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인: 두 판 사이의 차이

내용 삭제됨 내용 추가됨
편집 요약 없음
메이 (토론 | 기여)
날짜 링크 지움. 전(前) 표시 지우고 고침. 도입 문장 고침. '함께 보기' 목차 이름을 '같이 보기'로 고침. {{각주}} 틀로 바꿈.
8번째 줄:
| 출생일 = {{출생일과 만나이|1940|7|11}}
| 출생지 = [[일제 강점기]] [[경기도]] [[시흥군]] [[동면]] [[신림동|신림리]]
| 직책 = [[대한민국]] 제24대 [[대한민국의 보건복지부 장관|보건사회부 장관]]
| 임기 = [[1989년]] [[7월 19일]] ~ [[1990년]] [[3월 19일]]
| 대통령 = [[노태우]]
| 총리 = [[강영훈 (1922년)|강영훈]]
| 거주지 = [[대한민국]] [[서울특별시|서울]] [[종로구]] [[구기동]] <br/> [[대한민국]] [[양주시|경기도 양주]](前)<br/>[[대한민국]] [[서울특별시|서울]] [[관악구]] [[신림동]](前)
| 학력 = [[뮌스터 대학교|뮌스터대학교 대학원]] 경제학 박사
| 종교 = [[유교]]([[성리학]]) → [[개신교]]([[장로교|장로회]]) → [[로마 가톨릭교회|천주교]]([[세례명]]: 알렉산데르)
20번째 줄:
| 친인척 = [[김병로]](친조부)
| 자녀 = 슬하 1녀
| 경력 = [[서강대학교]] 경제학과 교수<br />[[국민은행]] 이사장<br />[[청와대 경제수석]]<br />[[새천년민주당]] 공동선거대책위원장 <br/> [[한나라당]] 비상대책위원<br/> [[새누리당]] 국민행복추진위원장<br/> [[더불어민주당]] 비상대책위원회 대표<br />[[더불어민주당]] 선거대책위원장<br/> [[틀:제20대 비례대표 더불어민주당|더불어민주당 비례대표]] 국회의원 출신 <br/> 총 5선 국회의원 출신(11·12·14·17·20대 국회의원) <br/>[[국민의당]] 개혁공동정부준비위원장
| 정당 = [[무소속]]
| 본관 = [[울산 김씨|울산]]
| 웹사이트 =
}}
'''김종인'''(金鍾仁, [[1940년]] [[7월 11일]] ~ )은 [[대한민국]]의 [[경제학자]] 겸 [[정치가]]이다.<ref>[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0&oid=001&aid=0008157101 김종인 "김용갑 주장, 내가 야당온데 대한 불만인 듯"]《연합뉴스》</ref>
 
본관'''김종인'''(本館)은金鍾仁, [[울산 김씨|울산1940년]](蔚山), 호(號)는 산은(汕隱)이다. [[시흥시|경기도7월 시흥11일]]에서 대한민국~ 초대 [[대한민국의 대법원장|대법원장]] 가인(街人) [[김병로대한민국]]의 손자로 출생한 그는 [[양주시|경기도 양주경제학자]] [[서울특별시|서울]]에서 성장하였고 독일 [[뮌스터 대학교정치인]]에서 경제학 박사 학위를 취득한 후 1973년부터 1988년까지 [[서강대학교]] 경제학과 교수를 역임했고, [[1987년]] 제9차 [[대한민국 헌법|헌법]] 개정에서 경제민주화 조항 신설(헌법 119조 2항)을 주도했다이다.<ref name="inst222">류지복.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0&oid=001&aid=0008157101 김종인 "김용갑 주장, 내가 야당온데 대한 불만인 듯"]. 연합뉴스. 2016년 1월 31일.</ref>
 
본관(本館)은 [[2016년울산 김씨|울산]](蔚山), 호(號)는 산은(汕隱)이다. [[시흥시|경기도 시흥]]에서 대한민국 초대 [[대한민국의 대법원장|대법원장]] 가인(街人) [[김병로]]의 손자로 출생한 그는 [[양주시|경기도 양주]]와 [[서울특별시|서울]]에서 성장하였고 독일 [[뮌스터 대학교]]에서 경제학 박사 학위를 취득한 후 1973년부터 1988년까지 [[서강대학교]] 경제학과 교수를 역임했고, 1987년 제9차 [[대한민국 헌법|헌법]] 개정에서 경제민주화 조항 신설(헌법 119조 2항)을 주도했다.<ref name="inst222">류지복.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0&oid=001&aid=0008157101 김종인 "김용갑 주장, 내가 야당온데 대한 불만인 듯"]. 연합뉴스. 2016년 1월 31일.</ref>

