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신교: 두 판 사이의 차이

내용 삭제됨 내용 추가됨
잔글편집 요약 없음
IP사용자에 의해 무단 훼손된 부분 되돌림.
1번째 줄:
{{다른 뜻 넘어옴|신교}}
{{개신교}}
{{DISPLAYTITLE:기독교}}
{{기독교}}
 
기독교'''개신교'''(改新敎) 즉,또는 '''프로테스탄티즘'''(Protestantism) 16세기 서방교회 개혁 찬성파인 [[종교 개혁가|교회의 개혁가]]들의 [[종교개혁]]을<ref>{{웹 인용|url=http://www.oxforddictionaries.com/definition/english/Protestant|title=Protestant - Definition of Protestant in English by Oxford Dictionaries|website=Oxford Dictionaries - English}}</ref> 통해 생겨났다생겨난 기독교의 한 전통이다. 11세기 [[동서 교회의 분열]]을 통해 [[동방교회]]에서 [[서방교회]]가 분리되었고, 이후 16세기 [[서방교회]]내에서 [[종교 개혁]]을 통해 '반대파'인 천주교회와 '찬성파'인 기독교가개신교가 분리되면서 기독교의 가장 주된 사상과 종파인 정교회, 천주교회, 개신교회가 분리되었다형성되었다.
 
== 개요 ==
16세기 [[서방교회]]의 사회, 정치적 문제로 인해 [[종교개혁]] 요구에 대하여 찬성파와 반대파로 나뉘었고, [[서방교회]]의 종교개혁을 찬성하고 주도한 '''복음중심주의자'''들이 '기독교회개신교회'로, [[서방교회]] 종교개혁을 반대한 '''교황중심주의'''를 지지한 자들이 '천주교회'로 분리되었다. 이러한 양상은 루터에서 시작되었다고 보나, 사실 10세기 [[창부정치]]와 14세기 [[아비뇽 유수]] 사건 등으로 서방교회 개혁 주장이 지속적으로 나타났고, 15세기와 16세기 [[서방교회]]의 심각한 문제로 인해 루터 전후에 다양한 지역에서 거의 동시다발적으로 '복음'을 중심으로하는 개혁운동들이 전개되었다. 기독교는개신교는 초창기에는 특정 교파를 중심으로 이해하기 보다는 '복음'을 다시 회복하고 '복음'을 교회의 중심에 두고자 하는 변혁 활동으로 서방교회 내부의 기독교 운동이었다.
 
유럽지역에서 유럽 본토인 독일과 프랑스, 스페인 지역에서는 개혁반대파 제도권의 교황중심주의자들이 '복음주의'<ref>복음을 회복하려는 종교개혁의 정신은 복음주의로 불리었다. 이 개혁교회의개신교회의 중심적 사상으로 모든 기독교회가걔신교회가 따르는 성경중심주의의 핵심이다. 하지만 19세기가 들어서며 신복음주의, 즉 기독교개신교 보수주의의 자칭으로 복음주의자 부르면서, 이 단어는 영어권에서는 보수주의 개혁교회를개신교회를 일컫는 단어가 되었다. 하지만 종교개혁의 '''전통적 복음주의'''와 19세기 '''신복음주의'''(영어권의 복음주의)는 엄연히 다른 사상을 가리킨다. </ref>로 개혁 찬성파들의 주장을 지적하며 찬성파를 '복음주의자'로 칭했으며, 영국 지역에서는 서방교회의 개혁 반대파와 연계된 정치제도에 '항의(Protest)'하며 등장한 모든 운동과 전통을 가리키는 말로 보는 것이 합당하다.
 
먼저는 [[루터]]를 따르는 루터교회와 [[울리히 츠빙글리|츠빙글리]], [[장 칼뱅|칼빈]] 등을 통해 형성된 개혁교회가 형성되었고, [[장로교]], [[침례교]], [[감리교]], [[성결교]] 같은 오늘날의 주요 교파들은 물론이고 [[청교도]]운동, [[오순절주의]], 미국의 [[대각성 (운동)]] 같은 흐름들도 모두 기독교개신교 전통에 포함된다.<ref> [[성공회]]의 경우 루터, 칼뱅의 종교개혁과 달리 [[정부]]가 성공회기도서(1549년)발행 등으로써 주도한 잉글랜드 [[종교 개혁|종교개혁]]으로 교황제도와 분리되었으므로 기독교라고개신교라고 말하기는 하지만, 기독교와개신교와 천주교의 [[중도]](Via Media)로 이해하는 경우도 있다.</ref> 이처럼 정교회나 천주교에 비해 다양한 흐름들이 공존하고 서로 영향을 주며 분류/합류되는 과정을 거쳐왔기 때문에 기독교개신교 내의 교파 분열의 역사와 신학 논쟁을 살펴보는 것은 매우 복잡하지만, 대체적으로 성경의 권위에 대한 존중, 믿음으로 구원을 얻는다는 이신칭의 교리에 대한 동의<ref>기독교개신교 신학자 정승우의 《인류의 영원한 고전 신약성서》(아이세움)에 따르면, 천주교도 1549년 트리엔트 공의회에서 이신칭의를 고백했기 때문에 이신칭의 교리가 기독교만의개신교만의 특징은 아니다.</ref>, 수직적이고 계층적인 성직 구조나 정치제도 보다는 [[만인 제사장|만인 제사장설]]을 따르는 성직 이해와 그에 따른 교회제도인 회중제, 감독제(주교제)([[루터교회]], [[성공회]], [[감리교|감리교회]]) 등 다양한 교회제도 채택, 성서에 나오지 않는 [[성례전]]에 대한 반대(로마 가톨릭은 세례, 성체, 고백, 견진, 혼배 등 7개, 기독교는개신교는 신약성서에 나오는 [[성만찬]], 세례 2개이다.) 등의 공통점을 갖고 있다.
 
== 기독교회의개신교회의 전통 ==
기독교회의개신교회의 [[신앙고백]]은 믿음의 새로운 조항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성서]] 안에 증언된 [[복음]]에 대한 믿음을 고백하는 방법이므로<ref>볼프하르트 판넨베르크. 《조직신학: 판넨베르크 1》. 신준호, 안희철 옮김. (서울: 새물결플러스, 2015). 44. </ref> 성서에 비추어 올바른 [[교리]]와 제도를 재조명하였고 [[성경]]에 따르지 않는 조항은 폐기하였다. 기독교개신교 신앙고백에 따라 새롭게 조명된 교회 [[전통]]과 새롭게 형성된 교회의 역할을 기독교회의개신교회의 전통으로 보며, 교회구조 이해, 성찬식의 변화, 교회학교, 성경 연구, 사회운동에서 사회제도까지 범위가 넓어질 수 있다. 여기서는 종교적 사안인 교회 전통으로만 좁혀서 성찬 예식, 교회 구조, 성직자 이해, 성경 연구만을 범위로 살펴본다.
 
=== 교회구조 ===
기독교회의개신교회의 등장으로 [[서방교회]]에 계급적 교회구조에서 [[공교회]]구조의 재조명, 새로운 구조의 교회가 등장하였다. 계급적 획일성을 벗어난 [[다양성]]을 지닌 기독교 교회가 나타났다.
 
