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카테리나 1세: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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잔글 영어판 분류 정보를 이용.+분류:18세기 유럽의 군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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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위2 = 1712년 2월 9일-1725년 2월 8일
|대관식2 =
|전임자2 = [[에우독시아예브도키야 로푸키나로푸히나]]
|후임자2 = [[예카테리나 2세|조피 폰 안할트체르프슈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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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트르 1세의 두 번째 부인으로, [[쿠를란트-젬갈레 공국]]의 지배를 받고 있던 야콥슈타트(Jakobstadt, 현재의 [[라트비아]] [[예캅필스]]) 출신이다. 거기에다 그녀는 [[귀족]] 출신이 아닌 평범한 농민 출신이었다.
 
[[1698년]]에 당시 예카테리나와 사랑에 빠진 표트르 1세는 본부인인 황후 [[에우독시아예브도키야 로푸키나로푸히나]]가 성정이 너그럽지 못하다는 이유로 황후의 자리에서 폐위시키고 [[정교회]] 수녀원으로 강제 추방시켰다. 그리고 예카테리나는 [[1712년]]에 정식으로 황후로 책봉되었다. [[1725년]] [[표트르 1세]]가 [[폐렴]]으로 서거했으나, 표트르 1세의 아들인 [[황태자]] [[알렉세이 페트로비치 황태자]]가 [[1718년]]에 반란에 가담하여 황태자 직분을 박탈당한 뒤 [[고문]] 후유증으로 죽고, 그 아들인 [[표트르 2세]]도 아직 너무 어렸기 때문에 표트르 1세의 측근들과 황제 근위대가 황후인 예카테리나를 황제로 추대, 제위에 올랐다. 그러나 2년 간의 짧은 치세로 남편처럼 큰 업적을 이루지 못하고 [[1727년]] [[5월 17일]] 43세의 나이로 서거했다.
 
표트르 1세와의 사이에서 7명의 자식을 두었으나, 5명은 모두 유아기에 사망했다. 살아남은 자식들은 모두 딸들이었는데, 큰딸 [[안나 페트로브나|안나]]는 훗날의 [[표트르 3세]]를 낳았고, [[옐리자베타 페트로브나]]는 훗날 어머니를 따라 역시 여제가 된다(바로 따랐다는 건 아니고, 중간에 몇 명의 황제들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