2016년 [[대한민국 제20대 국회의원 선거|제20대 국회의원 선거]]를 앞두고 [[더불어민주당]] 비상대책위원장이 되어 총선 정국을 이끌었다. [[대한민국 제20대 국회의원 선거|제20대 총선]]에서 [[더불어민주당]] 비례대표로 국회의원에 당선되었고 [[더불어민주당]]은 [[새누리당]]을 제치고 제2당에서 제1당이 되었다. 그렇지만 2016년 연도말 시기 당시 더불어민주당과 마찰을 빚다가 끝내 의원직 사퇴 및 탈당을 하였다.<ref>[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0&oid=437&aid=0000105245 (데스크브리핑)더민주 '구원투수'로…김종인 파괴력은?]. JTBC. 2016년 1월 14일.</ref><ref>[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0&oid=028&aid=0002303555 문재인, 김종인 더민주 선대위원장 영입]《한겨레》2016년 1월 14일 김원철 기자</ref><ref>[http://car.donga.com/3/all/20160114/75907954/1 ‘더민주’ 합류 김종인은 누구?… ‘초대 대법원장인 가인 김병로 선생의 친손자’]. 2016년 1월 14일. 동아경제</ref><ref>[http://www.pbc.co.kr/CMS/newspaper/view_body.php?cid=621165&path=201602 염수정 추기경 김종인 대표와 환담] 2016년 2월 28일 평화신문 김유리 기자</ref>
 
그는 1981년부터 2016년까지 여당과 야당을 넘나들며 헌정 사상 최초로 [[비례대표]]로만 5선 국회의원이 되었다.
 
== 생애 ==
[[1940년]] 경기도 시흥군 동면 신림리(현 서울 관악구 신림동)에서 태어났다. [[중앙고등학교]] 졸업 후 [[한국외대]] 독일어학과 재학 중이던 1962년부터 이듬해까지 조부인 [[김병로]]가 야당 지도자가 돼 그 보좌관 역으로 정계를 경험했다. 학부 졸업 후 [[독일]] [[뮌스터 대학]]에 유학해 경제학 박사를 취득했고,
1973년부터 [[서강대학교]] 경제학과 교수로 재직했다. 이 때문에 [[서강학파]]로 분류되나,<ref>{{뉴스 인용
|url = http://news.mk.co.kr/newsRead.php?year=2010&no=177514
줄 59 ⟶ 60:
 
=== 헌법 119조 2항 ===
[[1987년]] 당시 그가 [[남재희]] 당시 노동부 장관과 [[대한민국 헌법 제119조|헌법 문구]]에 넣은 조항이다.
{{인용문|② [[국가]]는 균형있는 국민경제의 성장 및 안정과 적정한 소득의 분배를 유지하고, 시장의 지배와 경제력의 남용을 방지하며, 경제주체간의 조화를 통한 경제의 민주화를 위하여 경제에 관한 규제와 조정을 할 수 있다.}}
새누리당 [[김용갑]] 고문이 "당시(1987년 헌법 개정시) 경제민주화를 강력하게 주장한 사람은 (김종인이 아니라) 민정당 남재희 정책위의장이었다. 남 정책위의장이 경제민주화라는 문구를 넣자고 했다"고 주장한데 대해, 남재희 전 의장은 연합뉴스와의 통화에서 "전혀 사실이 아니다. 나도 개헌특위에 있었지만 그런 (경제민주화 조항을 넣자는) 얘기를 전혀 한 적이 없다"며 "김 고문이 착각을 한 모양"이라고 확인했다. 이어, "(경제민주화가 담긴) 헌법 119조 2항은 김 위원장이 마지막 손질까지 해서 당시 전두환 대통령에게 별도 보고해 '오케이'까지 받았다고 들었다"며 "20여년 전에 119조 2항이 '김종인 조항'이라고 맨 먼저 언론에 기고한 사람이 바로 나였다"고 강조했다. 또 "김 위원장은 독일에서 유학하면서 독일의 사회적 시장경제에 대한 연구에 심취했다"며 "'사회적'이라는 말은 국가의 조정기능을 중요시하는 것인데, 이런 맥락에서 김 위원장이 경제민주화라는 발상을 한 것같다"고 전했다.<ref name="inst222" />
줄 71 ⟶ 72:
 
