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제17대 대통령 선거: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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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선거후_정당 = 한나라당
}}
'''대한민국 제17대 대통령 선거'''는 [[대한민국]]의 제17대 [[대통령]]을 선출하기 위한 선거로 [[2007년]] [[12월 19일]] 수요일에 실시되어 오전 6시부터 오후 6시까지 총 12시간 동안 투표가 진행되었다. 3765만 3518명의 유권자 중 2373만 2854명이 투표에 참여했다. 투표율은 63.0%로 역대 최저 투표율을 기록하였다. 투표 결과 한나라당 소속의 [[이명박]] 후보가 당선되었다.
 
== 선거 정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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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대한민국 제17대 대통령 선거 대통합민주신당 후보 경선}}
 
집권여당이던 [[열린우리당]]은 낮은저조한 지지율 때문에 [[중도개혁통합신당]], [[중도통합민주당]] 등의 이합집산을 거쳐 [[대통합민주신당]]으로 재집합하게 된다.
[[8월 22일]] 후보 등록 결과, [[정동영]] 전 열린우리당 의장, [[손학규]] 전 경기지사, [[이해찬]] 전 총리, [[한명숙]] 전 총리, [[유시민]] 전 [[보건복지부]] 장관, [[천정배]] 전 [[법무부]] 장관, [[신기남]] 전 열린우리당 의장, [[추미애]] 전 [[새천년민주당]] 최고위원, [[김두관]] 전 [[행정자치부]] 장관 등이 후보로 등록하였고, [[9월 5일]] 여론조사 결과에 따른 예비경선으로 정동영, 손학규, 이해찬, 한명숙, 유시민 후보가 경선 후보로 결정되었다. 이 과정에서 투표율 오류가 발생하여 논란이 되었다.<ref name="newsKTnHC4">{{뉴스 인용
|url = http://m.edaily.co.kr/html/news/news.html#!politics-view-01105366583257496-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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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대한민국 제17대 대통령 선거 한나라당 후보 경선}}
 
[[한나라당]]의 [[이명박]] 전 [[서울시장]]은 재임 시절 이룬 버스체계 개편과, [[청계천]] 복원을복원 통해사업 등으로 인기를중도층의 호감을 얻고 있었다. 그러나 당내에서는 오히려 2년간 대표를 지내며 [[대한민국확고한 제17대당내 총선]]에서 위기에 빠진 당을 구해내고 [[대한민국 제6회 지방 선거]]를기반을 압승으로구축하고 이끈있던 [[박근혜]] 전 대표가 세를 과시하고 있었다. 이에 당에서는 둘의 화합을 중재하려 했으나, 양쪽 다 만족하는 경선 룰은 생각보다 쉽게 정할 수 없었다. 이명박 후보 측은 당의 결정에 따른다는 입장이었는데, 이 경우 자신에게 유리하게 국민 참여폭을 늘릴 수 있기 때문이었다. 반면 박근혜 후보 측은 ‘원칙’을 내세우며 룰 변경을 거부했다.
 
[[3월 18일]] 결정된 경선룰에 따르면 선거인단이 4만 명에서 20만명으로 (일반선거인단은 1만 2천 명에서 6만 명으로) 늘었고, 전당대회는 6월에서 8월로 연기되었다. [[손학규]] 전 경기지사는 경선룰에 반발해 곧바로얼마 안가 탈당한 뒤, 후에 창당되는 [[대통합민주신당]]에 참여하였다.
 
[[6월 13일]] 후보 등록이 완료되었다. [[이명박]] 전 서울시장, [[박근혜]] 전 대표, [[홍준표]] 전 클린정치위원장, [[원희룡]] 전 최고위원, [[고진화]] 의원 등이 후보로 등록하였다. 그 중 고진화 후보는 [[7월 20일]] 사퇴한다.
 
여권에는여권에선 지지율이고건 전 총리가 대선 불출마를 선언하며 마땅히 지지율 높은 대선 후보도 없었고, 범여권 정당의 지지율은지지율도 지리멸렬한떨어지며 반면최고점일땐 한나라당의한나라당 지지율은지지율이 50%에 육박할 상회했기정도였기 때문에 한나라당 경선은 곧 본선으로 여겨졌고, 달아오른 경선 과정에서 이명박 후보 측에는 [[BBK]] 문제가문제, 박근혜 후보 측에는 [[정수장학회]] 문제가문제 등이 붉어져나왔다.<ref name="newsKTnHC6">{{뉴스 인용
|url =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0&oid=005&aid=0000279937
|제목 = 李→ 朴 정수장학회 문제 거론, 朴→ 李 재산형성 과정 이슈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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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 = 국민일보
|저자 = 김영석 기자
}}</ref> 사실 이때 훗날 대통령 탄핵 사태까지 이어지는 [[최순실]] 일가 문제도 거론되었으나, 이땐 다른 문제들이 더 부각되며 묻힌 바 있다.
}}</ref>
 
