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 메뉴 열기

바뀜

13 바이트 추가됨 ,  6개월 전
잔글
편집 요약 없음
|서명=
}}
 
'''김정은'''(金正恩<ref>[http://news.naver.com/main/hotissue/read.nhn?mid=hot&sid1=100&gid=438117&cid=565935&iid=259968&oid=020&aid=0002171110&ptype=011 北 막오른 김정은 시대 조선중앙통신 보도, 金正銀(X) 金正恩(O)]</ref>, [[1984년]] [[1월 8일]]<ref name="birth"/> ~ )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최고 지도자이다. 2000년대 후반부터 [[김정일]]이 후계자로 내세우는 등 차츰 영향력이 커지고 이름이 알려지기 시작했으며, 2009년부터 [[국가안전보위부|국가안전보위부장]], 당 중앙군사위 부위원장 등으로 정치에 참여했다. 2011년 김정일의 사망 이후 3대 세습으로 사실상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최고 지도자가 되었다.
 
 
=== 학창 시절 ===
김정은의 어린 시절은 알려지지 않았으나, [[프랑스]]를 거쳐 16세 때 [[스위스]]로 유학하여 김나지움(Gymnasium, 인문계 중·고등학교) 과정을 마쳤다 한다. [[스위스]] 베른의 공립 중학교에 유학<ref>[http://www.hani.co.kr/arti/politics/defense/360279.html 일 마이니치가 전한 김정운 스위스 유학생활 : 국방·북한 : 정치 : 뉴스 : 한겨레<!-- 봇이 따온 제목 -->]</ref><ref name="박운1">[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0906141817095&code=910303 “김정운, ‘박운’이란 가명으로 스위스 유학”] 경향신문 2009년 6월 14일자</ref>, 유학 당시에는 '박운(박은)'이라는 가명으로 활동했다. 학교 기록 등에 따르면 베른 공립 중학교 인근의 한 초등학교에서 독일어 보충학습을 받은 뒤 1998년 8월에 7학년(한국의 중학교 1학년 해당)으로 편입되었다. 그는 9학년이던 2000년말2000년 말 학교를 그만뒀다. 당시 담임이었던 시모네 쿤은 마이니치(每日; 매일)신문에 “그가 점심시간에 교무실로 와서 ‘내일 귀국한다’고 말한 뒤, 다음날부터 나오지 않았다”고 했다.<ref name="박운1"/>
 
2000년대 [[대한민국]]에서는 그의 이름이 '''김정운'''으로 알려졌었다. 그러나 2009년 북조선의 최고인민회의와 로동신문 보도를 통해 김정운이 아닌 김정은으로 확인하였다.
 
=== 군 활동 ===
귀국 뒤, 2000년대 중반부터 활동적이고 적극적인 성격이 아버지 [[김정일]] 및, 조선노동당과 주변의 주목을 받기 시작<ref>유순한 성격의 김정철 및 김정남의 방탕함과 대조적.</ref>했으며, 2004년에는 아버지인 김정일의 권유로 [[조선 인민군]]에서 하전사로 입대하였으며 하전사로서 1년 6개월동안6개월 동안 군복무를 한 이후 하전사에서 곧바로 중장으로 진급<ref>[http://sunday.joins.com/article/view.asp?aid=27521 김정은, 21세 입대…1년 반 병사 복무 뒤 중장 계급]</ref>했다.
 
한편 [[김정일]]은 2009년 3~4월경 김정은을 [[국가안전보위부|국가안전보위부장]]에 임명해 자신을 대신해서 엘리트들을 감시하게 하고, 김정일 사후에도 김정은이 엘리트들을 확고하게 장악할 수 있도록 했다.<ref name="risa">[http://www.sisapress.com/journal/articlePrint/133865 김정은 권력 군부 핵심 4인방이 떠받친다] 시사press 2012.01.09.</ref> 그 과정에서 군사 조직인 국가안전보위부의 우동측 부부장이 김정은의 보위부를 통한 엘리트 장악에 핵심적인 역할을 수행했다.<ref name="risa"/>
 
== 정치 활동 ==
2000년대 중후반부터 당에서 주목받기주목 받기 시작했으며, 이로서이로써 실질적인 무력정치활동이무력 정치 활동이 시작되었다.
 