=== 국보위 참여에 대한 변명 ===
[[2016년]] 김종인 더민주 비대위원장은 자신의 [[1980년]] [[신군부]]의 국보위([[국가보위비상대책위]]) 참여 전력과 관련, 김용갑 새누리당 고문이 [[이춘구]] 전 [[신한국당]] 대표의 말을 인용해 자신이 국보위 적극 참여인사 명단에 있었고 당시 국보위에서는 부가가치세 폐지 논의가 아예 없었다고 주장한 데 대해 사실과 다르다고 반박했다. 김종인은 "당시 국보위 재무위원장의 보좌관(육군 중령)이 '부가세 폐지 문제'에 대한 입장을 정리해달라고 해 국보위에 가게 된 것"이라며, 박정희 정권 말 [[부가가치세]] 도입 때 자신이 참여했는데 이후 조세저항으로 국보위 내에 부가세 폐지 움직임이 있다는 말을 듣고, 이제 정착단계에 이른 부가세 폐지는 안된다는 신념으로 국보위에 참여했다고 밝혔다. 또 "당시 [[이춘구]] 전 대표는 국보위 재무위원회 간사였는데 자신은 몰랐다"며 국보위 참여 과정에서 이춘구와도 아무런 관련이 없었다고 해명했다.<ref name="inst222" />
 
=== 20대 총선 후 더불어민주당의 미래에 대한 생각 ===
줄 80 ⟶ 81:
 