공교회 구조의 재조명, [[서방교회]] 즉 [[로마교회]]의 절대적 계급주의의 교회구조에서 벗어났다. 종신제가 아닌 감독(주교)과 대감독(대주교)가 임기제인 연합구조의 교회조직을 강조하는 공교회구조로 재조명하였다. 초기 [[종교개혁]] 교단이었던 [[루터교회]]와 영국[[성공회]]는 전통적 [[공교회]]제도를 수용하며, 절대적 대감독(대주교)가 아닌 연합적인 공교회(보편교회) 구조의 교회로 되돌아가도록 노력하였다. 이는 이후 등장한 [[감리교회]]나 [[구세군]], [[오순절]] 교회 일부에서도 감독들은 임기제로 선발되고, 공교회 감독의 임무를 따라 수행하는 [[초대교회]]의 구조를 재형성하고자 하였다.
줄 25 ⟶ 24:
 
=== 성찬 예식의 회복 ===
[[성찬]]은 기독교회에서개신교회에서 상시적 [[ 예배]] 예전으로 회복하였다. 기독교 [[예배]]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로 말씀의 성례와 함께 성찬의 성례는 예배의 핵심적인 요소이다. [[성찬]]은 11세기 이후 서방교회인 로마교회에서 계급적 방식으로 변화하였고, 철저한 성직자 중심의 예식으로 변화하였다. [[천주교회]]의 성찬 예식은 20세기까지 십자가만을 바라보며, 성도를 등에 지고, [[예전]]이 진행되는 동안 성도들을 향하지 않았으며, 오로지 [[성직자]]의 참여만이 있고 포도주를 성직자가 마신 이후 빵만을 나눌 때 성도를 향해 섰다.
 
기독교회의개신교회의 [[성찬]]은 [[성도]]와 성직자가 동등하게 참여하고 나누는 상시적 [[예전]]으로 회복하였다. [[종교개혁]] 시기인 16세기부터 기독교회의개신교회의 성찬은 성직자와 성도가 알아듣는 해당 지역 언어로 진행하였고, 빵과 포도주를 함께 나누어 먹고, 성찬 예전을 거행하는 동안에도 성직자는 예배당 [[십자가]]를 등에 지고 성도들 향해 서서 성찬 예전과 축사를 하였고, 마칠 때까지 성도들을 바라보았다. 이는 기독교회의개신교회의 전통이 되어 성찬 탁자에 [[십자가]]가 놓이고, 포도주와 빵이 놓이는 모습의 기독교회개신교회 성찬대의 모습이 형성되었다. 다양한 형식의 성찬 예전이 풍성하게 발전하였고, [[성찬]] 관련 [[목회신학]]적 접근이 가능하게 되었다.
 
기독교회는개신교회는 [[종교개혁]] 이후부터 성찬을 회복하기 위해서 16세기 특정 절기만 거행하던 천주교회의 성찬 방식을 거부하고, 복음을 전하는 예배로서 성찬과 성도의 요청에 의해 성찬예전을 상시적으로 거행해야 한다고 생각하였다. 따라서 기독교회의개신교회의 대부분 [[교단]]은 [[성찬]]을 한 달에 한번 이상을 요구하며, 매주 거행할 것을 요구하는 [[교단]]도 있다. 이로 인해 [[성찬]]의 변화와 [[예배]]의 새로운 변화가 발생하였고, 예배당만이 아니라 성도들이 있는 곳에서 성직자가 언제나 거행할 수 있는 예배가 되었다. 현재도 기독교회의개신교회의 일부 교단에는 성도들이 [[성찬]]을 요청할 경우에는 성직자는 [[성찬]]이 포함된 예배를 함께 드려야 한다는 규정이 있다.
 
천주교회는 이런 기독교회의개신교회의 성찬 예전의 변화를 인식하고, 19세기 [[1차 바티칸회의]]에서 매주 성찬을 교회법으로 정하였다. 20세기 [[2차 바티칸회의]]에서는 성찬 방식에서 성도들을 바라보는 기독교회개신교회 형태와 라틴어가 아닌 모국어의 성찬전례로 변경하였으며, 빵만이 아니라 포도주도 줄 수 있다고 규정하였다.
 
=== 성직자 이해 ===
기독교회이개신교회이 성직자는 [[목사]]<ref>국가마다 약간의 차이가 있기도 하다. 대한민국 개신교회 중 하나인 대한성공회는 신부라 한다. 일본의 성공회는 목사라 한다.</ref>이다. 성직자의 이해는 12세기 이전부터 서방교회에서 16세기 [[종교개혁]] 전에는 귀족과 유사한 지위를 누렸으며, 성도과 성직자는 엄격한 계급적 관계로 인식하였다. 기독교회의개신교회의 성직자인 목사는 성도와 평등적 관계의 시각에서 시작된 성직자 이해이다.
 
기독교회는개신교회는 [[목사]]의 직분을 거룩한 사명으로 인식한다. 이 사명에 대한 관점이 교단마다 차이가 있으나 성도와 목사는 계급적 관계가 아니라, 자격이나 직무의 차이로 인식한다. [[공교회주의]]를 따르는 교단들에서는 [[목사]]의 자격을 지닌 것으로 보며, [[개혁주의]]를 따르는 교단들에서는 직무의 차이로 인식한다.
 
이는 절대적 신분제도를 거부하는 평등적 관계를 전제로 하며, 하나님 앞에서 누구나 동등한 하나님의 성도이며, 똑같은 피조물임을 밝히는 성직자 이해이다.
줄 43 ⟶ 42:
[[서방교회]]는 16세기까지 [[성경]]과 [[교회 전통]]에서 교회전통을 강조하는 신학적 견해를 보였다. [[교리]]와 칙령에 따라 규정된 규범을 따른 [[교회법]]이 뿌리를 두는 전통을 강조하였다. 이로서 초대교회부터 전해지는 [[역사적 성경해석]]이 사라지고 교황의 해석과 교회 학자의 핵석과 교리를 따르는 [[알레고리 성경해석]]이 주축이 되었다.
 
기독교회는개신교회는 [[성경]]과 [[교회전통]]에서 성경을 중심으로 하는 [[역사적 성경해석]]을 발전시키고 이를 주축으로 하는 서방교회의 문을 열었다. 절대적인 것은 [[인간]]이 아니라 [[복음]]이라는 [[종교개혁]]의 전통적 복음주의 사상을 뿌리로 한다. 따라서 기독교회는개신교회는 성경을 기존 [[교리신학]], 즉 [[조직신학]]적 측면으로 접근하지 않고, 교리의 증빙자료 측면으로 접근하지 않았다. 성경 자체가 전하는 복음을 찾고자 성경 저자의 의도와 작성된 시대, 시대배경, 본문의 구조 등을 연구하여 [[성경]]이 직접적으로 전하는 [[복음]]의 내용을 찾고자 하였다. 이러한 연구로 [[교리신학]]의 일부였던 성경연구가 [[구약신학]]과 [[신약신학]]으로 발전하였다. 문헌과 본문연구, 역사적 배경, 문체, 구조를 연구하는 다양한 성경 연구 기법이 나타났으며, 깊이 있는 현대의 성경 해석, 셩경 주석의 핵심적 이론과 방법이 기독교회의개신교회의 성경 연구에서 비롯되었다.
 
현대의 [[천주교회]]와 [[정교회]]의 성경연구 역시 기독교회가개신교회가 형성한 성경연구 기법을 바탕으로 이뤄지며, 다양한 연구 교류가 [[교파]]를 넘어 이뤄지고 있다.
 