=== 연평도 포격 ===
{{참고|연평도 포격}}
2010년 11월 23일, [[대한민국]] 연평도가 포격을 당했다. 이 포격은 [[북조선]]의 철저한 계획 아래 실시되었다. 일본 《[[아사히 신문]]》은 12월 1일 북측 내 소식통을 인용해 “김정은의 이름으로 지난달 초 ‘적의 도발 행위에 언제라도 반격할 수 있는 태세를 갖추라’는 지령이 북한군 간부들에게 하달됐다”고하달 됐다”고 보도하였다.<ref>[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0&oid=143&aid=0002022225&011637 김정은 북한군에 "공격태세 갖춰라" 지령] 쿠키뉴스 2010년 12월 1일</ref> 이것이 김정은 후계 구도를 더욱 확립하기 위한 것이라는 분석이 제기되었는데, 특히, 김정은은 북측에서 포병 전문가로 미화되고 있다는 점에서 그의 업적을 극대화하기 위한 것이라는 주장이 있다.<ref>[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0&oid=214&aid=0000161472 포병장군' 김정은‥연평도 포격, 업적 만들기용?] mbc 2010년 11월 25일</ref>
 
한편, 대한민국의 시민단체 모임인 반인도범죄조사위원회는 이번 연평도 포격이 "계획적인 한국 영토 조준 공격, 민간인 거주 지역 공격, 대량 살상용 방사 포탄 사용 등의 공격 유형으로 보아 연평도 포격 도발은 유엔헌장 제2조 4항, 로마규약 제8조에 저촉되는 전쟁 범죄"라고 강조하며, 북한의 김정일과 그의 후계자 김정은을 '전쟁범죄' 등의 혐의로 국제형사재판소(ICC)에 고발하였다.<ref>[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2&oid=001&aid=0004793386 反인도위 "김정일 부자 국제형사재판소 고발"], 연합뉴스, 2010-11-29 13:56</ref>
 
이와 관련해서, 북한측은 도발에 대한 책임을 남측에 떠넘기며, 정당한 군사적 대응이라고 주장하고 있으며 2010년 12월 28일 김정은은 연평도 포격당시 전사한 조선인민군 5명에 공화국영웅 칭호를 수여한 것으로 알려졌다.<ref>[http://www.mt.co.kr/view/mtview.php?type=1&no=2010122809255041001&outlink=1 연평도포격연평도 포격 北5명 사망, 김정은 영웅칭호 수여] 2010-12-28 머니투데이</ref>
 
=== 김정일의 후계자로 ===
그러나 머지 않아 김정일이 자신의 후계자로 김정은을 지명한 것을 중국에 알리는 등<ref>[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2D&mid=sec&sid1=100&sid2=268&oid=001&aid=0002695143 "北, 김정일 3남 후계자 지명 중국에 알려"]</ref> 후계자 지명이 구체화 됨에 따라 후계자 지명은 기정 사실화 되었으며, 김정일 유고시 김정은의 군부 장악 가능성에 대한 예측 보도가 뒤를 잇기 시작했다.<ref>[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2D&mid=sec&sid1=100&sid2=268&oid=025&aid=0002015128 김정운, 군 장악 못한 듯 … 김정일 유고 땐 권력투쟁 가능성]</ref> 그 후 2010년 9월 27일 조선인민군 대장 임명<ref>{{웹 인용 |url=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0/09/28/2010092800173.html |제목=北, 김정은에 `대장 칭호'‥후계 공식화 |확인날짜=2012-04-14 |보존url=https://web.archive.org/web/20101209002739/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0/09/28/2010092800173.html |보존날짜=2010-12-09 |깨진링크=예 }}</ref>, 28일 3차 노동당대표회의에서 당중앙군사위 부위원장 및 당중앙위원 임명 절차를 거치며 김정은은 북조선의 국가통수권 후계자로 공식 확정되었다.<ref>[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0/09/29/2010092900316.html 김정은, 당 중앙군사위 부위원장으로 선임]</ref> 그동안 유년기, 청소년기의 사진으로만 알려져왔던 김정은의 얼굴은 후계자로 확정된 9월 28일 노동당대표회의 기념사진을 통해 언론에 공개된다.<ref>[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0/10/01/2010100100098.html <nowiki>[</nowiki>모습 드러낸 김정은<nowiki>]</nowiki> 北 새 지도부 단체사진에 담긴 '권력 지도']</ref> 10월 6일엔 김정은이 후계자로 지명된 것을 경축하는 행사를 벌인다.<ref>[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0/10/06/2010100601789.html "北, 김정은 후계 경축행사 진행.. 주민 총동원"]</ref>
 
