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를 마르크스: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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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르크스와 엥겔스는 1848년 혁명을 경험하면서 그 경험을 자신들의 경제이론 및 역사진보이론에 반영시켰다. 1848년 혁명이 "실패"로 돌아갔고, 혁명적 추진력이 소진된 것 같은 상황에서 마르크스와 마르크스가 "모험주의자들"이라고 비난한 다른 공산주의자들 사이에 갈등이 불거졌다. 마르크스는 "의지의 힘" 따위로 혁명적 상황을 만들어낼 수 있다고 믿는 것은 망상이며, 경제적 요소야말로 필수적인 필요조건이라고 여겼다. 1852년 미국 불황은 마르크스와 엥겔스에게 혁명활동에 대한 낙관론을 주었다. 물론 이 정도 경제는 아직 자본주의 혁명이 일어나기에는 너무 미숙했다. 미국의 사회불안정은 서부의 빈 땅 개발 바람으로 희석되었다. 더구나 미국에서 일어나는 경제위기가 유럽 대륙의 경제에 혁명적 확산을 일으킬 것이라 생각하기도 힘들었다. 유럽의 각 국가들은 국경선을 경계로 철저한 폐쇄경제를 구축했기 때문이다. 그러던 것이 최초로 변하기 시작한 것은 [[1857년 공황]]이었다. 이것은 미국에서 일어난 공황이 유럽에까지 영향을 미친 최초의 "글로벌 경제위기"로서, 그전까지의 경제이론과는 전혀 다른 양상을 보여주었다,<ref>Jonathan Sperber, ''Karl Marx: A Nineteenth-Century Life'', p. 320.</ref>
 
이렇듯 마르크스는 1844년동안1844년부터 13년간 궁한 생활을 감당하느라 여러가지 부업을 뛰었고, 경제학 연구는 거의 내팽겨치고 있었다. 하지만 그는 언제나 경제학으로 돌아가기를 희망했다.
 
=== 1860년-1883년: 제1인터내셔널과 『자본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