그리고 이 과정에서 좀 더 유리한 고지를 점하고 있다고 평가받던 이명박 후보측의 문제가 더 부각되어, 친인척 관여 부동산 투기 의혹, 부인의 15차례 위장전입 의혹, BBK 관련 주가조자 의혹, X파일 존재론, 산악회 선거법 위반 논란, 도곡동 땅 문제 등이 붉어지며 이명박 후보의 지지율을 조금씩 끌어내렸다. 이 상황에서 타 후보들은 [[1985년]] 이명박 후보의 처남과 형 [[이상은]] 씨가 도곡동 일대의 땅을 잔뜩 매입한 후 지하철 개통으로 차익을 엄청 남기고 [[1995년]] 포스코에 되판 사건을 문제 삼았다.
 
전당대회를 6일 전인 [[8월 14일]] 검찰은 형 이상은 씨의 몫 일부가 이명박 후보의 차명계좌라는 중간수사발표가 하면서 이명박 사퇴론이 거세졌다. 그러나 다음날 대검찰청 [[정동기]] 차장이 곧바로 “도곡동 땅은 이명박 후보 소유라는 증거가 없다.”라는 말을 던지며 가까스로 수습한다.<ref name="newsKTnHC5">{{뉴스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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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요 사건 ==
* [[11월 7일]] 前 한나라당 총재인 [[이회창]] 후보가 [[한나라당]]을 탈당하고 대선 출마를 선언하였다. 이로써 50%가사실상 넘는 지지율로 사실상당선을 선거를낙관하고 주도하던있던 [[이명박]] 후보의후보측도 지지율에 타격을 받으며 대선은 새로운 국면으로 진입하였다.<ref>[http://www.ytn.co.kr/_ln/0101_200711071413102251 이회창, '대선 출마' 기자회견], YTN, 2007년 11월 7일</ref>
* [[11월 16일]] BBK 논란의 핵심인물 [[김경준]]이 귀국하였다.
* [[12월 3일]] [[국민중심당]] [[심대평]] 후보는 무소속 [[이회창]] 후보로의 보수 대통합 단일화에 합의했다.<ref name="shim">{{뉴스 인용
|url = http://www.yonhapnews.co.kr/politics/2007/12/03/0501000000AKR20071203093300001.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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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2월 16일]]에는 제17대 대통령 선거 후보자토론회가 4차로 정동영, 이명박, 권영길, 이인제, 문국현, 이회창(기호순) 후보가 참석하여 경제, 사회에 대한 주제로 열렸다.
* [[12월 18일]] [[참주인연합]] [[정근모]] 후보는 도산공원에서 [[이회창]] 후보와 회동을 갖고 이 후보 지지선언과 함께 정책연대를 선언했다. 이 경우는 단일화를 한 것이지만 법적으로 사퇴시한을 넘겼기 때문에 후보 자격은 유지되었다.
* 대선 기간 중 [[이명박]] 후보의 집에 괴한이 권총을 들고 찾아와 [[이명박 권총 협박 사건|협박을 했다]]. 괴한은 경호원들에 의해 붙잡혔으나, 이명박은 이 괴한을 경찰에 신고도 하지신고하지 않고 돌려보냈다.
 
== 여론 조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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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대통합민주신당 정동영 후보는 호남지역에서호남 승리했지만지역에서 반면승리했지만, 한나라당 이명박 후보는 호남지역을호남 제외지역을 제외한 수도권, 충청, 영남, 강원,제주지역에서 제주 지역에서 승리했다. 정동영 후보는 비호남권에선 보은군에서만 간발의 차로 1위를 차지했다. 하지만 보은군에서도 이회창 후보의 표차를 합치면 보수 후보들이 앞섰다. 특히 수도권에서 야권개혁 성향이 강하던 서울에서도서울특별시에서도 보수 후보들이 전 지역에서 압승했다. 또한, 인천과 경기의 전 지역을 휩쓸었는데 인천에서는 구도심과 연수구 등에서 모두 승리했고, 경기도에서는 구도심과 대도시권, 남서부 권역에서도 모두 승리했다. 보수진영은보수 진영은 호남 호남지역를지역를 제외한 모든 지역에서 승리했다. 또한 대전에서도 구도심과 신도심에서 보수진영이 모두 승리, 충남에서도 전 지역에서 보수진영이보수 진영이 승리했다. 특히무소속 대구,이회창 경북과후보는 부산대전, 경남 지역의 경우 보수진영 후보들의 총합이 70%를 넘었고충남, 90%가영남 넘는지역에서 지역도2위를 있었다.하여 반면나름 무소속선전은 이회창했지만 후보는결국 대전,충남,영남지역에서최종 2위를순위는 하여3위로 선전했다낙선했다.
 
== 기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