== 비판과 논란 ==
* [[1993년]] 당시 [[동화은행]]에서 2억 1000만원의 뇌물을 공여받은 혐의로 2년간 복역했다. 이에 대해 2011년 12월 28일 [[전여옥]] 한나라당 의원은 [[평화방송]] 라디오에서 당시 한나라당 비대위원인 김종인에 대해 "뇌물죄는 증거 잡기 어려운데 확연한 증거가 있었고 당시에 재벌 개혁을 이야기하시면서 다 쓰러져가는 은행에서 2억 1000만원을 받았다는 것은 정말 낯 뜨거운 범죄라는 얘기가 있다"고 직격탄을 날렸다. 전 의원은 27일에도 자신의 블로그에 ‘이건 대체 뭔가요? 반 쇄신인 거죠?’라는 글을 올려 김 비대위원을 맹비난했다. 전 의원은 “청렴은 최고의 가치가 아니라 이제 기본인 세상”이라며 “한나라당의 쇄신을 소리 높여 외치는 마당에 뇌물을 받아 의원직을 잃은 분이 이 한나라당을 쇄신해야 합니까”라고 물었다. 전 의원은 “뇌물 받은 혐의만 있어도 출당조치 돼 나중에 억울함을 호소한 한나라당 의원도 있고, 기소만 되면 당원권이 정지돼 정말 가슴 아프게 당원활동을 못한 의원도 있었다”며 “그런데 대체 이건 뭔가요? 분명 퇴행이고 퇴보고 반쇄신인 거지요”라고 따졌다.<ref>[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1/12/28/2011122801098.html?Dep0=twitter&d=2011122801098 전여옥, 김종인 전 수석 등 한나라 비대위원 비판]-2011년 12월 28일 조선일보 선정민 기자</ref>
* [[2012년]] 대선 당시 그는 국민행복추진위원장이란 직함으로 박근혜 새누리당 후보 캠프에 있었다. 경제민주화의 상징적 인물이자 주창자로서 그는 당시 박근혜 후보의 경제민주화 추진의지는 확고하다 여러 차례 공언했었다.<ref>[http://www.tbs.seoul.kr/fm/seu_today/sub_04.jsp?search_boardId=262 TBS 생방송 오늘 2012년 10월 30일 라디오 인터뷰] (진행:[[여균동]])</ref> 특히 "줄푸세와 경제민주화가 뭐가 다르냐는 질문을 하는데, 이런 질문 자체가 잘못됐다"고 박 후보를 옹호한 것은 바로 그였다. 그러나 박근혜 후보가 대선 후보 등록을 위해 국회의원 사직서를 낸 바로 다음날인 2012년 12월 11일, [[황우여]] 당시 새누리당 대표 등 핵심 당직자 7명과 함께 서울 시내 모처에서 김 위원장을 만나 '대기업의 기존 순환출자에 의결권을 제한'한 행복추진위의 경제민주화 공약을 수용할 수 없다'고 통보했다. 박 후보는 또 △대기업집단법 제정 △대기업 총수 주요 경제범죄에 대한 국민참여재판 의무화 △재벌총수 등 임원진 급여공개 등도 모두 거부하고 김종인 위원장과 결별 수순에 들어갔다. 이에 대해 그가 한 말은 “박 후보와 만났지만 달라진 게 아무것도 없었다. 더는 (경제민주화 공약에) 관심을 갖지 않기로 했다”가 전부였다. 박근혜 정부 출범 후 '정홍원 총리 유임으로 부각된 인사 시스템 문제'와 박근혜 정부 조기 레임덕 가능성 등 정치 현안에 대한 질문에 대해서도 "잘 모른다", "관심 없다"며 입을 닫았다.<ref>[http://www.pressian.com/news/article.html?no=118334 김종인, 박근혜 정부 인사 실패 "관심 없다"] -2014년 6월 27일 프레시안 곽재훈 기자</ref>
* [[2016년]] 민주당 분당 사태로 [[안철수]], [[김한길]] 의원 등이 탈당해 [[국민의당]]을 창당하고 야권이 분열됐다. 비상대책위원회 위원장으로 위촉된 그는 당시 [[필리버스터]]와 자신을 비롯한 [[표창원]] 교수의 영입으로 다시 인기가 올라가고 있던 [[더불어민주당]]의 사령탑으로 들어와 [[필리버스터]]를 중단시키고 [[정청래]], [[이해찬]] 의원 등을 공천에서 탈락시켰다.<ref>[http://ojs7.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2190341 김종인의 '멘붕 3연타', 이대로 가면 총선 필패] -2016년 3월 15일 오마이뉴스 최봉진 시민기자</ref> 이에 대해 그는 3월 16일 기자회견에서 만약 20대 총선에서 더불어민주당이 107석을 얻지 못할 경우 자신이 모든 책임을 지고 당을 떠나겠다고 공언했다.<ref name="107suk" />
* [[2016년]] [[더불어민주당]]의 비대위원장을 맡은 그는 평소 경제민주화나 재벌 독과점 철폐에 대한 지론과는 달리 [[김현종]] [[한미FTA]] 전 통상교섭본부장을 당내에 영입해 논란을 불렀다. 김현종은 게다가 2009년 이후 [[삼성전자]] 글로벌 법무 담당 사장으로 일해온 터였다. 이에 대해 국회 농해수위 소속 더민주 [[신정훈]] 의원은 22일 미디어오늘과 통화에서 "우리당은 국내산업을 고려해 탄력적으로 개방을 조절해야 된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다"며 "물론 당 지도부가 바뀌면서 정체성과 정책은 변화할 수 있지만, 반농민적이고 당의 정책에 명백히 반하는 인사(김현종 씨)를 아무런 해명과 검증없이 데려온 것은 당 정체성 문제를 야기할 것"이라고 비판했다. [[장하나]] 더민주 의원도 20일 '김현종 전 본부장 영입을 철회해야한다'고 주장해 논란은 더욱 커졌다.<ref name="malmany1">[http://www.mediatoday.co.kr/?mod=news&act=articleView&idxno=128192 김종인 “정당은 원래 말 많아, 다 담으면 아무것도 못해”] -2016년 2월 22일 미디어오늘 조윤호 기자</ref> 인천 계양 갑에 출마를 선언한 김현종 전 본부장은 2016년 3월 18일 4차 경선 결과 43.15%를 얻어 66.85%를 기록한 유동수 전 인천도시공사 상임감사에게 밀려 공천이 좌절됐다. (유동수 더불어민주당 계양 갑 후보는 43.5%(31,080표)의 득표율로 20대 국회의원에 당선됐다.)<ref>[http://economy.hankooki.com/lpage/politics/201603/e2016031823173996380.htm 더민주 현역 김광진·이윤석 공천 탈락] -2016년 3월 19일 서울경제신문 박형윤 기자</ref>