== 기독교의개신교의 기원과 용어 ==
'기독교개신교(改新敎)'라는 표현은 고칠 개(改)와 새롭게 할 新을 쓴 한자어 표현 즉 종교개혁 전통을 강조한 표현이다.
 
적지 않은 사람들이 ‘[[기독교]]’를 ‘기독교’의‘개신교’의 의미로 생각하고 사용하나, ‘기독교(基督敎)’라는 표현은 '그리스도교'를 한자로 번역한 말이기 때문에 기독교만을개신교만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고 [[로마 가톨릭교회]], [[동방 정교회]] 등과 함께 예수를 구세주로 믿는 모든 종교들을 일컫는 말이다. 또 기독교도를개신교도를 16세기에 칭하던 용어인 '복음주의자', '복음주의'(Evangelicalism)를 기독교로개신교로 사용하기도 한다. 유럽지역에서 사용하는 '에반겔리세'(Evangelische)라는 용어는 기독교로개신교로 번역할 수 있다. 하지만 이런 16세기 전통 복음주의와 19세기에 영미의 보수적 기독교회가개신교회가 중도 및 진보적 기독교회와개신교회와 분리하기 위해서 자칭하는 용어에서 등장한 '신복음주의'([[복음주의]])<ref>19세기 보수적 교단이 자신들이 개신교 정통이며, 개신교회의 중도 및 진보적 성향의 교단둘은 개신교의 16세기 복음주의를 따르지 않는다는 의미를 내포하였다.</ref>와는 구분해서 생각해야 한다.
 
기독교를개신교를 뜻하는 Protestant라는 용어가 처음 사용되기 시작한 곳이 독일의 슈파이어(Speye)이다. [[마르틴 루터]]에 의한 [[종교 개혁|종교개혁]](Reformation)이 1517년에 시작되었다. 1529년 증오심을 가진 가톨릭 실세들과 독일 제국의 일부 군주들이 슈파이어에 모여 제국 의회를 열고 교회의 분리를 주장하는 루터주의자들의 활동 일체를 지칭하는 '''복음주의자'''에서 등장하여 이를 활동을 금지하는 행위로 포고문에서 사용했다. [[신성 로마 제국|신성로마제국]] 황제인 샤를르5세(카를로스5세) 치하에서였다. 슈파이어 의회(Diet of Speyer)의 명목상 목적은 터키의 수상한 움직임에 대처하는 방안을 강구키 위해 모인 회의였지만, 실제로는 루터의 종교개혁을 지지하거나 추종자를 압박하기 위한 것이었다.<ref>[http://www.sedaily.com/News/NewsView/NewsPrint?Nid=1KV3J1LZPJ ‘프로테스탄트’의 탄생]</ref>
 
복음주의자, 즉 프로테스탄트의 탄생은 [[종교개혁가]]들을 핍박하려고 했지만 그들이 칼 5세에게 가톨릭파들의 주장이 비성경적인 것이라고 항의하는 과정에서 비롯되었다. 김현배에 따르면 제국 의회는 더 이상 루터의 종교개혁을 받아들여서는 안 된다고 공포하면서, 명령을 어기는 자들에게는 황제의 처벌이 따를 것이라고 경고했다고 한다. 또한 루터를 이단으로 정죄한 1521년 5월 ‘보름스 칙령’을 강행하였다. 이렇게 해서 종교개혁이 더 이상 확산되지 못하도록 압박하였다. 이에 루터의 추종자들은 다수의 가톨릭파에 의해 결정된 제2차 슈파이어 제국의회 결의사항을 반대하였다. 루터 지지파 제후들 역시 침묵할 수 없었다. 그들은 종교개혁 진영 전체가 말살될 위기에 처하게 된다고 판단했으며, 성경에 근거하지 않은 권위에 복종할 수 없음을 선언하였다. 그들은 루터파에게 종교의 자유를 허용했던 1526년 의회 결정을 유지하라고 촉구했다. 그리고 그들은 1529년 4월 25일, 교회와 믿는 사람들을 위해서 칼 5세의 종교정책에 공식적으로 항의하는 문서를 의회에 제출했다. 이들은 일치단결해서 제2차 슈파이어 제국의회 결정에 대해 황제에게 강력히 ‘항의’했다. 황제와 로마 가톨릭 지도자들에게 항거했으나 이들의 항의는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이렇게 항의한 사람들은 “'''Protestant”(항의하는 자)'''라는 이름으로 불렸고, 이것이 현재 영어권과 대한민국의 '기독교개신교'가 되었다. 당시 항의서에는 작센의 선제후 요하네스, 헤센의 영주 필립, 브란덴부르크-안스바하의 게오르크, 뤼네부르크의 에른스트, 안할트의 볼프강 등 5명의 군주들과 독일 14개 제국 도시들의 대표들이 서명했다. 루터의 개혁운동을 지지했던 '복음주의자'들이다. 14개 도시는 스트라스부르크, 뉘른베르크, 울름, 콘스탄츠, 린다우, 켐프텐, 뇌르들링엔, 하일브론, 이스니, 생 갈렌, 로이틀링엔, 바이센부르크, 빈추하임, 멤밍엔 등이다. <ref>[http://www.newspower.co.kr/sub_read.html?uid=31478&section=sc9 김현배 , 루터와 츠빙글리의 성만찬 논쟁]</ref>
 
== 개요 ==
=== 교의 ===
{{참고|교리|신조|설명=이 부분은}}
기독교의개신교의 주요 교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그리스도의 의도대로 회복하여 교회를 올바른 그리스도의 몸이 되도록 하는 신학적 배경을 지닌다. 기존 왕권적 교회구조주의가 아니라 그리스도 복음을 중심으로 하는 교회 구조를 따르고, 복음이 기록된 [[성경]]을 따라 하나님이 준 인간의 이성과 경험, 그리스도 몸으로서 기독교회의 전통을 회복하고자 하였다. 그리고 회복한 교회는 그리스도의 몸으로 하나님 나라를 경험하게 하고, 복음 안에서 복음을 따르는 믿음과 사랑, 소망을 지닌 그리스도를 닮은 인간을 형성하고자 한다.
 
이 기본적 교의를 실천하기 위한 기독교개신교 교파별 이해가 있으며 폭넓은 시도와 노력이 이뤄진다.
 
=== 기독교개신교 교회들 ===
{{참고|기독교#기독교의 교파|설명=이 부분은}}
 
==== 종교 개혁 운동 ====
[[종교 개혁]] 때부터 지금까지 이어져 내려오는 기독교개신교 교파로는 [[마르틴 루터]]의 사상을 따르는 [[루터교]]를 비롯한 [[장로교]], [[감리교]], [[메노나이트]], [[재세례파]], [[후터라이트]], [[아미시파]], [[성공회]] 등이 있다. 근대 [[영국]]에서는 [[성공회]]의 [[종교개혁]]과 [[예복]]사용 등의 제도에 집중된 [[성공회]]의 종교개혁(즉, 초기 [[영국 성공회]]의 [[가톨릭주의|가톨릭]]적인 면)에 반대하며, [[다섯 솔라|오직 성서]]만의 권위를 인정하는 [[청교도]]들의 종교개혁 운동<ref>《이야기교회사》/이성덕 지음/살림</ref> 이 등장했으며, 이들 청교도 운동에서 [[회중교회]]와 [[침례교회]]가 발전했다.
 
