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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이틀=[[청 제국]]의 [[중국의 황제 목록#청|제5대 황제]]<br/>[[몽골]]의 [[카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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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옹정제'''(雍正帝, 강희(康熙) 17년 [[음력 10월 30일]] ([[1678년]] [[12월 13일]]) ~ 옹정(雍正) 13년 [[음력 8월 22일]] ([[1735년]] [[10월 8일]]))는 [[청 제국]]의 제5대 [[황제]](재위 1722년 ~ 1735년)이자, [[1644년]] [[명나라]]가 멸망한 직후 [[청 제국]]이 [[산해관]]을 넘은 뒤 [[자금성]]에서 [[청 제국]]의 군주가 천명을 상실한 [[명나라]]의 주씨를 대신하여 중국의 새로운 수명천자(受命天子)가 되었음을 선언한 이래 세번째 황제이다. [[성씨|성]]과 [[휘]]는 '''아이신 교로 인전'''(愛新覺羅胤{{lang|ja|禛}}, {{llang|mnc|{{MongolUnicode|ᠠᡳᠰᡳᠨ<br />ᡤᡳᠣᡵᠣ<br />ᡳᠨ ᠵᡝᠨ}}|Aisin Gioro In
아버지처럼 치밀하면서 거기에 성실하기까지 한 성격의 소유자로 이미 황자인 옹친왕 시절부터 두각을 나타내어 정치적 세력을 모으고 자신에게 반대하는 8황자 [[윤사|윤스]], 9황자 [[윤당|윤탕]], 10황자
그의 정책으로 국가는 더욱 안정이 되었고 내실 역시 튼튼해졌다. 또한 재정 개혁을 통하여 기강 단속과 재정 정비를 일거에 실행하는 정책을 추진함과 더불어 조세 제도 자체에도 개혁을 단행했다. 또한 [[군기처]]를 세우고 황권을 더욱 강화, 재상들의 정치 발언권을 규제하였고 재상들의 정치 참여를 규제한 대신 자신에겐 재상들이 본래 결재하던 문서의 양까지 합하여 어마어마하게 많은 양의 문서를 검토, 이에 일일이 답하였고 하급의 지방관이라도 자신에게 상소를 올리면 이 역시 받아주어 주필로 써서 보내주어서 명군의 모습을 보여주었다. 재상들과 대신들을 군기대신으로 삼고 같이 정사를 의논하였으나 이미 그들의 권세는 [[명나라]] 때의 대신들인 [[내각대학사]](內閣大學士)에 비하여 크게 축소되어 있었기에 신권은 크게 위축되었다. 강희제 때 일어난 [[문자의 옥]]을 다시 대대적으로 실시하여 청 제국의 정통성에 반대하는 학자들과 한족을 엄정히 다스렸으며 지방관들에 대한 철저한 감시로 부정부패를 크게 줄였다. 강희제가 죽은 직후 군사들을 동원하여 황제에 올랐기 때문에 친위 쿠데타를 일으켜 황위를 찬탈한 권력 지향적 독재자라는 평판도 있지만, 지칠 줄 모르고 늦은 밤까지 정치에 몰두한 훌륭한 군주라는 평가도 동시에 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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