김정은의 3대 세습체제 구축은 북조선 내외에 불만을 가중시켰다가중 시켰다. 북한 내부에선 3대 세습에 대한 반발 조짐이 일면서 김씨 부자를 비방하는 전단이 돌거나 폭약이 밀반입 되는 사건이 발생<ref>[http://www.newshankuk.com/news/news_view.asp?articleno=d20101019132713n2256 北 주민, 김정은 후계세습에 반발 확산…폭약 밀반입도]</ref> 했으며, 일본의 친북단체인 [[재일본조선인총연합회]] 내부 조직원들도 세습에 대해 반발을 보인다.<ref>[http://news.kukinews.com/article/view.asp?page=1&gCode=kmi&arcid=0004498020&cp=nv 日 산케이 “조총련, 北 김정은 세습 후 동요”]</ref>
 
== 최고지도자 ==
 
=== 권력계승 ===
2011년 12월 17일 그의 아버지인 김정일이 사망하자 김정은은 일단후계자로서의 업무를 맡게 되었고, 12월 30일에는 [[조선인민군]] 최고사령관으로 추대되었다추대 되었다.<ref>[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2D&mid=sec&sid1=100&sid2=268&oid=001&aid=0002695143 "北, 김정은 최고사령관 추대"]</ref>2016년 5월 북한 노동당 7차 조선 당대회에서 노동당 위원장으로 추대되었다추대 되었다. 당 위원장으로 추대하는 결정서 '경애하는 김정은 동지를 우리 당의 최고 수위에 높이 추대할 데 대하여' 가 7차 조선 노동당 당대회에서 채택되었다고 조선중앙통신이 2016년 5월 10일 보도하였다.<ref>{{뉴스 인용|url=http://www.yonhapnews.co.kr/bulletin/2016/05/10/0200000000AKR20160510017900014.HTML?input=1195m|제목=北, 노동당 대회 결정서 채택…"김정은 당 위원장 추대"|성=임|이름=은진|날짜=2016-05-10|뉴스=|출판사=|확인날짜=}}</ref>
 
