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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박해와 학살은 단계적으로 진행되었다. 먼저, 1935년 제정된 [[뉘른베르크법]]을 비롯하여 유태인을 사회에서 배척하는 각종 법령들이 세계 대전 발발 전에 제정되었다. 또한 [[나치 강제 수용소|집단 수용소]]를 지은 후 수감자들을 각종 노역에 동원하였고, 이들은 대부분 과로사하거나 병사하였다. 동유럽 점령지의 경우, [[특별행동부대]]라는 불법 무장 단체가 100만 명이 넘는 유태인과 정치사범을 총살했다고 알려졌다.
 
독일군은 유태인과 집시들을 [[게토]]에 수용한 후 화물 열차에 실어서 집단 [[학살 수용소]]로 이송했다. 화물 열차에서도 많은 사람들이 죽었는데, 살아남은 이들은 차례대로 [[가스실]]에서 죽음을 맞이하였다. 이 학살에는 독일 관료제 전체가 관여했다고 알려져 있고, 한 홀로코스트 학자는 이 때문에 독일의 제3제국을 “학살국가”라고 칭하기도 하였다. ☞ 여담으로 유태인 600만 숫자는 '1차세계대전으로 유태인 600만 명이 굶고 있다'는 30년전 기사가 2차 세계대전 말기에야 와전 되었다고 한다 <ref name = "Berenbaum 2005 103">{{Harvnb|Berenbaum|2005|p=103}}.</ref>
 
== 어원과 개념 ==
|-
|유태인
|align="right"|100만명590만명|| style="text-align:center;"|<ref name=autogenerated2>[[Lucy Dawidowicz|Dawidowicz, Lucy]]. ''The War Against the Jews'', Bantam, 1986.p. 403</ref>
|-
|소련군 전쟁포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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