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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치제'''(順治帝, [[1638년]] [[3월 15일]] ~ [[1661년]] [[2월 5일]])는 [[청 제국]]의 제3대 [[황제]](재위 [[1643년]] ~ [[1661년]])이자, [[1644년]] [[명나라]]가 멸망한 직후 [[청 제국]]이 [[산해관]]을 넘은 뒤 [[자금성]]에서 [[청 제국]]의 군주가 천명을 상실한 [[명나라]]의 주씨를 대신하여 중국의 새로운 수명천자(受命天子)가 되었음을 선언한 이래 첫번째 황제이다. [[휘]]는 '''아이신 교로 푸린'''({{llang|mnc|{{MongolUnicode|ᠠᡳᠰᡳᠨ<br>ᡤᡳᠣᡵᠣ<br />ᡶᡠᠯᡳᠨ}}|Aisin Gioro Fulin}}, {{한자|愛新覺羅福臨|애신교라복림}}), [[묘호]]는 '''세조'''(世祖, {{llang|mnc|{{ManchuSibeUnicode|lang=mnc|ᡧᡳᡯᡠ
}}|Šidzu}}), [[시호]]는 '''체천융운정통건극영예흠문현무대덕홍공지인순효장황제'''(體天隆運定統建極英睿欽文顯武大德弘功至仁純孝章皇帝), 짧은 시호로는 '''장황제'''(章皇帝, {{llang|mnc|{{MongolUnicode|ᡝᠯᡩᡝᠮᠪᡠᡥᡝ<br />ᡥᡡᠸᠠᠩᡩᡳ}}|Eldembuhe Hūwangdi}})이며, [[연호]]는 '''[[순치]]'''(順治, {{llang|mnc|{{MongolUnicode|ᡳᠵᡳᠰᡥᡡᠨ<br />ᡩᠠᠰᠠᠨ}}|Ijishūn Dasan}}, {{llang|mn|{{MongolUnicode|ᠨᠠᠢᠷᠠᠯᠲᠡᠶᠡᠷᠡᠷᠢ<br />ᠤᠺᠬᠠᠨᠨᠺᠵᠠᠰᠠᠭᠴᠢ}}|EyebeerЭеэр ZasagchЗасагч}}) 청 제국의 첫번째 황제인 [[숭덕제]]의 아홉 번째 아들로 어머니는 그의 후궁이었던 [[효장문황후]](孝莊文皇后)이다.
 
[[1643년]](숭덕 8년), 아버지인 [[숭덕제]]가 급사한 이후 [[의정왕대신회의]]에서 뜻하지 않게 어린 나이에 황위에 오른 후 숙부인 예친왕 [[도르곤]]과 종숙 [[지르가랑]]이 섭정으로서 국사를 도맡아 이듬해인 [[1644년]](순치 원년)에는 중원으로 들어가 멸망한 [[명나라]]의 뒤를 이어 새로운 통일 국가로서의 기틀을 마련하였다. 중국 대륙을 통치하기 시작하면서 강경책과 유화책을 골고루 사용, 한족의 문화와 생활 관습을 존중하고 중요한 상소문에도 [[만주어]]와 한문의 병용을 허락하였으나 한족 백성들에게는 [[변발]]을 강요하여 청 제국의 정통성을 다지기 위해 노력하였다. 또한 [[아담 샬 폰 벨]]과 같은 [[예수회]] 선교사를 골고루 등용하여 천문대와 화포 개발에도 힘을 기울였으며 이러한 서양 문화에 대한 호감은 뒷날 그의 아들인 [[강희제]]에게도 영향을 끼치게 되어 [[강건성세]](康乾盛世)의 발판이 되었다. 그리고 순치제는 [[운남성]] 등에 흩어져 있던 명나라의 잔존 세력인 [[남명]]을 궤멸시키기 위해 군사를 파견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