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르디카스 2세"의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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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원전 452년 알렉산더의 사후 [[마케도니아 왕국]]은 떨어져나가기 시작하였다. 마케도니아 종족은 거의 완전히 자치적이었고 왕과는 매우 약하게 동맹하였다. 기원전 434년까지는 페르디카스의 형제 필립은 왕좌에 도전하였다. 그리고 [[아테네]]와 [[엘리메아]]의 왕 [[데르다스]]의 지지를 얻었다. 페르디카스는 [[포티다에아]]를 포함한 아테네에 조공하는 도시들의 반란을 배후 조정하여 맞섰다.
 
아테네는 군사력으로 대응하였고 마케도니아로 30척의 배로 1000인의 장갑 보병을 마케도니아로 보냈다. 그곳에서 그들은 [[테르미]]를 붙잡았다. 그들은 계속하여 [[피드나]]를 포위하였고 그곳에서 40척의 배에 2000명의 보병의 지원군을 만났다. 그러나 아테네가 피드나를 포위하면서 그들은 [[코린트코린토스]]가 포티다에아를 지원하기 위해 1600명의 장갑보병과 200명의 경보병을 보냈다는 소식을 접수하였다.
 
새로운 위협과 싸우기 위해 아테네는 페르디카스 왕 동맹하여 포티다에아로 나아갔다. 페르디카스는 즉각 조약을 깨고 포티다에아로 진군하였다. 아테네인들은 결국 승리하였지만 [[시보타의시보타 전투]]는 [[펠레폰네소스펠로폰네소스 전쟁]]으로 이어졌다. 그것은 결국 [[아테네의아테네 패권]]을 파괴하였다.
 
기원전 431년 아테네는 [[트라키아]]의 왕 [[시탈케스]]와 동맹하였다. 아테네인 [[님포도루스]]가 시탈케스의 누이와 결혼한 후였다. 님포도루스는 그 후 아테네와 페르디카스간의페르디카스 간의 합의를 협상하였다. 그 협상에서 페르디카스는 테마를 회복하였다. 결과적으로 아테네는 필립을 위한 그의 지지를 철회하였다. 그리고 소아시아 인들은 그를 체포하는데 페르디카스를 돕기로 약속하였다. 보답으로 페르디카스는 [[찰키디아]]인들에게로 진군하였는데 그들을 그는 원래 반란하도록 설득하였었다.
 
그러나 페르디카스는 한번더 아테네인들을 배반하였고 429년 1000명의 군대를 [[스파르타]]를 지원하기 위해 [[아르카나니아]]에 보냈다. 그러나 그들이 너무 늦게 도왔다. 이에 대해서 시탈케스는 아테네에서의 지원을 약속을 받고 마케도니아로 침입하였다. 이 지원은 결코 실체화되지 않았고 페르디카스는 다시 한번 외교를 사용하여 마케도니아의 생존을 분명히 하였다. 그는 시탈케스의 조카에게 그의 누이를 시집보내시로 약속하였는데 그녀는 시탈케스가 떠나도록 설득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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