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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외세 민족주의를 내세운 [[모하마드 모사데크]](Mohammad Mossadeq)가 이끄는 국민전선이 약진을 보이자 1951년 팔레비 국왕은 등떼밀려 그를 총리에 임명한다. 모사데크 총리는 취임과 동시에 유전 국유화를 단행했다. 이란 유전을 꿰차고 있던 영국은 이란의 자금을 차단하기 시작했다. 더욱이 모사데크가 투데당과 협력할 움직임을 보이자, 미국의 [[아이젠하워]] 정부까지 나서 군부 쿠데타를 사주한다. 모사데크는 반역 혐의로 체포된 뒤 3년간 복역하고 고향에 가택연금됐으며 1967년 사망했다.
 
모사데크를 쫓아낸 팔레비는 친미, 친영 노선을 노골화하고 정보기관 겸 비밀경찰인 [[사바크]](SAVAK, 국가정보안보기구)를 동원해 반대파를 탄압했다. BP, 더치 셸 같은 서방 석유 회사들이 이란의 유전을 장악했다. 1955년에는 [[바그다드 조약]]이 성립된다. 바그다드 조약기구(중동조약기구 METO)는 터키·이라크·이란·파키스탄·영국으로 구성된 상호 방위 동맹으로, '가맹국의 안전을 위한 협력'을 목적으로 내세웠지만 실제로는 소련의 중동 진출을 막기 위해 결성된 것이었다. 회원국이 아닌 옵서버 자격으로 참가한 미국이 이 기구를 좌지우지했다. 1958년 이라크가 바트당 혁명 뒤 탈퇴하면서 이 기구는 해체되고, 소련에 맞선 군사조약기구인 [[중앙조약기구]](CENTO)가 만들어진다.
 
METO에 반강제적으로 가입한데 이어 팔레비 국왕은 1959년 미국과 방위조약을 체결, 미군 주둔을 허용한다. 1963년 팔레비는 6개항의 개혁조치를 국민투표에 부쳐 이른바 '백색혁명'을 시작했다. 주 내용은 토지 개혁, 근로자에 회사 이윤 분배, 삼림과 목초지 국유화, 국영 사업장 매각, 노동자, 농민에 유리하게 선거법 개정, 문맹 퇴치 지원 등이었으며 여성에게도 투표권을 부여했다. 특히 역점을 두어 추진하였던 토지 개혁은 아버지 레자 샤 시절 무산됐던 것으로, 팔레비 국왕이 솔선해서 왕실 토지를 농민들에게 분배하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