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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생애 ==
[[한성부]] 출생이다. [[1909년]] [[일본]]에 유학하여 [[1913년]] [[일본 육군사관학교]]에 입학했다. [[1915년]] 일본 육사를 제27기로 졸업하고 [[1917년]]에는 보병 소위로 임관했다. 그는 [[1931년]] [[만주사변]]이 일어났을 때 중대장으로 화려한 전과를 기록했고, [[1937년]] [[중일 전쟁]] 때는 대대장으로 출전했다. 일본군에서 제대할 때까지 별은 달지 못했으며, 최종 계급은 일본군 대좌(대령)였으므로 중장이었던 [[홍사익]]에 이어 일본군에 복무한 조선인 중 최고위급 인물이다.
 
김석원은 일본군 장교로 근무한 정도를 지나 침략 전쟁에 일선 지휘관으로 적극 뛰어들어서 훈장을 받았고, 특히 [[만주]] 지역에서 독립군들과 직접 전투를 벌인 인물로 잘 알려져 있으나 그가 세운 대부분의 전공은 중국군을 상대로 한 것이다. 김석원은 2개 중대의 병력으로 1개 사단의 중국군을 쫓아버리는<ref>{{서적 인용
1949년 10월 한국군이 북한 상인과 북한산 북어를 밀무역하여 이익을 챙긴 이른바 '북어 사건'이 일어나자 이를 두고 국방부 참모총장이었던 채병덕 장군을 거론하였다가 강제 예편 당하였다. 이듬해 [[한국 전쟁]]이 일어나자 사단장으로 현역 복귀하여 [[조선인민군]]과 전투를 벌였다.
 
브루스 커밍스는커밍스 박사는 그가 김일성의 아내 김혜순의 죽음과 상관이 있다는 루머가 있다고 말했다.<ref>[http://www.hani.co.kr/arti/SERIES/231/396630.html 이승만·김일성 모두 ‘침공’ 추진…북, 중·소 설득해 선공], [[한겨레신문]]</ref> 그러나 이는 아무 근거없는 낭설에 불과하며, 저명한 학자의 명성에 걸맞지 않는 무책임하기 짝이 없는 주장이다. 일본 관동군 노조에 쇼도쿠(野副昌德) 소장이 이끈 노조에(野副) 토벌대 산하 나가시마(長島玉次郞) 공작대가 동북항일연군 토벌 작전 중 1940년 4월에 제2방면군장(第二方面軍長) 김일성의 처라는 김혜순(金惠順)을 체포하였다. 1940년 7월 5일자 조선일보가 체포된 김일성의 처 김혜순(金惠順)에 대해 보도했는데, 김혜순이 전향하여 항일연군 귀순을 위한 선무 공작 제1선에 나섰다고 하였다.<ref>[[:File:김일성 처 김혜순 체포 기사.jpg| 金日成의 愛妻가 귀순 선무공작 제1선에 - 소설같은 전향의 경위]] 조선일보 1940년 07월 05일 석간 2면</ref> [[이명영|이명영(李命英, 1928-2000)]]이 1970년 일본에서 나가시마 다마지로(長島玉次郞)를 직접 만나 당시 일에 대해 증언을 들은 바로는 김혜순은 나가시마의 집에서 같이 머물며 그 부인과도 친하게 지냈다고 한다.<ref>이명영(李命英, 1928-2000), 金日成列傳 - 그 傳說과 神話의 眞相糾明을 위한 硏究 (新文化社, 1974) pp.317~318]</ref><ref>[http://news.joins.com/article/1381671?ctg= 진위 김일성 열전(41) 동북 항일 연군 내의 2대 김일성|2대 김일성의 입만과 군사 활동] 중앙일보 1974년07월18일<br>
[http://news.joins.com/article/1381872 진위 김일성 열전 (42) 항일연군의 최후|이명영(성대교수 정치학)] [중앙일보] 1974.07.20 종합 3면<br>
[http://news.joins.com/article/1382085 진위 김일성 열전 (43)2대 김일성의 정체(상)|이명영 집필(성대교수 정치학)] [중앙일보] 1974.07.23 종합 3면<b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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