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글라데시: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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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파키스탄령 동파키스탄 ===
 
두 개의 파키스탄이 성립하면서 현재 방글라데시 지역은 동파키스탄이 되었다. 양 지역간 인구는 그다지 차이가 없었지만, 경제와 문화 등이 크게 달랐으며, 또한 인도에서 1000 km 이상 떨어진 국토였다. 이 차이는 곳곳에서 마찰을 일으켰다. 가장 먼저 문제가 일어난 것은 언어의 차이였다. 벵골어로 거의 통일된 동파키스탄과는 달리, [[서파키스탄]]은 [[우르두어]] 공용어화를 결정했기 때문에 충돌이 일어났다. 이것은 벵골어와 우르두어의 공용어화에서 결론이 나지 않았지만, 정치적으로 우세한 서파키스탄에 치우친 정책이었다. [[1970년]] 12월 선거에서 인구가 많은 동파키스탄의 아와미 연맹이 선거에서 승리하면서 서파키스탄 중앙 정부는 의회 개회를 연기한 후, [[1971년]] 3월에는 군이 개입하여 동파키스탄 수뇌부를 구속하였다. 이것은 동서 파키스탄의파키스탄 대립의 결정적 원인이 되었으며, 동파키스탄은 독립을 시도하여, 서파키스탄(현재의 파키스탄)과 내란이 벌어지면서 [[방글라데시 독립 전쟁]]이 일어났다. 서파키스탄과 대립하고 있던 인도가 동파키스탄의 독립을 지지하였고, 또한 [[제3차 인도-파키스탄 전쟁]]이 인도의 승리로 끝나자, 방글라데시 독립 전쟁을 거쳐 1971년에 방글라데시의 독립이 확정되었다.
 
정치, 경제적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파키스탄 내에서 벵골의 [[셰이크 무지부르 라흐만|무지부르]]는 그들의 권리와 이익을 신장하기 위하여 [[아와미 연맹]](Awami League, 약칭 AL)을 만들었다. 그 후 무지브는 AL의 대표로서 벵골 자치운동을 벌였다. 1970년대 무지브는 파키스탄 정부에 의해 체포되고 AL당은 활동이 금지되었다. 1971년 [[3월 26일]] 파키스탄군의 유혈 진압에 맞서 벵골 애국주의자들은 독립된 방글라데시 공화국을 선포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