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라미스 해전: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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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전투의 견인차가 된 아테네에게도, 이 승리는 강력한 해상국가로 성장하는 중요한 사건이었다. [[헤로도토스]]에 따르면, 당시의 아테네에서 지도적인 위치에 있었으며, 이 전투의 승리에 크게 공헌한 테미스토클레스는 평정이 시작된 안드로스 섬을 포위하여 점령하고, 이곳을 근거지로 하여 페르시아 측에 선 다른 도서 지역의 폴리스에서도 금품을 뜯어냈다고 전한다.<ref>헤로도토스 《히스토리아》 p217</ref>
 
또한 [[플루타르크]]에 따르면, 그리스 함대가 월동을 위해 [[파가사이]]에 정박해 있었지만, 테미스토클레스는 이것을 불태우고 아테네 함대만을 남겨두었다고 한다.<ref>고노 요이치 역 "플루타르크 영웅전" p109.</ref> 테미스토클레스는 아테네 함대의 건조 창시자였으며, 또한 이 전투 후 외항이 되는 페이라이에우스(현재의 [[피레아스]])를 정비하고, 이것과 아테네 시가지를 성벽으로 연결하는 등의 업적을 남겼다. 그러나 그 독선적인 태도를 [[참주]]에 대한 욕망으로 간주하고, 경계한 아테네 시민에 의해 [[도편추방]]이 되었고, 게다가 반역죄로 기소당했기 때문에 적국인 페르시아로 피신했다. 테미스토클레스의 추방으로 고결한 인물로 알려진 아리스테이데스가 아테네의 지도자가 되었고, 페르시아 침략에 대한 대비책으로 폴리스의 연합체인 [[델로스 동맹]]을 성립시키게 되었다. 그는 함정을 제공할 수 없는 폴리스에 대해서는 대신 군비를 납부하도록 하였으며, 이후 그렇게 지급된 상납금은 아테네 독점하는 결과가 되어, 아테나이가 부상할 수 있는 자금원이 되었다. 또한, 이 살라미스 해전은 [[칼레 해전]], [[한산도 대첩]], [[트라팔가르 해전]]과 함께 세계 4대 해전의 하나로 손꼽히고 있다.
 
== 같이 보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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