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유대주의: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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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유럽에서의 기독교 강제개종 ====
유대인에 대한 핍박과 추방은 스페인, 포르투갈, 프랑스 등 기독교 국가를 중심으로 끊이지 않았다.
[[스페인]]은 유대인들에게 [[기독교]]로의 강제 개종 칙령을 내려 탄압하고 영구적으로 추방했고, 14세기 중엽부터 16세기까지 대부분의 독일 도시에서 유대인들은 공식적으로 추방을 당했다. 이러한 추방 외에도 기독교를 국가 종교로 표방한 서유럽의 유대인에 대한 대표적 박해 양상은 의식 살인혐의와 성찬 모독 비난, 탈무드 소각, 종교적 논쟁의 네가지 형태로 일어났다.
이러한 박해의 양상으로 인하여 자연히 기독교에 대한 유대인들의 적대감은 깊어만 갔다.
 
==== 동유럽으로의 이주 ====
스페인의 유대인 박해는 전유럽에 유대인에 대한 부정적인 영향을 미쳤으며, 서유럽에서조차 유대인들은 발붙일 곳을 얻지못했지만, 폴란드를 중심한 동유럽은 비교적 유대인들에게 관대하여 유대인들을 위한 새로운 보금자리 구실을 하였다.
18세기 중엽 전세계의 유대인 인구는 약 300만 가량이었고 이들중이들 중 대부분은 동유럽에 편중되어 살게 되었다.
폴란드에는 주후 18세기 말 약 150만명이나150만 명이나 되는 유대인들이 살았는데 폴란드가 붕괴되면서 이들은 러시아와 프러시아프로이센 그리고 오스트리아로 편입되었다.<ref>김요한 《기독교적 반유대주의 연구와 반성》 (총신대학교 신학대학원)</ref>
 
== 십자군 원정과 유대인 ==
 
유대인들에 대한 통속적인 종교적 증오심을 교회가 공식적으로 주입하게 된 계기는 십자군 원정이었다.
1096년에 가톨릭 교회는 십자군 전쟁을 시작했다. 교황 우르반 2세는 모슬렘무슬림 침략자들로부터 성지를 회복하기 위해 그리스도의 군사들을 모집했다. 그러나 그들이 성지로 가는 도중에 만나는 유대인들을 모슬렘인처럼무슬림처럼 취급하였다. 그러나, 십자군의 유대인 학살에 대하여 유대 공동체는 금욕적이고 냉정한 태도를 보였다. 유대인들은 십자군이 칼을 대고 제시했던 세례를 거부하면서 세례 받기보다는 율법대로 죽음을 감수하거나 아니면 집단 자살을 택했다. 십자군들의 유대인들에 대한 만행은 그들이 회복하고자 했던 성지 예루살렘에서 자행되었다. 십자군들이 예루살렘에 도착했을 때, 그들의 칼은 모슬렘들은무슬림들은 물론 유대인들을 죽인 피로 물들었다. 그들은 “그리스도여, 우리는 당신을 찬양합니다!” 라는 노래를 부르면서 회당에 불을 질러 안에있던안에 있던 유대인들이 산 채로 불에 타 죽게 하였다.
<ref>김요한 《기독교적 반유대주의 연구와 반성》 (총신대학교 신학대학원)</ref>