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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히로히토가 유럽으로 떠날 때의 공식 명목은 [[데라우치 마사타케]] 내각이 끝나가던 1918년에 일본의 황실을 찾은 [[코넛과 스트래선 공작 아서]] 왕자를 답방하는 것이었지만 실질적인 목적은 오랫동안 병상에 있는 다이쇼 천황을 통해 국민들이 품은 황실에 대한 나쁜 여론을 히로히토의 해외여행을 통해 무마하는 것에 있었다.<ref name="빅스_130">빅스, 130쪽 ~ 142쪽.</ref> 처음에 황실은 히로히토의 안전을 우려하여 반대했으며, [[입헌국민당]], [[헌정회]] 등의 의원들, 도야마 미쓰루, [[우치다 료헤이]] 등의 극우계 거물들도 반대했다. 특히 극우파는 출발 전 몇 주 동안 격렬한 항의 시위를 벌였는데 “아버지가 병상에 있을 때 일본을 떠나 여행하는 것은 불효”라는 것이 그 명분이었다.<ref name="빅스_130"/> 이에 원로 [[마쓰카타 마사요시]]가 데이메이 황후에게 “[[베르사유 조약]] 이후의 유럽의 정세를 (조만간 섭정을 맡을) 황태자가 살피는 것은 앞으로를 위해 중요하다”는 내용의 상소문을 올려 황후의 마음을 돌렸고 반대 여론은 차차 수그러들었다.<ref name="빅스_130"/> 해외 순방 일정은 다이쇼 천황의 유고에 대비해 최대한 서둘러 실행해야 했다. 때문에 정부와 궁내 관료들은 히로히토가 찾을 나라로 영국, [[프랑스]], [[벨기에]], [[네덜란드]], [[바티칸]] 교황청과 [[이탈리아]]로 한정했다.<ref name="빅스_130"/> [[미국]]의 [[워렌 하딩]] 정부도 히로히토의 방문에 관심을 가졌으나 히로히토와 미국 기자들 사이의 소통 문제를 우려한 [[워싱턴 D.C.]]의 주미 일본 대사 [[시데하라 기주로]]의 진언으로 미국은 방문 국가에서 제외됐다.<ref name="빅스_130"/>
 
1921년 3월 3일에 히로히토와 [[간인노미야 고토히토]] 친왕, [[진다 스테미]] [[백작]], 나라 다케지 육군중장과 수행원 34명이 [[도쿄 역]]을 출발하여 해외 순방길에 올랐다. 이들은 [[요코하마]]에서 [[가토리 호]]를 타고 5월 7일에 영국에 도착했으며, 그 후로 영국에서 24일간, 프랑스에서 26일간, 벨기에와 네덜란드에서 각각 5일간, 이탈리아에서 8일간 머물렀다.<ref name="빅스_130"/> 히로히토는 순방 중에 영국 왕세자 [[웨일스 공]]과 국왕 [[조지 5세]], 벨기에 왕 [[알베르 1세]], 이탈리아 왕 [[비토리오 에마누엘레 3세]], [[교황 베네딕토 15세]] 등을 만났으며 7월 18일에 유럽을 떠나 9월 2일 [[지바현]] [[다테야마 시다테야마시|다테야마]]를 거쳐 다음날인 3일에 요코하마로 돌아왔다.<ref name="빅스_130"/>
 
=== 대리청정을 맡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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