=== 에큐메니컬과 신복음주의 ===
줄 73 ⟶ 72:
{{본문|에큐메니컬 운동}}
 
기독교가 교단 간의 분열과 갈등으로 선교에 지장이 있음을 경험으로 느낀 진보적인 그리스도인들에 의해 [[1948년]] [[암스테르담]]에서 [[세계 교회 협의회]](WCC)가 출범하였는데. 여기에는 [[기독교회개신교회]], [[정교회]]가 회원교단으로 참여하고 있다. [[제2차 바티칸 공의회]] 이후 [[로마 가톨릭교회]]는 참관인들을 파송하고 있다. [[에큐메니컬 운동]]에서는 비 본질적인 교의보다는 본질적인 복음과 제자도의 실천을 강조하며<ref>《이야기 교회사》/이성덕 지음/살림</ref>,성찬예배 전례인 리마전례(Lima Liturgy),세계교회에서 사용하는 개정공동[[성서정과]](RCL)에 근거한 [[교회력]]으로 그리스도인의 일치를 이룸으로써 기독교단들의 분열과 대립을 극복하고자 한다. 한국에서는 [[대한예수교장로회(통합)]], [[기독교대한감리회]], [[한국기독교장로회]], [[구세군 대한본영]], [[대한성공회]], [[기독교대한복음교회]], [[기독교대한하나님의성회]], [[정교회]] 한국 대교구, [[기독교한국루터회]]가 회원교단 및 협력교단으로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에서 에큐메니컬 운동을 실천한다.
 
==== 복음주의신복음주의 ====
{{본문|로잔 회의}}
{{참고|복음주의|신복음주의|설명=이 부분은}}
 
복음주의신복음주의 운동은 흔히 복음주의 운동으로 불리며 19세기 유럽의 좌파적진보적 신학에 대립하는 보수주의 운동에서 시작되었다. 이들은 자신들을 진정한 기독교회의개신교회의 복음을 전하는 의미에서 "복음주의자"이라로 자칭하여서 개신교회의 종교개혁 사상을 따른 전통적 "복음주의"와 구분하기 위해 "신복음주의"라고 부른다. 복음주의는신복음주의는 [[반지성주의]], [[기독교 근본주의]]의 문제를 안게 되는 좌파적보수적 기독교계의 움직임에 견제하는 흐름이 되었다. 기독교계의개신교계의 에큐메니컬 운동에 대한 입장이 전혀 달랐던 복음주의신복음주의<ref>에큐메니컬 운동을 반대하는 보수적 입장의 기독교인의개신교인의 모임으로 자신들의 주장을 진정한 기독교개신교 전통이라 주장하여 자신들을 '복음주의'로 칭함, 전통적 개신교 전체를 의미하는 전통적 복음주의와 구분하기 위해 '''신복음주의'''로 구분함. 복음주의는 [[유럽]]에서는 개신교 전반을 이르는 의미이나 영어권인 영국이나 미국에서는 주로 신복음주의 사상 중 온건사상을 의미한다. 급진적 신복음자들은 주로 근본주의자로 지칭되나 이들은 자신들을 항상 '복음주의'라고 자칭한다.</ref> 계열 교회들과 교인들의 연합체인 [[세계복음주의연맹]](WEA)가 결성되었다결성되고 [[1974년]] [[로잔 회의]]에서 신복음주의적 그리스도인의 사회선교를 강조하는 [[로잔 언약]]이 선포되었으며 양 기구 간의 협력이 가속화되는 등 가시적인 거룩한 일치의 결과들이 계속 나타나고 있어 의견차가 있음에도 교회 일치를 향한 발걸음은 계속되고 있다.
 
== 기독교개신교 교파 ==
[[1517년]]에 일어난 [[루터]]의 서방교회 종교개혁운동은 개혁 찬성파의 종교 개혁 운동에 따라 기존 서방 교회의 제도와 가르침이 왜곡된 교회제도로 보는 교회와 새로운 교회들이 교파를 형성하기 시작했다. 개혁 찬성파은 크게 [[루터]]를 중심으로하는 온건 개혁파, 즉 '''개선주의자'''와 [[츠빙글리]]를 잇는 [[칼뱅]]을 중심으로 하는 급진 개혁파, 즉 '''재건주의자'''의 두 양상이 기독교내에서개신교내에서 나타나 교단을 형성하는 기준이 되었다.
 
개선주의 성향의 교회, 루터는 당시 교회를 기독교답지 않은 것을 제거하고 개선하여 복음을 강화하는 개선적인 종교개혁사상을 지녔다. 칼뱅 역시 초기에는 루터와 유사하였으나 점차 서방교회의 제도를 복음 위에서 재건해야 하는 재건적인 종교개혁 사상으로 발전하였다.
 
'''개선주의''' 즉 흔히 기독교개신교 [[공교회주의]] 또는 [[보편교회주의]]라 하며, [[초대교회]]와 12세기까지의 [[공교회]](보편교회)의 제도와 사상을 보전하고 활용하고, 왜곡된 로마교회의 교황주의와 부조리를 제거하는 기독교의 방향을 따르는 교단들이다. [[독일]]과 [[유럽]]의 [[루터파]]교회와 영국의 [[성공회]], [[감리교회]], [[구세군]]교회, [[성결교회]] 일부와 [[오순절교회]] 일부가 이에 해당하며, 감독(주교)과 [[목사]](사제)의 직제와 전통적인 자격으로서 성직으로 목사를 보며, 적용의 범위는 다르나 교회는 감독의 파송으로 시작된다고 보는 초대교회의 사상을 따른다. 만인제사장설을 따르며, 이는 모든 이들이 제사장이 되는 권한을 지닌 동등한 교인을 의미하는 것으로 모든 신도가 목사라는 의미는 아니다. 개선주의, 즉 공교회주의의 성직자 이해는 마치 동일한 권리를 가진 국민이지만 '판사'는 일정 훈련 과정을 거쳐 임명을 받고 국민과 다른 자격(변호사 자격)을 가지는 것과 유사하다.
 
'''재건주의''' 즉 흔히 [[개혁주의]]라 하며, 16세기 새롭게 기존 교회와 달리 [[초대교회]]의 사상으로 완전히 개혁해야 한다고 보았다. 따라서 개혁대상이 로마교회 교황주의나 부조리한 제도, 관습만이 아니라 더 나아가 초대교회까지 거슬러 올라가 4세기 경까지의 신학사상을 중심으로 온전한 교회를 이루어야 보았다. 유럽의 [[개혁교회]], [[장로교회]], [[회중교회]], [[침례교회]], [[오순절교회]] 일부가 이에 해당하며, [[목사]]와 교인은 동등한 자격을 지닌다고 보았고, [[장로]]를 선발하여 이 중에 한 명을 목사가 되게 하거나 장로를 목사로 인식하는 경향을 보인다. 만인제사장설을 문자대로 따라 모든 교인이 제사장의 자젹을 지닌 것으로 이해한다. 재건주의 내에서도 '급진'와 '온건'한 교단이 있다. 개혁교회, 장로교회, 오순절교회 교파 등이 온건한 재건주의 범주에 있다. 이들은 장로들을 세워 그 중에서 한 명을 목사로 세우는 원로주의 구조를 형성한다. 침례교회, 회중교회, 그리스도교회 교파 등이 재건에 급진적 사상을 지녔다. 이들은 한 명의 장로만 세우고, 그가 목사 역할을 하도록 하는 회중주의 구조를 지닌다. 재건주의 교회의 성직자 이해는 마치 어느 조직의 한 사람이 여러 이유로 '조직대표'가 되었다가 그만 두면 다시 부서원이 되는 것과 유사하다.
줄 92 ⟶ 91:
개선주의나 재건주의 사상을 바탕으로 하는 교회는 교회에 대한 이해일 뿐이며, 현재 거의 모든 교파의 교회는 교회내에서 목사 예비자로 인정 받은 4년제 학사 학위를 지닌 사람이 3년제 신학대학원을 졸업하고 훈련을 받고 목사로서 안수 받는 성직과정을 지녔다.
 
