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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사홍'''(任士洪, [[1445년]] ~ [[1506년]] [[음력 9월 2일]])은 [[조선]]시대 전기의 문신이자 외척, 사상가, [[성리학]]자이다. 본관은 [[풍천 임씨|풍천]]으로 그의 6대조 [[임자송]]은 고려 시대 [[친원파]]이다. 초명은 '''임사의'''(任士毅), 자(字)는 [[이의 임사홍]](而毅)이다. [[신수근]] 등과 함께 [[폐비 윤씨]] 사사 사건을 [[조선 연산군|연산군]]에게 알려 [[갑자사화]]의 빌미를 제공한다. [[음서 제도|음서]]로 출사한 뒤 [[사재감]]사정과 사직을 거쳐 [[1465년]](세조 11년) 알성문과에 급제하여 관직은 숭록대부 지중추부사(崇祿大夫 知中樞府事)에 이르렀다. 작위는 풍성군(豊城君)이다.
 
[[조선]] 왕실의 인척이자 겹사돈으로 [[효령대군]]의 손녀이며 [[보성군 (왕족)|보성군]]의 딸인 전주 이씨와 결혼하여 왕실의 인척이 되었으며, 그 아들 [[임광재]]는 예종의 딸 [[현숙공주]]와 혼인하고, 다른 아들 [[임숭재]]는 성종의 딸 [[휘숙옹주]]와 혼인하여 두 임금의 사돈이기도 했다. 다른 아들 [[임희재 (1472년)|임희재]]는 [[사림파]] 정치인이었다. 관료생활 초반 [[한명회]]를 규탄하는 등 소신으로 활동하다가 [[1478년]]의 흙비 문제를 놓고 금주와 근신을 주장하는 대간에 대해 대단하지 않은 변고에 술을 금지할 필요가 있느냐고 비판했다가 언관들과 갈등하다 12년간 유배상활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