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요이 시대: 두 판 사이의 차이

내용 삭제됨 내용 추가됨
편집 요약 없음
편집 요약 없음
15번째 줄:
특히 야요이인들이 한반도 북부와 남부에 살고 있던 한반도 도래인(韓半島渡來人)이라는 증거는 야요이의 묘제(墓制)에서 찾아볼 수 있다.야요이인의 묘제로서 목관묘는 한반도에서 도래된 묘제로서 야요이 시대 전기말(弥生時代前期末)까지 서일본(西日本)에 널리 퍼져 특히 기나이 지방(畿内)에 주로 방형주구묘 내부의 주체부로서 목관묘가 쓰여졌다.
 
일본에서 카메칸보(甕棺墓)라고 불리우는불리는 옹관묘는 한반도 남부에서 전해져서 [[이토시마반도]](糸島半島), [[시마바라반도]](島原半島)의 후쿠오카시,사가현 칸자키군에 많이 분포되어 있으며 특히 한국에서만 발견되는 지석묘(支石墓)의 경우에는 규슈의 이토시마반도, 시마바라반도에 퍼져갔다.<ref>[[崎谷満]]『DNA・考古・言語の学際研究が示す新・日本列島史』([[勉誠出版]] 2009年)</ref>
또한 한반도 남부에서만 대량으로 발견되는 방형주구묘는 야요이인의 방형주구묘보다 훨씬 이른 시기에 만들어진 것으로 방형주구묘를 만들었던 한반도인이 일본으로 도래(渡來)하여 일본에 방형주구묘가 전파되었고 방형주구묘는 일본의 대표적 묘제인 전방후원분이 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규슈 북부에서부터 방형주구묘가 발견되며 특히 일본 간사이 긴키 지방(近畿地方)까지 퍼져 긴키 지방에 방형주구묘(方形周溝墓)가 대량으로 발견되었다. 야요이 시대 중기에는 한반도(韓半島)의 방형주구묘가 일본열도의 주부 지방, 간토지방(中部地方,関東地方)까지 도래하게 된다.<ref>「前方後円墳の成立と変遷」近藤義郎 『考古学研究』15-1、1968年</ref>