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리 울스턴크래프트: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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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94년 7월 자코뱅이 몰락했다. 울스턴크래프트는 프랑스에 출판의 자유가 돌아올 것이라 기대하고 이것을 쌍수를 들어 환영하며 파리로 돌아갔다.<ref name="Furniss 67"/> 1794년 8월, 임레이가 곧 돌아오겠다고 약속하며 런던으로 떠났다.<ref name="Furniss 67"/> 1794년에서 1795년으로 넘어가는 겨울은 유럽에 100년만에 찾아온 강추위였고, 울스턴크래프트 모녀는 곤궁한 처지에 처했다.<ref>Furniss 67–68.</ref> 그해 겨울 센느강이 결빙하면서 배들이 파리로 음식과 석탄을 싣고 올라올 수 없게 되었다. 얼어붙은 도시에서 수많은 사람들이 굶어 죽었다.<ref>Gordon 243.</ref> 울스턴크래프트는 임레이에게 당장 프랑스로 돌아와달라고 계속 편지를 보냈고, 이 편지들에서 자신은 여전히 혁명에 대한 신념이 남아 있으며 영국으로 돌아갈 수 없다고도 썼다.<ref name="Furniss 68"/> 영국에서는 1793년부터 혁신주의자들에 대한 탄압이 시작되어 민권이 제한되고 광범한 검열이 행해졌다. 프랑스 혁명에 동정적인 사람은 누구든 반역죄로 기소되었기에 울스턴크래프트는 감옥에 갈 것이 두려워서도 귀국할 수 없었다.<ref name="Furniss 68"/> 울스턴크래프트는 1795년 4월 7일에야 프랑스를 떠났다. 그 뒤로도 그는 스스로를“임레이 부인”이라고 일컬었으며 자매들 앞에서도 그런 표현을 사용했다. 이는 아이를 사생아로 만들지 않기 위함이었다.<ref>Tomalin, 225.</ref>
 
『프랑스 혁명의 역사적 도덕적 관점』은 1794년 런던에서 초판 간행되었다. 영국 역사학자 [[톰 퍼니스]]는 이 책이 울스턴크래프트의 저서 중 가장 과소평가되었다고 말한다(이 책은 거의 200년 뒤인 1989년에야 2판이 나왔다).<ref name="Furniss 68"/> 이 책이 이렇게 무시된 이유는 후대 사람들이 울스턴크래프트를 여성주의자로만 이해했고, 프랑스 혁명의 목격자로서는 독해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퍼니스는 『프랑스 혁명의 역사적 도덕적 관점』이 울스턴크래프트의 최고 작품이라고 단언하며 이런 과소평가가 유감스럽다고 논했다.<ref name="Furniss 68"/> 울스턴크래프트는 훈련된 역사학자는 아니었지만, 프랑스의 보통 사람들이 혁명에 어떻게 반응했는지를 일기, 편지, 문건들을 통해 생생하게 기록했고, 영국의 "히스테리적"인 반혁명 분위기에 적극적으로 대응하려 했다. 당시 영국에서는 혁명을 프랑스 나라 전체가 미쳐 돌아가는 광란의 도가니로 파악하고 있었다.<ref name="Furniss 68"/> 하지만 울스턴크래프트는 당시 영국 여론과 달리 혁명은 프랑스인들이 1789년에 한꺼번에 미쳐버려서 벌어진 것이 아니며, 일련의 사회적, 경제적, 정치적 상황들이 이런 식으로 해결될 수밖에 없는 위기로 1789년의 프랑스를 몰아넣었다고 주장했다.<ref name="Furniss 68"/> 울스턴크래프트는 자코뱅 정권과 공포정치를 규탄했지만, 동시에 혁명은 위대한 성과라는 입장을 고수했다. 그래서인지 『프랑스 혁명의 역사적 도덕적 관점』은 1789년 말에서 끝나고, 1793년-1794년 공포정치에 관해서는 쓰지 않고 있다.<ref>Furniss 68–69.</ref>
 
에드먼드 버크는 『프랑스 혁명의 성찰』에서 1789년 10월 5일-6일 파리 여인들이 [[베르사유궁]]에서 프랑스 왕실을 끌어내 파리로 끌고 온 사건을 더러 “지옥에서 기어나온 복수의 여신들”이라고 했다.<ref>Furniss 72.</ref> 반면 울스턴크래프트는 그 때 그 여인들은 그저 가족에게 먹일 빵이 없어서 분노한 평범한 아낙네들일 뿐이었다고 이야기한다.<ref name="Furniss 68"/> 버크는 마리 앙투아네트 왕비를 폭도 떼에게 희생당한 고귀한 왕족으로 이상화했지만 울스턴크래프트는 왕비를 색정적이고 위험한 모사꾼, [[팜므 파탈]]로 묘사했다.<ref name="Callender 384">Callender 384</ref> 울스턴크래프트에 따르면 귀족정이 신봉하는 가치가 여성의 삶의 목적을 가문을 이을 아들을 생산하는 것으로 축소하며, 여성의 가치를 그 신체 일부에 불과한 [[자궁]]에 국한시키는 것으로서, 이것은 여성을 타락시키는 것이다.<ref name="Callender 384"/> 세상에 여왕(queen regnant)은 적고 왕비(queen consort)은 많음은 곧 귀족 여자가 세상에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수단이 남편이나 아들의 행동을 조종하는 것밖에 없음을 의미한다. 그러므로 여자의 정신과 인격이 아닌 몸뚱이의 가치를 강조하는 귀족적 가치관이 마리 앙투아네트를 무자비하고 요사스러운 여성으로 만든 바, 마리 앙투아네트는 [[앙시앵 레짐]]에 의해 타락당한 여성이요 동시에 세상을 타락시키는 여성인 것이다.<ref name="Callender 384"/>
 
=== 잉글랜드행과 윌리엄 고드윈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