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미아 (도시):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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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후 [[마케도니아 왕국]]의 [[알렉산드로스 3세]](대왕)에게 정복당했지만, 알렉산드로스 대왕이 죽은 이후 [[아테네]]와 그리스의 다른 폴리스는 마케도니아 왕국의 지배에 반발했다. 이때 마케도니아 왕국 의 장군 안티파트로스는 라미아 마을로 도망했다. 이때 [[기원전 323년]]부터 [[기원전 322년]]에 걸쳐 진행된 [[라미아 전쟁]]은 아테네의 장군 [[레오스테네스]]의 죽음과 20,000여명의 마케도니아 왕국군이 라미아에 도착하면서 끝이 났다. 그 후, 특히 [[아이톨리아 동맹]]의 통치 하에 들어갔다.
 
[[기원전 3세기]]에 라미아 마을은 번창했다. 그러나 [[기원전 190년]]에 [[로마 공화정]]의 [[집정관]] [[마니우스 아킬리우스 글라브리오]]가 라미아를 점령하면 마을의 번영은 끝났다. [[1446년]]에 [[오스만 제국]]의 통치에 들어갔다. [[1829년]]에는 그리스령이 되었고, [[1881년]]까지는 국경에 접한 도시였다.
 
[[1446년]]에 [[오스만 투르크]]의 통치에 들어갔다. 1829에는 그리스령이 되었고, [[1881년]]까지는 국경에 접한 도시였다.
 
{{전거 통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