세계 기독교 백과에 따르면 2001년 현재 238개 국가에 33,000개 이상의 기독교개신교 교단<ref>단일 교파의 국가별 교단의 숫자를 포함하였으므로, 교파의 숫자는 아니다.</ref>이 있으며, 매년 270~300개의 국가별로 기독교회의개신교회의 성장이나 지역별, 부족별, 또는 신학적 분리로 인해서 교단의 구분과 교파 구분이 나타나고 있다.<ref>World Christian Encyclopedia (2nd edition). David Barrett, George Kurian and Todd Johnson. New York: Oxford University Press, 2001</ref> 주요 기독교개신교 교파를 나열하면 다음과 같다.
 
[[파일:Protestantbranches-ko.svg|600px|섬네일|center|<span style="font-size: 9pt">주요 기독교개신교 교파의 분화도</span>]]
 
=== 루터교 ===
줄 113 ⟶ 112:
{{본문|장로교}}
 
'''장로교회'''의 시작은 [[장 칼뱅]]이 스위스에서 [[종교 개혁]]을 일으켰던 [[개혁교회]] 시대로 올라가며, 이는 지역에 따라 나뉘어졌다. '''장로교회'''는 스코틀랜드의 [[존 낙스]](John Knox)에 의해 확립되었다. 선거에 의해 선출된 '''장로'''가 [[목사]]를 보필하는 장로제에서 그 이름이 연유한다. 신학적으로는 종교 개혁 시대에 체계화 된 [[개혁주의]]를 표방한다. [[다섯 솔라]]를 핵심 교리로 인정한다. [[대한민국]]에서는 600만 이상의 신자들이 포함되어 있어, 기독교개신교 신자들 중 가장 많은 수가 이 교파에 속해 있다. [[대한예수교장로회(통합)]], [[대한예수교장로회(합동)]], [[대한예수교장로회(고신)]], [[대한예수교장로회(호헌)]], [[한국기독교장로회]] 등으로 나뉘어 있다.
 
=== 성공회 ===
줄 123 ⟶ 122:
{{본문|침례교}}
 
'''침례교'''(浸禮敎,{{lang|en|baptist}})는 기독교의개신교의 한 교파이다. 침례교는 [[예수]]에 대한 믿음을 고백한 후, [[신약성경]]에 근거하여 물에 완전히 잠기는 침례를 주장하기 때문에 침례교회라는 교단 명칭을 갖게 되었다.
침례교는 (영아가 아닌 즉, 모태신앙 부정) 신앙인의 침례와 믿음만으로 이뤄지는 [[구원]]을 비롯해 [[성경]]을 신앙과 실천의 유일한 원칙으로 삼고 있으며, 자립적인 지역 교회를 그 특징으로 갖고 있다. 그렇다고 해서 침례교가 교리가 없이 무조건 자유롭다라고는 할 수 없으며 침례교 자체적으로 신앙고백서가 존재하고 대부분 완화된 칼빈주의적 성격을 가지고 있다. 일반적으로 침례교는 일반적으로 [[복음주의]] 노선을 지향하며, 직제는 [[목사]]와 [[집사]]가 있다.
역사신학자들에 따르면 [[1609년]] [[암스테르담]]에서 영국인 분리주의자 [[존 스미스]]를 [[목사]]로 한 침례교회가 최초의 침례교회라고 한다. [[신약성경]]에 근거해 스미스는 영아의 침례나 세례를 거부했고, 신앙에 대한 구체적인 고백이 있는 이들에 대해서만 침례를 주었다. 이러한 자유교회운동은 영국으로 퍼져, [[칼빈주의]]를 기초로 하는 [[개혁침례교|특수침례교인(Particular Baptists)]]들과, [[알미니안주의]]를 기초로 하는 일반침례교인(General Baptists)들이 생겨났는데, 영국침례교는 일반적으로 칼빈주의를 기초로 하는 개혁파 혹은 [[개혁침례교|특수침례교(Particular Baptists)]]적 성향이 두드러졌다. [[1639년]] [[로저 윌리엄스]]는 미국에 최초로 침례교회를 설립하였고, 미국의 자유정신은 침례교회의 자유정신과 유사한 점이 있었고, 침례교회가 성장하는 기초가 되었다. 특히 [[1700년대]] 중반의 [[대각성 시대]] 이후 미국의 침례교회는 [[감리교회]]와 더불어 증가하기 시작했다.
[[2000년]]을 기준으로 세계의 침례교인 수는 약 1억 5천만 명으로, 특히 [[미국]]의 기독교에서개신교에서 교세가 가장 큰 교파는 세계 최대의 기독교단인개신교단인 [[남침례회]](Southern Baptist)이다.
 
=== 감리교 ===
{{본문|감리교}}
 
감리교회({{llang|en|Methodist Chruch}})는 18세기 영국의 성직자인 [[존 웨슬리]]({{llang|en|Rev. John Wesley}})의 [[복음주의]] 운동, [[사회선교]], 전도활동으로 등장한 기독교개신교 교파이다. 전 세계적으로 약 8천5백만명<ref>세계감리교협의회 [http://worldmethodistcouncil.org/about/member-churches]</ref>이 넘는 신자가 있으며, 성경을 중심으로 한 이성, 전통, 체험을 기독교의 근간으로 이해하는 복음주의적이며 경건한 신학 입장을 가지고 있다고 주장한다. 신학적으로는 웨슬리의 사상을 중심으로 초기 교회 전통을 비판적으로 수용하고 있으며, 교회구조적으로도 공교회([[보편교회]])의 제도인 감독제 교회를 구성하였다. 지역을 중심으로 한 지방회의 감리사, 대규모 구역인 연회에 감독이 있는 교회구조를 가졌다. 감독은 연회의 성직자를 안수하고, 연회를 인도해 주요 의사결정을 내린다. 현재의 전 세계적으로 폭넓은 신학적 토양을 제공하였으며, 특히 영미에서 개인구원과 사회구원활동을 전개하고 있다. 폭넓은 신학적 역량으로 다양한 기독교개신교 교파가 감리교 영향 하에 설립되었다. [[성결교]], 순복음교회, 구세군교회 등이 감리교의 신학적 영향을 받았다. 대한민국에서는 [[기독교대한감리회]]가 있으며, 1930년부터 [[기독교대한감리회 사회신경|사회신경]]을 선언하는 등 복음의 사회적 실천을 강조한다.
 