* [[2016년]] 2월 9일 [[경기도]] [[파주]]의 군부대를 방문해 “장병들이 국방 태세를 튼튼히 유지하고 우리 경제가 더 도약적으로 발전하면 언젠가 북한 체제가 궤멸하고 통일의 날이 올 것을 확신한다”고 말했다. 민주당의 대북 기조였던 [[햇볕정책]]을 정면으로 부정하는 발언이었다. 이에 대해 더민주 혁신위원을 지낸 [[조국 (교육인)|조국]]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21일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문재인 대표 체제 하에서 대표의 모든 행위에 발목을 잡으면서, 대표의 권한에 통제를 가하려한 혁신안을 대표에게 공천권을 몰아주는 것이라고 황당한 왜곡을 하며 반대하던 사람들이 요즘은 쥐죽은 듯 조용하다”며 “더민주 내 '친문'이건 '반문'이건, 다른 것은 몰라도 햇볕정책와 개성공단 문제에 대한 당 지도부의 '우클릭' 기조에 대해서는 무슨 말을 해야 하는 것 아닌가. 영입된 '계몽절대군주'의 판단에 충실히 따르면 만사 오케이인가”라고 비판했다. [[안철수]] [[국민의당]] 공동대표 역시 2월 18일 국회 비교섭단체 대표연설에서 “박근혜 대통령 및 여당도 야당 일각에서조차도 북한체제의 붕괴나 궤멸을 이야기한다”며 김 대표의 발언을 새누리당과 같은 선상에 놓고 비판했다. [[정동영]] 전 의원도 21일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김 대표는) 지난 대선에서 박근혜 새누리당 정권 탄생의 일등공신이며, 그리고 현재도 개성공단 사태에 대해 북한 궤멸론으로 김대중·노무현 대통령의 햇볕정책을 정면으로 부정하고 있다”며 “한술 더 떠 18일에는 300만 농민의 가슴에 피멍이 들게 한 신자유주의의 첨병인 한미FTA 추진 주역을 당당하게 영입했다. 민주 야당의 얼굴이자 대표가 될 수 있는 분은 아니다”고 밝혔다.<ref name="malmany1" />
* [[2016년]] 3월 분열된 야권을 연합시키기 위해 안철수 국민의당 공동대표를 만났다. 회동 후 안철수 공동대표는 회담 결렬을 선언하며 “더민주 내부에서 (김종인 대표에) [[짜르]]라는 별명이 붙었다고 한다. 모두까기 짜르인 셈이다. 우리나라가 그럼 여왕(박근혜 대통령)과 짜르의 시대란 말인데 정말 국민이 불쌍하다는 생각이 든다”고 덧붙였다. 연대 논의에 대한 거듭된 질문에 안 대표는 “어제부로 다 정리됐다고 생각한다”고 잘라 말했다.<ref>[http://www.hani.co.kr/arti/politics/assembly/734343.html 안철수 “김종인은 모두까기 짜르” 격앙] -2016년 3월 10일 한겨레 신문 송경화 기자</ref> 이에 대해 김종인 더민주 비대위 대표는 안 공동대표가 대선후보가 되려는 생각에 사로잡혀 연대에 반대하고 있다고 폄하했다.<ref>[http://www.hani.co.kr/arti/politics/politics_general/733150.html 김종인 “안철수, 대선후보 생각 못 벗어나 통합 반대”]-2016년 3월 3일 연합뉴스 기사</ref>
* 2016년 3월 20일 [[더불어민주당]] 비례대표 2번으로 결정되면서 '셀프 공천' 논란이 거셌다. 당내 중앙위원회는 이를 두고 당헌을 어긴 처사라며 반발했고 이에 김 대표는 정무거부로 맞섰다. 당시 비례대표 후보를 압축하는 과정에서 당 지도부는 후보군을 A~D로 나눴는데 상위 1~10위를 A그룹, 11~20위를 B그룹, 21위~30위를 C그룹으로 나누어 칸막이를 친 뒤 각 그룹 내에서 순위투표를 통해 정하는 방식으로 했다.<ref>칸막이 공천 등으로 지탄 받은 이 방식의 경우 A그룹이 후보가 B그룹의 후보보다 득표가 적게 나와도 1~10위권에 배정되는 경우가 생긴다.</ref> 중앙위원회 측은 칸막이 자체가 당헌102조 1항의 '위원회는 비례대표국회의원선거후보자를 심사하여 (중략) 후보자를 심사함에 있어서 직능, 세대, 성, 지역 등 다양한 사회적 계층을 안분하되, 정치 신인을 우선 추천하도록 노력한다'에 위배된다 주장했다. 아울러 3항의 '선거 전략상 특별히 고려가 필요한 후보자 선정을 제외하고는 중앙위원회의 순위투표로 확정한다'고 명시된 부분도 문제삼았다. 더구나 당 대표는 비례대표 4명을 공천할 권한이 주어졌는데 김 대표는 하나를 자신에게 사용한 것이라 논란이 더욱 컸다. 전 달 28일 취임 1개월 기자회견에서 김 대표는 스스로 "내가 비례대표에 큰 욕심이 있느냐, 난 그런 생각은 추호도 없다"고 밝힌 바 있었다. 이른바 셀프 공천 논란에 대해 [[안철수]] [[국민의당]] 공동대표는 "그럴 줄 알았다"면서 "비례대표 취지에 어긋난다"고 꼬집었고, [[조국 (교육인)|조국]] 서울대법학전문대학원 교수도 "법정관리인으로 더민주에 초빙됐지만 당규 개정으로 통해 대표이사가 됐다"며 "권력 행사를 자제할 분이 아니다"고 비판했다. 이런 비판에 대해 김 대표는 "당을 추슬러서 끌고가려면 의원직을 갖고 해야한다", "그런대접 받는 정당서 일 못한다"며 받아쳤다.<ref>[http://www.anewsa.com/detail.php?number=988993&thread=11r04 "김종인, 당헌까지 어겨가며 셀프공천" 비난 거세] -2016년 3월 21일 아시아뉴스통신 곽정일 기자</ref>
