콘스탄츠 공의회: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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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Vaclav Brozik - Hus.jpg|섬네일|right오른쪽|콘스탄츠 공의회의 [[얀 후스]]by [[Václav Brožík]]]]
'''콘스탄츠 공의회'''(Konstazer Konzil 1414~1418)는 로마-독일왕(roemisch-deutscher Koenig) [[지기스문트]]가 제창하여 [[대립교황 요한 23세]]가 남독일 [[보덴 호|보덴 호반]]의 [[콘스탄츠]]에 소집한 [[기독교]]의 [[공의회]]이다. 중세 최대의 종교회의로, 각국의 군주·추기경·대주교·신학 박사 등 외에, 여러 부류의 인사들을 포함한 약 10만 명의 군중이 이 소도시에 집합했다고 한다. 이 회의는 병립하던 세 [[교황]]을 모두 폐위할 것을 의결하고, 공의회의 권력은 교황권보다 우위에 있으며, 교황도 신앙 및 교회 개혁에 관한 문제에 대해서는 회의의 결정에 복종해야 한다는, 이른바 공의회 지상주의를 천명하고, 새로운 통일 교황으로서 [[교황 마르티노 5세]]를 선출하였다. 교회 개혁을 중요 의제로 했기 때문에 개혁의 교회 회의라 불리는데, [[1378년]] 이후의 교회 대분열에 종지부를 찍고, [[존 위클리프|위클리프]]를 이단으로 몰고 종교개혁가 [[얀 후스|후스]]를 화형에 처하여 이단 문제를 해결한 데 의의가 있었다. 또 후스를 돕기 위해 공의회에 온 [[프라하의 제롬]]역시 화형에 처했다. 교황에 대한 공의회의 우월성이 인정되었지만 그 배후에 세속 제후의 힘이 있었으므로 결국 교황권을 약화시키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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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류:1414년 기독교]]
[[분류:1418년 기독교]]
[[분류:바덴뷔르템베르크주의 역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