=== 성결운동 ===
{{본문|성결운동}}
 
성결교는 [[19세기]]말 [[미국]] [[감리교]]에서 [[존 웨슬리]]의 완전주의적 입장을 강조하며 형성된 교파로서, 20세기초 미국에서 활발하게 전개되던 성결 운동에서 그 유래를 찾을 수 있다. 중생, 성결, 신유, 재림 이 4가지를 4중 복음으로 내세우고 있으며, 그 중 성결을 가장 강조한다. 성결교 신학의 배경에는 우선 기독교를개신교를 바탕으로 두고 있기에 기독교의개신교의 [[복음주의]]와 그 당시 시대적으로 19세기에 있었던 성결 운동, 그리고 웨슬리의 신학적 배경이 되었던 [[알마니안주의]]를 들을 수 있다. 한국의 성결교 전파는[[1901년]] 미국인 [[카우만]]이 일본에 설립한 [[동양선교회]]에 의해 이루어졌으며, [[1907년]]에 한국에 대한 선교가 본격화되면서 독립 교파가 되었다. [[1962년]]에 이념의 차이로 인하여 다시 [[기독교대한성결교회]]와 [[예수교대한성결교회]]로 분리되었다.
 
=== 오순절운동 ===
줄 146 ⟶ 145:
{{본문|구세군}}
 
구세군(救世軍, 영어: The Salvation Army)은 1865년 영국의 감리교 목사인 윌리엄 부스와 그의 아내인 캐서린 부스가 창시한 기독교의개신교의 한 교파이다. 성직자를 사관, 신학교를 사관학교, 교인을 병사 또는 군우라고 부르는 등 군대식의 조직을 가진 특색있는 기독교이다. 기독교인은 이웃들에게 빵과 복음을 전해야 한다는 윌리엄 부스의 사상에 따라 구세군에서는 복음을 전파하는 전도와 사회적 약자를 섬기는 사회봉사 모두 실천하고 있다.
 
=== 회중교회 ===
줄 152 ⟶ 151:
{{참고|개혁 교회|설명=이 부분은}}
 
'''회중교회'''(영어: Congregational church)또는 조합 교회는 회중주의적 교회 운영을 실천하는 기독교개신교 교회이다. 회중 교회에서는 각 회중이 독립적이며 자율적으로 자신의 모임을 운영하며, 많은 회중 교회는 자신들이 회중 교회의 전통을 이어받았다고 주장한다. 또 버마 선교사로 유명한 [[아도니람 저드슨]]은 회중교회 전통에서 자랐으나 [[인도]] 선교사인 [[윌리엄 캐리]]의 영향으로 [[개혁침례교|개혁파 침례교]] 신자가 되었다.
 
미국 회중교회는 이후 그리스도인 교회(the Christian Churches)와 [[1929년]] 연합하여 [[:en:Congregational Christian Church|그리스도인 회중 교회]] (Congregational Christian Churches)를 설립하기까지 미국 최대 기독교개신교 교단으로 존속 하였으며 미국의 문화, 사회 그리고 정치의 기초를 만들었고, 이들을 통하여 현재의 미국이 세워지게 되었다. 새로운 국가와 [[사회]]를 건설하기 위하여 이들은 [[교육]]에도 깊은 관심을 두었으며 하버드 대학교(Harvard), [[예일 대학교]](Yale), 윌리엄스 대학(Williams College)등 미국 내 유수대학들이 이들에 의해 설립 되었다. 이들은 특별히 [[뉴잉글랜드]](New England)지역에서 교회를 확장 하였으며 1957년 [[:en:Evangelical and Reformed Church|복음주의 개혁교회]] (Evangelical and Reformed Church)와 연합하여 오늘의 [[:en:United Church of Christ|미국 연합 그리스도의 교회]](United Church of Christ)를 설립하게 되었다.
 
=== 재침례파 ===
줄 160 ⟶ 159:
{{참고|아미시파|설명=또한}}
 
'''재침례파'''({{lang|en|Anabaptist}}, {{llang|el|Αναβαπτιστές}})<ref>ανα(/아나/, {{lang|en|again}}) + βαπτιζω(/밥티조/, {{lang|en|baptize}}) = {{lang|en|re-baptizers}}</ref> 는 16세기 [[종교개혁]] 당시 근원적 개혁을 따른 기독교개신교 종파를 가리킨다. 그 사상을 이어받고 있는 현대의 교파들로는 [[아미시파]], [[후터라이트]], [[메노나이트]] 등이 있다. 전 세계적으로 120여만 명의 교인들이 있으며, [[대한민국]]에도 재침례파 교회가 한 곳 있다.<ref>[http://www.hani.co.kr/arti/happyvil/happyvil_news04/79915.html 한겨레 2005년 11월 16일자, 자생적인 재침례파 교회인 춘천 예수촌 교회 기사].</ref> 이 문서에서 재침례파라 함은 주로 16세기 근원적 종교개혁자들을 가리킨다. 이들은 유아세례뿐만 아니라 [[로마 가톨릭교회]]에서 받은 세례도 무효이기 때문에 그런 사람들은 다시 침례를 받아야 한다고 주장했고, 여기서 그 이름이 유래한다. 유아 세례를 반대하는 교파들은 [[침례교]]도 역시 마찬가지이나 그렇다고 해서 그것을 무효라고 주장하지 않는다. 대다수 [[기독교]] 교파에서는 [[침례]]가 죄의 용서<ref>{{인용문2|
베드로가 이렇게 대답하였다. “회개하시오. 그리고 여러분은 한 사람도 빠짐없이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침례)를 받고 여러분의 죄를 용서받으시오. 그리하면 성령을 선물로 받게 될 것입니다.”|[[사도행전]]|2:38|10px}}</ref> 와 [[구원]]<ref>{{인용문2|
믿고 세례(침례)를 받는 사람은 구원을 받겠지만 믿지 않는 사람은 단죄를 받을 것이다.|[[마르코 복음서]]([[마가 복음서]])|16:16|10px}}</ref> 의 의미가 있기 때문에 사람이 일생 한 번만 받는 것이라고 가르친다. 그러나 재침례파는 이에 반대한 것이다.
줄 172 ⟶ 171:
 
역사학자와 [[사회학]]자들은 더 나아가 급진적 재침례파와 평화주의 재침례파로 나눈다. 급진적 재침례파는 "새 예루살렘"을 땅 위에 건설하기 위해 폭력 동원을 인정했다. 급진적 재침례파로 인해 발생한 사건이 [[뮌스터 반란]]이다. 그에 반해 [[신약성서]]에 근거한 [[비폭력주의]]를 주장하는 평화주의자들은 [[메노나이트]](Mennonites)의 기원이 된다. 다시 말해, 원래 메노나이트의 기원은 [[네덜란드]] [[로마 가톨릭교회]] [[사제|신부]]인 메노 시몬스(Menno Simons)가 두 부류의 전통적인 재침례파인 평화적인 오비파(Obbenites)와 급진적인 호프만파(Melchio Hoffman)사이에서 고민하다가 "어떻게 [[그리스도인]]이라 자부하는 자가 영적인 무기는 내려두고 세속적인 것을 취하는 것에 하나님의 말씀이 부합하겠는가?"라고 반문하며 [[평화주의]]자인 오비파 쪽으로 가입한 것이 계기가 되었고, 이후에 그곳의 지도자가 되었는데, 그의 추종자들을 그의 이름을 따서 메노나이트라 부르게 되었다.<ref>Justo L. Gonzalez, ''A history of Christian'', Vol. III, Abingdon Press, 1975, p.86</ref> 메노는 [[신약성서]]의 가르침에 따라, 폭력에 반대하는 비폭력주의를 주장하였다.<ref>{{서적 인용|제목=《5시간만에 읽는 쉽고 재미있는 교회사》|저자=유재덕 지음|출판사=작은행복}}</ref>
한 번 받은 세례(특히 유아 세례)를 무효라고 주장하는 교리로 [[로마 가톨릭교회]]와 기독교개신교 여러 교단에게 이단으로 취급되어 [[1600년]]까지 무려 1만여 명의 [[순교자]]들이 생겼으며, [[1930년]]에는 [[나치]]의 탄압을 피해 후터라이트(재침례파의 일파)공동체인 부르더호프 공동체가 [[영국]]으로 건너가기도 했다. 현재는“재침례파가 21세기 기독교가개신교가 갈 방향을 제시해주고 있다”<ref>[http://www.hani.co.kr/section-009100020/2003/04/009100020200304102007472.html한겨레신문 2003년 4월 10일자 "평화교회 재세례파(재침례파)는‥"]{{깨진 링크|url=http://www.hani.co.kr/section-009100020/2003/04/009100020200304102007472.html%ED%95%9C%EA%B2%A8%EB%A0%88%EC%8B%A0%EB%AC%B8 }}</ref> 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 [[전쟁]], 다툼, 폭력을 반대하는 [[비폭력주의]]
줄 184 ⟶ 183:
{{본문|퀘이커}}
 
