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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지 않은 사람들이 ‘[[기독교]]’를 ‘개신교’의 의미로 생각하고 사용하나, ‘기독교(基督敎)’라는 표현은 '그리스도교'를 한자로 번역한 말이기 때문에 개신교만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고 [[로마 가톨릭교회]], [[동방 정교회]] 등과 함께 예수를 구세주로 믿는 모든 종교들을 일컫는 말이다. 또 개신교도를 16세기에 칭하던 용어인 '복음주의자', '복음주의'(Evangelicalism)를 개신교로 사용하기도 한다. 유럽지역에서 사용하는 '에반겔리세'(Evangelische)라는 용어는 개신교로 번역할 수 있다. 하지만 이런 16세기 전통 복음주의와 19세기에 영미의 보수적 개신교회가 중도 및 진보적 개신교회와 분리하기 위해서 자칭하는 용어에서 등장한 '신복음주의'([[복음주의]])<ref>19세기 보수적 교단이 자신들이 개신교 정통이며, 개신교회의 중도 및 진보적 성향의 교단둘은 개신교의 16세기 복음주의를 따르지 않는다는 의미를 내포하였다.</ref>와는 구분해서 생각해야 한다.
 
개신교를 뜻하는 Protestant라는'프로테스탄트'(Protestant, '저항자'의 의미)라는 용어가 처음 사용되기 시작한 곳이 독일의 슈파이어(Speye)이다. [[마르틴 루터]]에 의한 [[종교 개혁|종교개혁]](Reformation)이 1517년에 시작되었다. 1529년 증오심을 가진 가톨릭 실세들과 독일 제국의 일부 군주들이 슈파이어에 모여 제국 의회를 열고 교회의 분리를 주장하는 루터주의자들의 활동 일체를 지칭하는활동을 '''복음주의자'''에서 등장하여부르지 이를않고, 제국회의의 의회의 지침에 반대한다는 의미로 지칭하며 사용했고, 이 활동을 금지하는 행위로 포고문에서포고문에 사용했다기록했다. [[신성 로마 제국|신성로마제국]] 황제인 샤를르5세(카를로스5세) 치하에서였다. 슈파이어 의회(Diet of Speyer)의 명목상 목적은 터키의 수상한 움직임에 대처하는 방안을 강구키 위해 모인 회의였지만, 실제로는 루터의 종교개혁을 지지하거나 추종자를 압박하기 위한 것이었다.<ref>[http://www.sedaily.com/News/NewsView/NewsPrint?Nid=1KV3J1LZPJ ‘프로테스탄트’의 탄생]</ref>
 
복음주의자, 즉 프로테스탄트의 탄생은 [[종교개혁가]]들을 핍박하려고 했지만 그들이 칼 5세에게 가톨릭파들의 주장이 비성경적인 것이라고 항의하는 과정에서 비롯되었다. 김현배에 따르면 제국 의회는 더 이상 루터의 종교개혁을 받아들여서는 안 된다고 공포하면서, 명령을 어기는 자들에게는 황제의 처벌이 따를 것이라고 경고했다고 한다. 또한 루터를 이단으로 정죄한 1521년 5월 ‘보름스 칙령’을 강행하였다. 이렇게 해서 종교개혁이 더 이상 확산되지 못하도록 압박하였다. 이에 루터의 추종자들은 다수의 가톨릭파에 의해 결정된 제2차 슈파이어 제국의회 결의사항을 반대하였다. 루터 지지파 제후들 역시 침묵할 수 없었다. 그들은 종교개혁 진영 전체가 말살될 위기에 처하게 된다고 판단했으며, 성경에 근거하지 않은 권위에 복종할 수 없음을 선언하였다. 그들은 루터파에게 종교의 자유를 허용했던 1526년 의회 결정을 유지하라고 촉구했다. 그리고 그들은 1529년 4월 25일, 교회와 믿는 사람들을 위해서 칼 5세의 종교정책에 공식적으로 항의하는 문서를 의회에 제출했다. 이들은 일치단결해서 제2차 슈파이어 제국의회 결정에 대해 황제에게 강력히 ‘항의’했다. 황제와 로마 가톨릭 지도자들에게 항거했으나 이들의 항의는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이렇게 항의한 사람들은 “'''Protestant”(항의하는 자)'''라는 이름으로 불렸고, 이것이 현재 영어권과 대한민국의 '개신교'가 되었다. 당시 항의서에는 작센의 선제후 요하네스, 헤센의 영주 필립, 브란덴부르크-안스바하의 게오르크, 뤼네부르크의 에른스트, 안할트의 볼프강 등 5명의 군주들과 독일 14개 제국 도시들의 대표들이 서명했다. 루터의 개혁운동을 지지했던 '복음주의자'들이다. 14개 도시는 스트라스부르크, 뉘른베르크, 울름, 콘스탄츠, 린다우, 켐프텐, 뇌르들링엔, 하일브론, 이스니, 생 갈렌, 로이틀링엔, 바이센부르크, 빈추하임, 멤밍엔 등이다. <ref>[http://www.newspower.co.kr/sub_read.html?uid=31478&section=sc9 김현배 , 루터와 츠빙글리의 성만찬 논쟁]</ref>