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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생일=
|출생지= [[하이집트]] 고센
|사망지= [[모압]]의
|사망일=
|사망원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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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업= [[선지자]]
|종교=
|배우자= [[
|자녀= [[게르솜]] [[엘리에젤]]
|부모= [[아므람]](부) [[요게벳]] (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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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웹사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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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세'''([[히브리어]]:מֹשֶׁה)는 [[구약성서]]의 [[출애굽기]](탈출기)부터 [[신명기]]에 나오는 [[예언자]](預言者)이다. [[이스라엘]] 민족의 지도자이자 [[유대교]], [[기독교]],, [[이슬람교]]의 위대한 예언자 중 하나다. '모세'는 이집트의 공주,
이집트인들은 이스라엘 백성들을 더욱 혹독하게 부렸다. 그들은 흙을 이겨 벽돌을 만드는 일과 밭일 등 온갖 고된 일을 시키면서 이스라엘 백성을 괴롭혔다. 한편 애굽왕은 히브리 산파-한 사람은 십브라(출1:15)였고 또 한 사람은 부아였다-들에게 명령을 내렸다. "너희는 히브리여인을 위하여 해산을 도울 때에 그 자리를 살펴서 아들이거든 그를 죽이고 딸이거든 살려두라(출1:16)" 그러나 산파들은 애굽왕이 하라는 대로 하지 않고 사내아이들을 살려주었다. 애굽왕이 산파들을 불러들여 "사내아이들을 살려두다니, 어찌하여 이런 짓을 하였느냐?" 하고 꾸짖었다. 산파들이 바로에게 대답하였다. "히브리 여인들은 이집트 여인과는 달리 기운이 좋아 산파가 가기 전에 아기를 낳아버립니다." 고로, 이스라엘 백성은 늘어났다. 그러자 바로는 다시 명했다. "히브리인들이 계집아이를 낳으면 살려두되 사내아이를 낳으면 모두 강물에 집어넣어라."(출애굽기 1:6-22) 히브리 산파들에게 사내아이가 태어나면 죽이라고 했는데 이들이 거부하자,사내아이들은 강물에 익사시키고 여자아기만 살려두는 박해를 실시하였다. 이때 태어난 사람이 모세이다. 모세는 어머니와 누나 미리암(후에 여자 [[예언자]] 즉, 여자 설교자가 된다.)의 기지로 겨우 살아남았다. 아기를 더 숨겨둘 수 없게 되자 갈대상자를 얻어다가 역청과 나무진을 바르고 그 속에 아기를 뉘어 강가 갈대 숲 속에 놓아두었는데, 마침 바로의 딸이 강에 목욕하러 왔다. 공주는 아기를 보자 측은지심이 들어 키우고자 했다. 숨어서 이 광경을 보던 누나 미리암의 제안으로 모세의 어미가 유모 일을 하게 되었다. 공주는 모세를 양자로 삼았고, [[강]]에서 건진 아이라는 뜻으로 모세라고 이름도 지어주었다.▼
== 일생 ==
* '''출생'''
▲[[출애굽기]]에 따르면 요셉을 모르는 [[파라오]]가 즉위하자 이집트인들은 이스라엘 백성들을 더욱 혹독하게 부렸다. 그들은 흙을 이겨 벽돌을 만드는 일과 밭일 등 온갖 고된 일을 시키면서 이스라엘 백성을 괴롭혔다. 한편
* '''모세의 미디안 생활'''
40세가 된 모세는 동족인 이스라엘 민족이
* '''광야 생활'''
이집트에서 탈출한 모세는 불평불만이 심한 백성들과 논쟁을 벌이며, 광야생활을 해야 했다.
이것을 보고 이스라엘 백성은 그것이 무엇인지 몰라서 서로 "이게 무엇이냐?" 하고 물었다. 모세가 그들에게 말하였다. "이것은 야훼께서 너희에게 먹으라고 주시는 양식이다. 야훼의 명령이니 저마다 먹을 만큼씩 거두어들여라. 한 사람에 한 오멜씩 식구 수대로 거두어들이면 된다." 이스라엘 백성은 시키는 대로 하였다. 많이 거두어들이는 사람도 있었고 덜 거두어들이는 사람도 있었으나, 오멜로 되어 보면 많이 거둔 사람도 남지 않고 적게 거둔 사람도 모자라지 않았다.(출애굽기 16:11-18)</REF>
모세는 가나안에 들어가지는 못했는데, 모세가 해야 할 일은 민족을 구원하는 일이었지 가나안 입성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가나안의 입성은 후계자 [[여호수아]]가 이루어냈다.
== 성서고고학에서 보는 출애굽 (이집트 탈출) 사건 ==
== 십계명 ==
{{십계명}}
이집트에서 탈출한 모세와 이스라엘 민족은 40년간 사막을 여행했으며, [[십계명]]을
== 모세의 저작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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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론'''
신명기 34장에 그의 죽음에 대해 언급되어 있는<REF>야훼의 종 모세는 그 곳 모압 땅에서 야훼의 말씀대로 죽어 모압 땅에 있는 벳브올 맞은편 골짜기에 묻혔는데 그의 무덤이 어디에 있는지는 오늘까지 아무도 모른다. 모세는 죽을 때 나이 백이십 세였다. 그러나 그의 눈은 아직 정기를 잃지 않았고 그의 정력은 떨어지지 않았었다. 이스라엘 백성은 모압 광야에서 삼십 일 동안 모세의 죽음을 슬퍼하며 곡했다. 이렇게 그들은 모세의 상을 입고 곡하는 기간을 채웠다. 눈의 아들 여호수아는 하느님의 영을 받아 지혜가 넘쳤다. 모세가 그에게 손을 얹어주었던 것이다. 그의 지휘 아래 이스라엘 백성은 야훼께서 이미 모세에게 분부하신 일을 다 이루었다. 그 후로 이스라엘에는 두 번 다시 모세와 같은 예언자, 야훼와 얼굴을 마주보면서 사귀는 사람은 태어나지 않았다. 모세가 야훼의 사명을 띠고 이집트 땅으로 가서 파라오와 그의 신하들과 그의 온 땅에 행한 것과 같은 온갖 기적과 표적을 행한 사람은 다시 없었다. 모세처럼 강한 손으로 그토록 크고 두려운 일을 온 이스라엘 백성의 눈앞에서 이루어 보인 사람은 다시 없었다.(신명기 34:5-12)</REF>것 등을 이유로 모세오경의 모세저작설을 부정하는 학자들이 있다.
그러나 신명기 1장 1절<ref>
== 관련 문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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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같이 보기 ==
* [[구약성서]]
* [[람세스 2세]]
* [[출애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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