퀘이커(Quaker)는 17세기에 등장한 기독교의개신교의 한 갈래이다. 친우회(형제들의 단체, Society of Friends)란 뜻을 가지며, 퀘이커라는 이름은 ‘주님 앞에서 떤다’는 조지 폭스의 말에서 유래했다. [[1650년대]]에 [[영국]]의 [[조지 폭스]](George Fox)가 제창한 [[명상]] 운동으로 시작되었다. 창시자 조지 폭스는 19세에 집을 나와 4년 간의 구도여행을 통해 펜들 힐(Pendle Hill)이라는 [[산]]에서 환상을 보며 [[그리스도]]의 진리를 깨달았다고 한다. 퀘이커는 [[영국]] 정부에 의해 탄압받았으나, 퀘이커 신도 윌리엄 펜이 불하받은 [[북아메리카]] [[식민지]] 영토에 도시(現 미국 [[펜실베이니아]])를 세움으로써 종교적 자유를 허용받았다. 국내의 유명한 퀘이커 교도로는 씨알정신으로 유명한 씨알 [[함석헌]] 선생이 있다.
 
== 세계 기독교개신교 성도 수 ==
[[파일:Countries by percentage of Protestants (2010).svg|섬네일|550px|기독교개신교 신자 수 통계]]
전 세계 기독교개신교 신자 수는 약 8억 명 정도이다.<ref>https://www.cia.gov/library/publications/the-world-factbook/geos/xx.html</ref>
* 오순절교회 : 2억8천만 명<ref>http://www.pewforum.org/2011/12/19/global-christianity-traditions/#protestant</ref>
* 성공회 : 8천5백만 명<ref>http://www.anglicancommunion.org/structures/member-churches.aspx</ref>
줄 198 ⟶ 197:
** 칼뱅주의
*** [[스위스]] 개혁 교회 : 240만 명
*** [[네덜란드]] 개혁개신 교회 : 230만 명
** 장로교회
*** 장로교회(미국) : 180만 명
줄 207 ⟶ 206:
** 메노나이트, 아미시, 퀘이커 등.
* 비교파 복음주의 : 4천만 명
* 복고주의 기독교개신교 : 2천만 명
 
== 나라별 기독교개신교 ==
 
=== 한국 ===
{{참고|대한민국의 기독교개신교|설명=이 부분은}}
<!-- 이 부분은 편집하기 전에 토론 페이지를 참고해 주세요. -->
 
[[1866년]] [[제너럴셔먼호 사건]] 이후, 여러 차례 외국 선교사들이 선교를 시도했지만 직접적인 선교는 불가능했다. 따라서 [[만주]] 지역에 있는 한국인을 중심으로 전도가 이루어졌다. [[조선]]의 기독교는개신교는 [[1879년]] [[이응찬]](李應贊), 서상륜(徐相崙, 1848년~1926년) 등이 중국 만주에서 세례를 받은 다음 신앙 공동체를 형성함으로써 시작되었다.{{출처|날짜=2009-03-17}} 조선의 기독교는개신교는 신앙 공동체 형성 직후부터 [[성서]] 번역에 착수하여 1882년 [[함경도]] 방언으로 된 <예수성교 누가복음젼셔>를 출판했다. 따라서 한국의 기독교개신교 전래는 선교사가 한국에 들어오기 전부터 시작되었다. 1883년 [[이수정 (1842년)|이수정]]이 일본에서 [[야스가와]] 목사에게서 세례를 받았다. 그는 한글 성경을 번역하기 시작해 1885년에는 〈마가의 전복음셔언해〉을 출판해 냈다. 성서를 한글로 옮긴 실천은 일본에서 체류하고 있던 서구 기독교개신교 선교사들이 한국에서의 선교를 준비하는 데 도움을 주었다.<ref>{{웹 인용 |url=http://www.bskorea.or.kr/bskorea/pr/bibkorea/bibkor_read.aspx?idx=374# |제목=대한성서공회<!-- 봇이 따온 제목 --> |확인날짜=2007-07-06 |보존url=https://web.archive.org/web/20070928202438/http://www.bskorea.or.kr/bskorea/pr/bibkorea/bibkor_read.aspx?idx=374# |보존날짜=2007-09-28 |깨진링크=예 }}</ref> 이수정은 미국에 한국에 선교사를 보낼 것을 요청하였다. 19세기에 중국에 전해진 기독교는 그리스도를 중국 발음으로 표현하여 기리사독(基利斯督)이라 하였고, 한국에서는 이를 줄여서 '기독(基督)교’라 불리게 된 것이다. 중국의 기독교는 아편전쟁을 유발시킨 천주교(프랑스)와 차별화를 두기 위하여 기독교는 기독교, 천주교는 천주교로 확실하게 구분하여 쓰여 지고 있고, 19세기에 한국에 전해진 기독교의 성경은 중국성경이 한국어로 번역되어 한국성경으로 정착되었다.
 
[[1885년]] [[4월 5일]] 같은 날 [[장로교]]의 [[호러스 그랜트 언더우드]] 선교사와 미국 [[북감리교]]의 [[아펜젤러]] 목사가 한국에 들어오게 된다. [[언더우드]] 선교사는 [[광혜원]]을 설립하였고, 아펜젤러 목사는 [[배재학당]](現 [[배재고등학교]], [[배재대학교]])를 설립하였다. 그 밖에 [[침례교]]는 [[캐나다]]의 [[맬콤 팬윅]]에 의해 전래되었으며,재림교회(또는 안식일교회,[[안식교회]])는 1904년 이응현, 손흥조가 하와이로 이민 도중 일본 고베에서 신앙을 받아들이고 한국으로 귀국하면서 들어왔다. [[1905년]] [[구세군교회]]도 구세군 사관 [[허가두]] 중령에 의해 들어왔다. 한국의 자생 기독교단으로 1935년에 설립된 [[기독교대한복음교회]]가 있다.
 