=== 2012년 ===
2012년 4월 11일, 김정은은 4차 노동당대표회의에서 노동당 1비서로 추대<ref name="北, 김정은 당1비서 추대…당대표자회 결정">{{웹 인용 |url=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2/04/11/2012041101634.html |제목=北, 김정은 당1비서 추대…당대표자회 결정 |확인날짜=2012-04-14 |보존url=https://web.archive.org/web/20120413234634/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2/04/11/2012041101634.html |보존날짜=2012-04-13 |깨진링크=예 }}</ref> 되었고, 이틀 후인 13일에 열린 북한 최고인민회의에선 국방위원회 1위원장에 추대되어추대 되어 김정일의 직책을 모두 세습하는데 성공한다.<ref name="김정은, 국방위 제1위원장으로… 김정일 직책 모두 물려받아">[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2/04/14/2012041400170.html 김정은, 국방위 제1위원장으로… 김정일 직책 모두 물려받아]</ref> 이로써 근ㆍ현대사상 최초로 공화정 지도자의 3대 권력세습이 공식화됐고공식화 됐고, 같은 날 [[광명성 3호]]를 발사하였으나 기술적 문제로 인하여 실패하고 말았다. 또한 2012년 7월 18일 인민회의는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이자 조선인민군 최고 사령관인 김정은에게 기존 [[4성 장군|대장]] 계급에서 2단계 높은 [[원수]] 칭호를 부여할 것을 결정하였다. [[원수]] 칭호는 이미 사망한 [[김일성]]·[[김정일]]에게만 부여된 [[대원수]]의 바로 아래 계급으로, 이전까지는 [[리을설]]이 유일했었다. [[원수]] 바로 아래 계급인 [[차수]]는 보직 해임된 [[리영호 (군인)|리영호]]를 포함하여 현재 총 8명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12월 12일에 북조선에서 [[은하 3호]]를 발사하는데 성공했다. 로켓에 문제가 있어 정비를 위해 분해하는 것으로 위장하였다가 기습적으로 발사하여 은하 3호에 적재된 위성을 위성궤도에 올리는데 성공했다.
== 일화 ==
* 유순한 성격의 친형 [[김정철 (정치인)|김정철]]과 대조적이었다.
* 2009년 여름 [[일본]]에 여행 중인 배석범이 그와 비슷한 외모 때문에, 김정은으로 몰려 [[일본]] 방송국에 오보되는오보 되는 사태가 발생했다. 사진은 곧 대한민국의 각 포털 사이트에 김정은의 공식 인물사진으로 올려지기도 했다. 당시 배석범은 대한민국의 포털 사이트 [[다음]]에서 무속카페를 운영하고 있던 것으로 밝혀졌다.
* 그는 은하수관현악단의 애호가이다.<ref>{{뉴스 인용 |제목 = 북한 金씨 일가의 대 이은 '음악단' 사랑 |url = http://www.yonhapnews.co.kr/bulletin/2012/03/09/0200000000AKR20120309186100014.HTML |출판사 = 연합뉴스 |저자 = 윤일건 |날짜 = 2011-03-11 |확인날짜 = 2012-04-29}}</ref>
* 2009년 6월 10일 [[일본]] [[TV 아사히]]는 김정은의 최근 모습이라는 사진을 공개했다. TV 아사히 측은 [[대한민국]]의 군당국에서 제공받은 사진이라고 밝혔으나, 대한민국 정부의 항의를 받고 한국의 신뢰할 수 있는 출처라고 정정하였다. 그러나 사진의 주인공은 김정은이 아니라 [[김정일]]과 외모가 비슷할 뿐 [[대한민국]]의 일반인으로 밝혀져 TV 아사히의 보도는 오보로 드러났다. 사진은 공개된 인터넷 카페에서 유출되어 대한민국의 군 부사관이 TV 아사히 측에 넘겼는데, 이것이 김정은의 사진으로 와전된 것으로 보인다.<ref>{{뉴스 인용|url=http://www.hankyung.com/news/app/newsview.php?aid=200907237016g|제목=`김정운 가짜 사진` 제보자는 한국부사관…軍, 징계|출판사=[[한국경제]]|날짜=2009-07-23}}</ref> 사진의 주인공은 [[TV 아사히|아사히TV]], 사진을 제공한 군 관계자, [[대한민국 정부|정부]]를 상대로 소송을 진행 중이다.<ref>{{뉴스 인용|url=http://lady.khan.co.kr/khlady.html?mode=view&artid=200910141648181&code=4|제목=김정일의 3남 ‘김정은’으로 몰려 고초 겪은 배석범씨의 기막힌 사연|출판사=[[레이디경향]]|날짜=2009-10-19}}</ref>
* 2009년 6월 14일 [[마이니치 신문]]에서 김정은의 16세 때 사진을 공개했다.<ref>[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09/06/15/2009061500024.html 10년 전 김정은… 친구에 "내가 김(金)위원장 아들"] - 조선일보</ref> 이 사진은 그가 [[스위스]]의 공립학교에 가명으로 재학할재학 할 당시 급우들과 찍은 사진에서 나온 것이다.
* 2009년 9월 11일 [[연합뉴스]] 속보에 의하면, 김정일 3남의 이름은 김정운이 아닌 김정은으로 판단이 된다고 발표했다.<ref>[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POD&mid=sec&sid1=001&sid2=140&oid=001&aid=0002860616&isYeonhapFlash=Y "김정일 3남 이름 `정은'으로 판단"(종합)]</ref>
* 2010년 4월 20일 일본 마이니치 신문은 김정은의 최근 모습이라는 사진을 공개했다. 그러나 한국정부는 사진의 주인공은 김정은이 아니고 김책제철소의 김광남 기사장이라고 밝혔다.<ref>[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0&oid=028&aid=0002040107 일본 언론, 북한 김정은 사진 또 오보]</ref>