* 20대 총선의 더불어민주당 1당 등극 후 김 비대위 대표의 당대표직 추대론이 불거졌다. 당내 전통적 기반이 없는 김종인 비대위 대표가 곧 있을 더민주 전당대회 당대표 경선에 경쟁력을 가질 수 없었기 때문이다. [[정청래]] 의원은 2016년 4월 19일 오전 추대론에 대해 CBS '김현정의 뉴스쇼'에 출연해 "셀프 공천도 문제지만 셀프 (당대표) 추대, 셀프 합의 추대라는 게 가능한 일이냐, 민주 국가에서"라고 반문한 뒤 "이거(대표 합의 추대)는 북한노동당 전당대회에서나 가능한 일이다. 어떻게 그런 마음조차 먹을 수 있는 건지 상당히 의아하다"며 맹비난한 데 이어, 이날 오후에는 자신의 트위터에 '가만히 있으라?'는 제목의 글을 게재해 "가만히 있어서 세월호 참사가 있었다. 더민주 이대로 가만히 있으면 정권교체 침몰한다"고 운을 떼고는, "더민주 선장은 아무에게나 함부로 맡겨서는 안 된다"며 "민주정당에 걸맞은 리더십이 서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국회의원 후보자도 공천심사 시 부정부패 비리혐의자는 배제한다"며 "하물며 당대표하려는 사람은 더욱 엄격해야 하며, 민주화운동으로 감옥간 것도 아니고 비리혐의로 돈 먹고 감옥간 사람은 과거사라도 당대표 자격 기준에서 원천배제해야 한다"고 김 비대위 대표를 직접 겨냥했다.<ref>[http://www.moneyweek.co.kr/news/mwView.php?type=1&no=2016041915488081176&outlink=1 정청래 트위터, 연일 김종인 직격 "가만히 있으라? 더민주 가만히 있으면 '정권교체' 침몰"] -2016년 4월 19일 머니위크 서대웅 기자</ref>
줄 91 ⟶ 92:
== 기타 ==
* 그가 청와대 경제수석 시절 나온 정책 중의 하나가 바로 재벌의 비업무용 토지에 대한 과세였고, 재벌의 문어발식 확장의 문제점을 지적하고 업종전문화 등을 추진하기도 했다. 그 때문에 그는 [[정주영]] 당시 [[전경련]] 회장을 비롯한 재벌들로부터 집중적인 견제를 받았고 모욕에 가까운 비난을 듣기도 했다고 한다. 특히 [[정주영]] 전 회장과 [[김우중]] 전 회장 등으로부터 빨갱이 소리도 들었다고 한다.<ref name="inst119" />
* 그는 [[2008년]] 7월 25일 인터뷰에서 당시 [[노무현]] 대통령에 대해 이렇게 평가했다. "웃기는 사람이다. 어떻게 [[삼성]] [[이건희]] 회장을 '21세기 한국의 희망이자 비전'이라고 말할 수 있는가?<small>(이는 김종인의 착각으로 사실 21세기 언급은 2003년 뉴욕 코리아소사이어티 만찬 자리에서 이건희 회장이 노무현 전 대통령을 두고한 축사였음</small><ref>[http://www.pressian.com/news/article.html?no=71712 노대통령, "미국의 도움 꼭 필요"] -2003년 5월 13일 프레시안 임경구 기자</ref>) 노무현 정부가 무슨 좌파정권이냐? 좌파 정책을 쓴 게 뭐가 있나? 무슨 ‘좌파신자유주의’... 웃기는 얘기다." 아울러 [[참여정부]]의 좌파 신자유주의라는 캐치프레이즈에 대해서도 혹평했다. 그는 [[신자유주의]]가 근본적으로 실패할 수 밖에 없는 경제사회적 배경이나 철학을 언급하며 "[[로렌스 서머스]](전 미국 재무장관)도 [[다보스 포럼]]에서 신자유주의는 실패했다고 확인했다. 문제는 기업(들)이 국가의 모든 기능을 절대 대체할 수 없다는 데 있다. 소득 재분배 문제와 관련, 정부의 기능을 일부 기업에서 부담할 수는 있을지 모르나 거기에도 한계는 있다. 가령 기업 연금제 등으로 의료보장제도를 대체할 수 있느냐 하면 못한다는 것이다. 기업이라는 것은 언제 망하거나 문을 닫을지 모르기 때문이다."라고 말했다.<ref name="inst119" /> 인터뷰 불과 두달 후 미국발 [[2008년 금융위기]]가 터졌다.
* 본관은 [[울산 김씨|울산]]으로 [[문묘]] 종사자인 하서 [[김인후]]의 후손이고, 초대 [[대한민국의 대법원장]] 가인 [[김병로]]의 손자이며, [[동아일보]], [[고려대학교]]의 설립자인 인촌 [[김성수]] 전 부통령과 먼 친척이다. 친인척 중에는 헌법재판소장, 청와대 비서실장, 경제 각료와 참모 등이 두루 포진해 있다. 처삼촌은 8년 9개월간 [[박정희 대통령]]의 비서실장을 지낸 [[김정렴]]이고 장인이 [[한일은행 (1932~1998)|한일은행]]장을 지낸 김정호이다. 매형은 박봉환 전 동력자원부 장관이고, 4촌 처남이 노태우 정부 시절 건설부 장관과 청와대 경제수석을 지낸 이진설이다. 대법관과 헌법재판소장을 지낸 [[윤영철]], 작고한 [[이택돈]] 전 신민당 국회의원(변호사)도 4촌 처남이다. 또한 [[강만수]] 사단의 일원으로 청와대 경제수석, 필리핀 대사, 지식경제부 장관직을 지낸 [[최중경]]이 5촌 조카사위다. [[아랍에미리트]] 대사를 지낸 [[권태균]] 전 조달청장도 5촌 조카사위다.<ref>[http://www.hani.co.kr/arti/politics/politics_general/557948.html 김종인, ‘박정희 최측근’의 인척… 깐깐한 강골] -2012년 10월 29일 한겨레 신문 정치면</ref>
 