[[1885년]] [[4월 5일]] 같은 날 [[장로교]]의 [[호러스 그랜트 언더우드]] 선교사와 미국 [[북감리교]]의 [[아펜젤러]] 목사가 한국에 들어오게 된다. [[언더우드]] 선교사는 [[광혜원]]을 설립하였고, 아펜젤러 목사는 [[배재학당]](現 [[배재고등학교]], [[배재대학교]])를 설립하였다. 그 밖에 [[침례교]]는 [[캐나다]]의 [[맬콤 팬윅]]에 의해 전래되었으며,재림교회(또는 안식일교회,[[안식교회]])는 1904년 이응현, 손흥조가 하와이로 이민 도중 일본 고베에서 신앙을 받아들이고 한국으로 귀국하면서 들어왔다. [[1905년]] [[구세군교회]]도 구세군 사관 [[허가두]] 중령에 의해 들어왔다. 한국의 자생 기독교단으로개신교단으로 1935년에 설립된 [[기독교대한복음교회]]가 있다. 한국에서는 개신교와 기독교가 같은 뜻으로 쓰이고 있지만,기독교는 그리스도교를 뜻하므로 개신교만을 뜻하지는 않는다.
 
==== 평양 대부흥 ====
{{본문|평양대부흥}}
 
'''평양 대부흥'''은 [[1907년]]에 [[평양]]에서 있었던 큰 교회 성장을 일컫는 말이다. 기독교의개신교의 세력이 강했던 [[조선]] 북쪽 지역의 기독교개신교 신자, [[선교사]]들이 자신들의 잘못을 공개적 고백한 사건에서 시작되었다. 당시 [[길선주]] 장로를 비롯, 신자들과 선교사들은 횡령 및 교우들에 대한 교만한 태도 등을 고백하고, 이를 돌려주는 절차 등을 밟았다. 이후로 기독교인의개신교인의 수가 폭발적으로 증가하는 현상이 일어났다.<ref>{{뉴스 인용
|url = http://www.chosun.com/culture/news/200601/200601110371.html
|제목 = 100년 전 그 날 평양에선… 교인들의 회개가 줄을 이어
줄 239 ⟶ 237:
{{참고|신사참배 강요|대한예수교장로회|설명=이 부분은}}
 
[[1930년대]] [[군국주의]]가 기승을 부린 일본 제국에서는 한국의 교단들을 통폐합하고 일본과 조선의 소위 미션스쿨과 기독교개신교 교회들에 대해 [[신사참배]]를 강요한다. 이때 조선 기독교는개신교는 크게 세 가지 반응을 보였다: 적극 참여파 / 무관심한 소극파 / 적극 반대파. [[주기철]],[[최상림]]처럼 하나님 앞에서 우상숭배를 할 수 없다는 종교적 이유에서 신사참배에 반대한 사람들과, [[양주삼]]처럼 신사참배는 종교 행위가 아니라면서 찬성하는 부류로 나뉘었다. 당시 대다수의 장로교, 감리교는 이에 찬성하여 신사참배에 동참하였다. 하지만, 해방 이후 친일활동을 한 기독교개신교 목사들이 교회에서 처벌받지 않고 오히려 총회장이나 노회장 등의 교단지도자를 역임했기 때문에, 교회사학자들은 [[친일파]] 청산을 한국 기독교가개신교가 사실상 하지 못했다고 비평한다. 이로 인해 대한예수교장로회에서 고신(고려)파가 분리되었다.<ref>일본 개신교회사/김수진 지음/홍성사</ref> 그러나 최근들어 민족적 신사참배에 대한 교회적이고 민족적인 회개운동이 전개 되어, [[장로교회]]에서 [[주기철 목사]]를 복권시키는등의 조치가 취해지고 있다.
 
==== 광복 이후의 기독교개신교 ====
{{참고|한국의 기독교#한국 기독교의 현재|설명=이 부분은}}
 
[[광복]] 이후 [[대한민국]]에서는 기독교가개신교가 크게 성장하였다. [[미국]]에서 발간되는《크리스천 월드(Christian World)》가 [[1993년]]에 발표한 세계 대형 교회의 순위를 보면, 세계 10대 대형 교회 안에 한국 교회가 1위와 2위를 포함하여 5개가 포함되어 있으며, 20위 안에는 10개, 그리고 발표된 50위 안에는 23개가 포함되어 있는 것으로 나타난다.<ref>〈조선일보〉1993년 2월 8일자, 23면 참조.</ref> 기독교가개신교가 한국에 들어온 것이 [[1885년]], 진정한 기독교개신교 선교의 시작 시점이 대한민국 정부 수립 이후라는 점에 비추어 볼 때 대한민국의 기독교는개신교는 불과 50여 년 정도 만에 세계 선교의 역사에서 유례를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엄청난 속도의 성장을 했다고 볼 수 있다. 현재 대한민국 인구의 약 18.3% 정도가 기독교개신교 신자이다.<ref>[https://en.wikipedia.org/wiki/Religion_in_South_Korea#Statistics_on_religion_by_population Religion in South Korea#Statistics on religion by population] 통계 표의 ‘Protestant’ 수치 참조</ref>
하지만 성직자 수급 불균형 문제, 대형교회의 목사 장로등의 지나친 정치참여, 중대형교회들의 교인 독점, 교회의 상업화, 십일조 문제, 세금 문제, 타 종교 배척, 지나치게 자의적인 성경해석으로 인한 수많은 분파 설립 등이 문제화 되고 있다. [[2007년]] 현재 [[대한민국]]은 지난 10년간 개신교 신도 수가 1.6% 감소하였다.<ref>정천기.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3&oid=001&aid=0001751821 한국 개신교 쇠퇴기 들어섰나?]. 연합뉴스. 2007년 9월 10일.</ref><ref>이상규.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3&oid=005&aid=0000521954 한국교회의 상황]. 국민일보. 2012년 8월 12일.</ref><ref>공병설.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3&oid=001&aid=0006359616 "한국교회, 파시즘 요소 청산하지 않으면 생사 위기"]. 연합뉴스. 2013년 7월 8일.</ref>
 
=== 인도네시아 ===
{{본문|인도네시아의 기독교개신교}}
 
=== 일본 ===
{{본문|일본의 기독교개신교}}
 
===유럽의 교회===
[[2010년]] 현재, 유럽의 평균 기독교개신교 출석교인은 3% 정도이고 신복음주의자는 1%도 안되는 나라가 22개국이다, 프랑스는 60년 전에는 전체 인구의 96%가 [[로마 가톨릭교회]] 미사에 참석했으나 지금은 6%만이 미사에 참석하며 기독교는개신교는 전체 인구의 0.6%만이 예배에 참석한다.<ref>최종상. [http://www.christiantoday.co.kr/view.htm?id=206917 선교지가 된 유럽, 평균 기독교개신교 출석교인은 3%]. 2010년 3월 4일.</ref>
 
== 함께 보기 ==
줄 281 ⟶ 280:
{{위키공용분류}}
; 일반
* {{언어링크|en}} [http://protestant.christianityinview.com/ 기독교에개신교에 대한 소개]
* {{언어링크|en}} [http://www.inplainsite.org/html/sola_scriptura.html#Concoction "Is Sola Scriptura a Protestant Concoction?"] by [[Greg Bahnsen]]
* {{언어링크|en}} [http://www.ianpaisley.org European Institute of Protestant Studies]
줄 298 ⟶ 297:
{{전거 통제}}
 
[[분류:기독교개신교| 기독교]]
[[분류:그리스도의 교회]]
[[분류:기독교개신교 단체]]
[[분류:기독교]]
{{DEFAULTSORT:기독교}}
__색인__
__새문단쓰기_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