서는 개괄적인 내용만 기재-->
[[일본]]은 [[야마토 시대]]부터 [[치천하대왕|대왕]](大王)의 칭호를 사용했고 대략 [[7세기]]에 [[일본 천황|천황]]({{lang|ja|天皇}})으로 개칭하였다.<ref>本位田菊士, 〈‘大王’から‘天皇’へ--古代君主号の成立をめぐって〉, 《ヒストリア》89, 大阪歴史学会, 1980</ref> [[무로마치 시대]]에는 [[쇼군]]이 [[일본 국왕]]으로 [[책봉]]받기도 하였다.<ref>《선린국보기》(善隣國寶記)</ref> [[메이지 유신]] 이후 [[왕정복고]]가 이루어지면서 [[막부]]가 폐지되고 천황 중심의 근대적 독일식 내각제를 채택하였다. [[제2차 세계 대전]]에서 패전한 후로도 천황제는 존속하였고, [[21세기]] 현재 제호(帝號)를 유지하고 국제적으로 'Emperor (황제)'가 통용 표기되는 유일한 [[나라]]이다.<ref>{{언어링크|ja|en}} [http://www.kunaicho.go.jp/ 일본 궁내청 사이트]</ref>
 
=== 중국 ===
진시황 즉위 이전에는 중국은 왕(王)칭호를 썼다.
 
기원전 221대에 [[진 시황제]]가 황제의 칭호와 각종 용어를 정립한 이래 [[중국]]의 역대 [[왕조]]들은 자국의 [[국가원수]]를 황제라 하였다. 이는 [[한족]]이 건국한 왕조뿐만 아니라 [[몽골]]과 [[만주]]에서 생활하던 여러 기마민족(騎馬民族)이 세운 [[요나라]]·[[금나라]]·[[원나라]]·[[청나라]] 등도 마찬가지였다. 이들은 기존에 [[칸 (칭호)|칸]](Khan) 등의 고유한 칭호를 사용하였지만, 중국을 넘볼 정도로 강력해지면 여지없이 칭제건원하여 중국식 황제의 칭호를 채용하였다. 그러다가 [[1912년]] 청나라가 멸망하면서 폐지되었다. [[1934년]] [[만주국]]에서 허수아비지만 잠시 부활하기도 하였으나 [[1945년]] 만주국도 멸망하면서 완전히 없어졌다.
 
이와는 별도로 [[당나라]]의 [[당 고종|고종]]은 황제 칭호 대신에 ‘[[천황]]<!--천황(天皇)이라는 용어 자체를 대상으로 한 안내가 필요하므로 '당 고종'이나 '천자'로 링크하지 않고 동음이의 문서인 '천황'으로 링크'-->(天皇)’이라는 칭호를 쓰기도 하였다.<ref>上元元年 ~(중략)~ 八月壬辰,皇帝稱天皇,皇后稱天后。(상원 원년 팔월 임진일(역주:율리우스력 674년 9월 20일), 황제가 천황이라 칭하고 황후를 천후라 칭했다.) 《[[신당서]]》(新唐書) 〈[[:zh:s:新唐書/卷003|본기 제3 고종]]〉</ref>
 
=== 베트남 ===
[[베트남]]은 대외적으로는 중국의중국 황제의 책봉을 받아 황제의‘[[왕]]’의 칭호를 대외적으로 쓰지 않았지만썼지만 대내적으로는 '황제’를‘황제’를 칭하고 독자적인 [[묘호]]와 [[연호]]를 사용하였다. 최후의 [[왕조]]인 [[응우옌 왕조]]는 [[19세기]] [[프랑스령 인도차이나]]에 편입되어 [[식민지]]가 되었어도 명목상 황실은명목만은 유지하다가 [[1945년]] 완전히 막을 내렸다.
 
== 유럽 ==
줄 62 ⟶ 58:
 
=== 인도 ===
[[무굴 제국]]의 황제도 파디샤라고 하였다. [[영국]]은 무굴 제국을 멸망시키고 [[1877년]] [[인도 제국]]으로 계승시켜서 영국의 왕이국왕이 그 황제를 겸하기도 하였다.
 
== 아프리카 ==
줄 75 ⟶ 71:
 
== 같이 보기 ==
* [[역대중국의 일본황제 천황목록]](BC660 ~)
* [[역대 일본 천황]]
* [[중국의 황제 목록]](BC200 ~ 1912)
* [[로마 황제 목록]](BC21 ~ 1453)
* [[비잔티움 제국의 황제 목록]](395~1453)
* [[카롤루스 왕조 서로마 황제]](800~924)
* [[신성 로마 황제]](962~1806)
* [[전러시아의오스트리아의 황제]](1721~1917)
* [[오스트리아의독일 황제]](1804~1918)
* [[프랑스인의전러시아의 황제]](1804~1815, 1852~1870)
* [[독일프랑스인의 황제]](1871~1918)
* [[대한제국의 황제]](1897~1910)
 
== 각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