== 학력 ==
* [[1953년]] [[광주서석초등학교]] 졸업
* [[1956년]] [[광주서중학교]] 졸업
* [[1959년]] [[중앙고등학교]] 졸업
* [[1964년]] [[한국외국어대학교]] 독일어학 학사
* [[1969년]] [[뮌스터 대학교|뮌스터대학교 대학원]] 경제학 석사
* [[1973년]] [[뮌스터 대학교|뮌스터대학교 대학원]] 경제학 박사
 
== 경력 ==
* [[1973년]] [[3월]] ~ [[1988년]] [[2월]] [[서강대학교]] 경제학과 교수
* [[1981년]] [[4월]] ~ [[1985년]] [[4월]] 제11대 국회의원
* [[1985년]] [[4월]] ~ [[1988년]] [[4월]] 제12대 국회의원
* [[1989년]] [[1월]] ~ [[1989년]] [[7월]] [[국민은행]] 이사장
* [[1989년]] [[7월]] ~ [[1990년]] [[3월]] 제24대 [[대한민국의 보건복지부 장관|보건사회부 장관]]
* [[1990년]] [[3월]] ~ [[1992년]] [[3월]] 대통령비서실 [[청와대 경제수석]]
* [[1992년]] [[5월]] ~ [[1994년]] [[9월]] 제14대 국회의원
* [[1992년]] [[7월]] ~ 대한발전전략연구원 이사장
* [[1996년]] [[11월]] ~ [[1997년]] [[1월]] 알렉산더 폰 훔볼트재단 초빙교수
* [[2003년]] [[6월]] ~ [[2004년]] [[4월]] 국민경제자문회의 원로경제인분과 자문위원
* [[2003년]] [[9월]] ~ [[2004년]] [[3월]] [[건국대학교]] 경제학과 석좌교수
* [[2004년]] [[5월]] ~ [[2008년]] [[5월]] 제17대 국회의원
* [[2008년]] [[9월]] ~ [[2010년]] [[5월]] 헌법연구자문위원회 위원장
* [[2010년]] [[10월]] ~ [[2012년]] [[10월]] 헌법재판소 자문위원회 위원
* [[2011년]] [[9월]] ~ [[2013년]] [[2월]] [[한국외국어대학교|한국외국어대학교 국제지역대학원]] 석좌교수
* [[2011년]] [[12월]] ~ [[2012년]] [[3월]] [[한나라당]] 비상대책위원회 위원
* [[2012년]] [[9월]] ~ [[2012년]] [[12월]] [[새누리당]] 국민행복추진위원회 위원장
* [[2013년]] [[3월]] ~ [[2015년]] [[2월]] [[가천대학교]] 경영대학 석좌교수
* [[2014년]] [[3월]] ~ [[2014년]] [[5월]] 알렉산더 폰 훔볼트재단 초빙교수
* [[2014년]] [[12월]] ~ [[2015년]] [[1월]] 대법관후보추천위원회 위원장
* [[2015년]] [[3월]] ~ [[2016년]] [[2월]] [[건국대학교]] 경제학과 석좌교수
* [[2016년]] [[1월]] ~ [[2016년]] [[4월]] [[더불어민주당]] 선거대책위원회 위원장
* [[2016년]] [[1월]] ~ [[2016년]] [[8월]] [[더불어민주당]] 비상대책위원회 대표
* [[2016년]] [[5월]] ~ [[2017년]] [[3월]] 제20대 국회의원 (비례대표/[[더불어민주당]])
* [[2016년]] [[6월]] ~ [[2017년]] [[3월]] 제20대 국회 전반기 기획재정위원회 위원
* [[2017년]] [[4월]] ~ [[2017년]] [[5월]] [[국민의당]] 개혁공동정부준비위원회 위원장
 
