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주 불국사 삼층석탑: 두 판 사이의 차이

내용 삭제됨 내용 추가됨
1 개의 출처 구조, 0 개의 링크를 깨진 것으로 표시 #IABot (v2.0beta10)
수정
22번째 줄:
| 대체지도 =
| 설명 =
| 위도도 = 35 | 위도분 = 47 | 위도초 = 2324 | 남북 = sN
| 경도도 = 129 | 경도분 = 19 | 경도초 = 5556 | 동서 = E
 
| 경도도 = 129 | 경도분 = 19 | 경도초 = 55 | 동서 = E
| 웹사이트 =
| 문화재청 = 11,00210000,37
줄 42 ⟶ 41:
석가탑은 그림자가 비치지 않는 탑, 무영탑이라고도 불리는데, 이것은 석가탑을 지은 백제의 석공 아사달을 찾아 신라의 서울 서라벌에 온 아사녀가 남편을 만나지도 못한 채 연못에 몸을 던져야 했던 전설이 있다. 이 탑을 창건할 때 신라보담 건축기술에 있어서 앞선 백제의 아사달이라는 유명한 석공을 초빙해서 공사를 했다. 온 신라의 많은 석공들을 제치고 이 공사를 맡게 된 아사달은 돌을 다듬고 깎아 탑을 세우는 일에 몰두했다. 한편 아사달의 아내 아사녀는 남편이 그리워 신라 땅 경주 불국사까지 찾아오게 된다. 하지만, 부정한 여자의 몸으로 공새를 진행 중인 아사달을 만나면 그의 믿음을 흐트러뜨리게 될 것이라는 생각에 먼 발치에서 남편을 바라보려 했다. 아사녀는 작은 못을 들여다 보며 남편을 기다렸고, 결국 못에 몸을 던지고 말았다. 후에 이 못을 영지라고 불렀고, 석가탑은 무영탑이라 불렸다. <ref>{{웹 인용|url=http://www.culturecontent.com/content/contentView.do?search_div_id=CP_THE007&cp_code=cp0403&index_id=cp04030021&content_id=cp040300210001&search_left_menu=2|제목=불국사 3층석탑(석가탑) - 문화콘텐츠닷컴|언어=ko|확인날짜=2018-04-29}}</ref>
 
== 사리장엄구 발견경위 ==
{{본문|경주 불국사 삼층석탑 사리장엄구}}
[[1966년]] 가을, 도굴로 인해 석가탑이 일부 훼손되는 사건이 발생하였다. 도굴사건에 대한 대책의 일환으로 피해를 입은 석가탑을 해체보수하기로 결정하였으며, 1966년 10월 13일 해체 작업이 시작되었다.<ref name="현지">불교중앙박물관 안내문 인용</ref>