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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원전'''(含元殿)은 [[경복궁]]에 위치한 전각이며, 왕비의 침전인 [[교태전]] 서쪽, 흠경각 북쪽에 위치한다.‘'''함원'''’은 ‘원기를 간직하다.’라는 의미이다. 정면 6칸, 단층의 팔작지붕이다.
 
== 연혁 ==
정확한 연도는 알 수 없으나 ‘조선왕조실록’의 기록으로 미루어 보아 [[조선 세종|세종]] 때 지어진 것으로 추정된다. 불상을 모셔두고 주로 불교의식과 행사를 열었으며, [[조선 단종|단종]]이 거처했던 곳으로 전해진다.
 
임진왜란의[[임진왜란]]의 전화로 소실되었다가 1867년 (고종 4년)에 흥선대원군의[[흥선대원군]]의 경복궁 중건 때 재건하여 복원되었다.
왕비의 침전인 교태전 서쪽에 위치하며 흠경각 북쪽으로 있다.
 
정면 6칸, 단층의 팔작지붕이다.
 
불상을 모셔두고 주로 불교의식과 행사를 열었던 곳으로 전해진다.
 
단종이 거처했던 곳으로 전해진다.
 
임진왜란의 전화로 소실되었다가 1867년 (고종 4년)에 흥선대원군의 경복궁 중건 때 재건하여 복원되었다.
 
1876년(고종13년)에 발생한 화재로 소실된 것을 2년 뒤에 복원되었다.
 
일제강점기 창덕궁 대화화재로대화재로 사라진 희정당의 복원을 위해 해체되었다.
 
1995년 경복궁 복원사업으로 복원되었다.
 
== 성격 및 의의 ==
유교를 중심 사상으로 했던 조선을 생각하면 이상할 수 있지만 조선 초기는 부국강병을 목표로 중앙집권을 위해서라면 과학 기술과 다른 여타 사상도 수용했던 것을 볼 수 있다. 16세기 중엽 이후 조선이 성리학 지상주의 사회로 변하면서 과학 기술과 모든 여타 사상을 배척했다. 또한 불교 사상은 조선 초기에 큰 영향력을 지니고 있었다는 것도 밝혀졌다.
 
[[분류:경복궁]]
[[분류:조선의 건축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