측천무후: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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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측천무후'''(則天武后, [[624년]] [[2월 17일]] ~ [[705년]] [[12월 16일]])는 [[당나라]] [[당 고종|고종]] 이치의 황후이자 [[무주 (당나라)|무주]](武周)의 황제(당나라 제 6대 황제)이다. 중국에서는 그를 '''무측천'''({{llang|zh|武則天|우저톈}})이라 부르기도 한다. 공포정치를 했다는 비난과, 민생을 보살펴 나라를 훌륭히 다스린 황제라는 칭송을 같이 받고 있다. 그가 통치했던 15년을 '무주의 치' 라 부른다. 그는 중국을 통치한 200여 명의 황제들 중 유일한 여성 통치자였다. 그런 만큼 당나라 멸망 이후 문치주의와 유교 시스템을 중심으로 성리학적 정치체제가 마련되었던 송나라와 이후 명나라의 유학자들에 의해 부정적인 평가를 많이 받았다. 또한 여성의 중앙정치 진출이 극도로 제한되었던 고대에 그가 어떻게 황제가 되려 했는가에 대한 비판과 그의 욕심, 야욕, 욕망에 대한 것이 명나라까지의 주된 평가였다면 청말 개항 이후 신해혁명을 거치며 평가는 조금씩 달라졌다.
 
이름은 '''무조'''(武照)이고, 아명(兒名)은 '''무미랑'''(武媚娘)이며, 황제로 즉위하자 자신의 이름을 조(曌)로 개명하였다. [[무사확]](武士彠)의 차녀이다. 624년에 태어나 705년 죽음을 맞이할 때까지 그의 통치는 당 태종에서 당 현종 시기로 이어지는 당나라 정치, 사회, 경제, 문화를 발전 및 계승해 현종 시기의 당나라가 태종 이후 또 다시 전성기를 맞는 디딤돌 역할을 했다. 태어난 날짜는 정확하지 않고, [[630년]]에 태어났다고 하는 설도 있다. 정식 시호는 천책월고금륜성신대황제(天冊越古金輪聖神大皇帝)이다.
 
== 생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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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가 왜 황제가 되려고 했는지 정확히 알려진 바 없으며, 여전히 의문으로 남아있다.
 
== 존호, 시호, 묘호, 능호 ==
=== 드라마에서의 측천무후 ===
황제 신분으로 올린 존호는 자씨월고금륜성신황제(慈氏越古金輪聖神皇帝)이며, 후에 개칭하여 천책금륜성신황제(天冊金輪聖神皇帝)로 존호를 고쳤으며, 태상황 신분으로 받은 존호는 측천대성황제(則天大聖皇帝)이다.
 
사후에 당나라 황후로 신분이 복원되어 시호를 측천대성황후(則天大聖皇后)로 올렸으며, 후에 천후(天后), 대성천후(大聖天后), 천후성제(天后聖帝) 등으로 개칭 하였고, 최종적으로 올린 정식 시호는 측천순성황후(則天順聖皇后)이다.
2006년부터 2007년에 SBS에서 방영된 드라마 '연개소문'에서 강렬한 인상을 남기며 등장한 측천무후는 당 태종 죽음 이후 당 고종의 아내 왕 황후가 남편 고종과 소숙비 사이를 멀어지게 하기 위해 비구니가 되었던 그를 불러들이면서 그의 이야기가 시작되었다. 당 태종의 최측근이자 당 고종의 사부였던 장손무기를 내치고 665년부터몸이 불편한 당 고종을 대신해 고구려 원정 계획을 수립한다. 그러나 빈번이 고구려원정이 실패하자 측천무후는 때를 기다려보자고 했고, 마침내 연개소문의 맏아들 연남생이 당나라에 투항하고, 그의 지지세력들이 당나라에 투항하면서 고구려의 정치변화에 조짐을 감지한 그가 대대적인 공세를 명령, 이적을 중심으로 한 당나라의 대규모 군대가 고구려 평양성으로 진격하기에 이른다. 2006년부터 2007년에 KBS에서 방영한 드라마 '대조영'에서는 대조영과 대척점에서 고구려 유민들의 부흥운동을 막고, 동시에 중국의 통치자가 되려는 무서운 여인으로 등장한다. 그가 황후가 되기 위해 많은 사람들을 죽였고, 황제가 되기 위해 자신의 아들까지 죽였던 내용이 나오지 않으며, 고구려 부흥운동을 막기 위해 설인귀를 끌어들이고, 이적을 자신의 편으로 포섭 하려는 등 고도의 정치술을 가진 여인으로 그려진다. 690년 스스로 성신황제라 칭하며 황제로 즉위하고, 698년 대조영이 발해를 건국하자 외교관계를 수립하기 위해 그는 당나라 중심의 외교질서에 발해를 흡수하려고 했으며, 대조영은 스스로가 고구려의 후손이며 천손의 나라라며 이에 따를 것을 거부했다. 결국 측천무후는 대조영과 긴장관계를 유지하게 된다. 2014년부터 2015년까지 중국 CCTV에서 방영한 드라마 '무미랑전기'는 측천무후의 일대기를 다룬 작품으로 그가 궁녀생활부터 황제에서 물러나고 스스로 태상황이 될때까지의 과정을 그리고 있다. 드라마는 측천무후가 어떻게 황제가 되었는지에 대한 과정을 측천무후 주변인물들로부터 괴롭힘을 받으며 스스로 극복해 정치적으로 성장하고 자신들의 지지세력을 끌어모으는지에 대한 그의 용인술이 돋보인다. 특히, 황후가 되기 위해 자신의 딸을 죽인 부분은 왕 황후가 스스로 딸을 죽인 것이며, 소숙비와 결탁한 것으로 그려지고 있고, 아들의 죽음은 측천무후의 조카가 죽인 것으로 그려진다. 점차 실권을 장악한 측천무후는 황태후가 되어 아들을 섭정했으나, 아들의 무능함을 이해하고, 자신이 직접 황제가 된다. 드라마 상에서 그의 즉위에 반대한 장간지를 설득시키는 과정에서 '여자도 황제가 될 수 있지 않소?' 라며 자신의 능력을 과시했고, 마침내 장간지의 승인을 얻어 중국 유일의 여성 통치자가 된다.
 
