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합천 이씨(陜川 李氏)의 시조 '''이개'''(李開)는 신라 알천양산촌(閼川楊山村)의 촌장 [[알평]](謁平)의 39세 후손이라고 한다.
 
《임술보(壬戌譜)》의 중시조사적(中始祖事蹟)에 따르면 [[류큐국|유구국]](琉球國)의 20만 대군이 [[신라]]에 침입했을 때, 단독으로 적장을 만나 담판을 지어 물리쳤다고 한다. 이 공으로 강양군(江陽君)에 봉해졌다고 하는데 강양은 합천(陜川)의 옛 이름이다. 그러나 신라 말에 유구국의유구국이 침입한 사실이 없으므로, 이는 후대에 날조된 것으로 보인다. 그는 고려가 건국되자 불사이군(不事二君)의 절의(節義)를 지켜 태조의 부름을 거역하여 가수현장(嘉樹縣長)으로 강등되었다가 뒤에 합천호장(陜川戶長)을 지냈다.
 
《문충공사적기(文忠公事蹟記)》에는 그가 문창후(文昌侯) [[최치원]](崔致遠)의 문인으로 유학(유학)의 진흥에 힘써 그 공으로 강양군에 봉해졌으며 박경엽(朴敬燁)의 난을 토평하고, 다시 문학(文學)을 진흥시켜 중국에 버금가게 하였다고 하였다.<ref>[https://terms.naver.com/entry.nhn?docId=291461 네이버 지식백과 - 합천 이씨]{{깨진 링크|url=https://terms.naver.com/entry.nhn?docId=291461 }}</ref>
 
이개가 합천호장을 지냈고 그곳에서 죽은 것을 연유로 후손들이 그를 시조로 하여 합천을 관향으로 삼아 계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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