== 저서 ==
줄 148 ⟶ 149:
* 13대 총선 득표율은 지역구 출마로 개인 득표율임.
 
== 함께같이 보기 ==
* [[문재인]]
* [[손혜원]]
 
== 각주 ==
{{각주}}
<references/>
 
== 외부 링크 ==
줄 163 ⟶ 164:
* [https://www.youtube.com/watch?v=D-G2tB6Gu84 김종인, 탈당·출마 여전히 고민 중 "자기 확신이 서면...”]. 오연호의 대선열차. 2017년 2월 10일.
 
{{전임후임|
|전임자 = [[문태준 (정치인)|문태준]]
|후임자 = 김정수
|대수 = 24
|직책 = [[대한민국의 보건복지부 장관|보건사회부 장관]]
|임기 = [[1989년]] [[7월 19일]] ~ [[1990년]] [[3월 19일]]
}}
{{전임후임|
줄 175 ⟶ 176:
|대수 =
|직책 = [[더불어민주당]] 비상대책위원회 대표
|임기 = [[2016년]] [[1월 26일]] ~ [[2016년]] [[8월 27일]]
}}
{{제11대 비례대표 민주정의당}}
줄 183 ⟶ 184:
{{제20대 비례대표 더불어민주당}}
{{대한민국 제19대 대통령 선거}}
 
{{전거 통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