능호는 고종과 합장 된 건릉(乾陵)이다.
 
== 평가 ==
'''=== 긍정 평가''' ===
 
'''=== 부정 평가''' ===
 
=== 드라마에서의 측천무후 ===
 
2006년부터 2007년에 SBS에서 방영된 드라마 '연개소문'에서 강렬한 인상을 남기며 등장한 측천무후는 당 태종 죽음 이후 당 고종의 아내 왕 황후가 남편 고종과 소숙비 사이를 멀어지게 하기 위해 비구니가 되었던 그를 불러들이면서 그의 이야기가 시작되었다. 당 태종의 최측근이자 당 고종의 사부였던 장손무기를 내치고 665년부터몸이 불편한 당 고종을 대신해 고구려 원정 계획을 수립한다. 그러나 빈번이 고구려원정이 실패하자 측천무후는 때를 기다려보자고 했고, 마침내 연개소문의 맏아들 연남생이 당나라에 투항하고, 그의 지지세력들이 당나라에 투항하면서 고구려의 정치변화에 조짐을 감지한 그가 대대적인 공세를 명령, 이적을 중심으로 한 당나라의 대규모 군대가 고구려 평양성으로 진격하기에 이른다. 2006년부터 2007년에 KBS에서 방영한 드라마 '대조영'에서는 대조영과 대척점에서 고구려 유민들의 부흥운동을 막고, 동시에 중국의 통치자가 되려는 무서운 여인으로 등장한다. 그가 황후가 되기 위해 많은 사람들을 죽였고, 황제가 되기 위해 자신의 아들까지 죽였던 내용이 나오지 않으며, 고구려 부흥운동을 막기 위해 설인귀를 끌어들이고, 이적을 자신의 편으로 포섭 하려는 등 고도의 정치술을 가진 여인으로 그려진다. 690년 스스로 성신황제라 칭하며 황제로 즉위하고, 698년 대조영이 발해를 건국하자 외교관계를 수립하기 위해 그는 당나라 중심의 외교질서에 발해를 흡수하려고 했으며, 대조영은 스스로가 고구려의 후손이며 천손의 나라라며 이에 따를 것을 거부했다. 결국 측천무후는 대조영과 긴장관계를 유지하게 된다. 2014년부터 2015년까지 중국 CCTV에서 방영한 드라마 '무미랑전기'는 측천무후의 일대기를 다룬 작품으로 그가 궁녀생활부터 황제에서 물러나고 스스로 태상황이 될때까지의 과정을 그리고 있다. 드라마는 측천무후가 어떻게 황제가 되었는지에 대한 과정을 측천무후 주변인물들로부터 괴롭힘을 받으며 스스로 극복해 정치적으로 성장하고 자신들의 지지세력을 끌어모으는지에 대한 그의 용인술이 돋보인다. 특히, 황후가 되기 위해 자신의 딸을 죽인 부분은 왕 황후가 스스로 딸을 죽인 것이며, 소숙비와 결탁한 것으로 그려지고 있고, 아들의 죽음은 측천무후의 조카가 죽인 것으로 그려진다. 점차 실권을 장악한 측천무후는 황태후가 되어 아들을 섭정했으나, 아들의 무능함을 이해하고, 자신이 직접 황제가 된다. 드라마 상에서 그의 즉위에 반대한 장간지를 설득시키는 과정에서 '여자도 황제가 될 수 있지 않소?' 라며 자신의 능력을 과시했고, 마침내 장간지의 승인을 얻어 중국 유일의 여성 통치자가 된다.
 
== 가족 관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